젠더 크라임 이판사판
덴도 아라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는데, 때린 놈은 못 잔다.'는 속담이 있다. 근데 성인이 되어 이 속담을 들을 때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속담 속에 때린 놈은 적어도 양심은 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십여 년 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너무 일상적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 차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남편과도 책 이야기를 했는데, 남편 역시 그 모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것은 여전히 썩 편하지 않다. 당장 내가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만 봐도, 내 급여와 남직원의 급여에는 갭이 있었다. 올라가는 폭 역시 달랐는데, 아직도 대표의 말이 기억난다. 남직원은 가장이니까 더 줘야 한다는... 업무의 양 대비가 아닌 성별이 이유였다는 사실이 여전히 썩 유쾌하지 않다.

일본 소설을 접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내가 읽는 작품들은 추리소설 혹은 사회파 소설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 이 작품은 그중 사회가 소설에 속한다. 제목과 표지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성에 따른 폭력과 차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소설임에도 실제 같은 내용이 참 씁쓸했다.

본청 수사 1과에 구라오카 나오야 경부보는 생활안전과 요다 과장을 지원하기 위해 함께 차를 타고 출동한다. 범인들은 sns나 앱 등을 통해 소녀들을 상대로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채팅을 통해 얼굴 사진을 받고 이를 빌미로 협박을 해 결국 수치스러운 사진 등을 받아내거나 직접 만나 포르노 영상 등을 촬영해서 판매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n 번 방 사건처럼 말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10대인데, 이들이 만든 영상들을 삭제한다 해도 이미 인터넷상에 퍼진 영상들까지 처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잡힌 가해자들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혐오 발언을 하는 등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10대 딸을 둔 구라오카는 이런 가해자들을 벌주고 싶지만, 이는 경찰의 일이 아니기에 더 화가 난다.

그러던 중,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양손이 박스테이프로 결박된 나체의 남자 시신이 도로에서 1미터 아래쪽 풀밭에 엎드린 자세로 발견된 것이다. 신고가 들어왔지만, 발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 피해자는 54살의 사토 마사타카라는 남자로 생활용품 제조 판매회사의 인테리어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구라오카와 한 팀이 된 시바 형사는 나체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법의학교수인 이소나가 교수에게 혹시 이 시신이 성폭행을 당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시한다. 알몸으로 발견되었다면, 당연 여성의 경우는 조사를 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시바의 말대로 조사를 하다 보니 항문 안에서 작은 비닐봉지 안에 접은 종이 하나가 발견된다. 종이에는 "눈에는 눈"이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똑같이 당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보니 형사들은 우선 사토의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조사 결과, 사토의 아들 신토는 과거 FFP라는 이름의 서클에서 활동하는 남학생(요네다 도시후미, 구스모토 게이타로, 요시카와 다쿠미) 3명과 함께 여대생(하시모토 마이카) 한 명을 집단 강간한 사건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전과가 있었다. 그들은 피해자인 마이카가 마실 음료에 약을 탔고, 집단 강간을 하다가 마이카가 구토를 하자 그녀를 버려두고 도망을 쳤다. 하지만 이 일로 이들이 직접적으로 징역형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가해자 중 하나가 유력한 정치인과 연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날 이후로 끔찍한 고통 속에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사도 못하는 지경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끔찍한 공포로 아버지와 오빠도 두려워하는 까닭에 아버지와 오빠는 따로 나가 살 정도로 고통 속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범인은 마이카의 가족들일까?

참 씁쓸한 것이 요즘도 피해자를 향한 2차가 해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성폭행의 경우, 피해자의 외모나 옷차림 등에 죄를 전가시키며 말도 안 되는 것들로 가해자를 두둔하는 상황이 현재도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 속의 등장하는 경찰들 역시(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같은 동료 여자 경찰이나 가정 안에서도 스스럼없이 성차별적 발언들을 하기도 한다. 일본의 소설이지만,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함을 자아낸다. 과거에 비해 젠더에 대한 차별이나 성인지 감수성 등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갈 길은 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