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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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건너가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고, 이것이 지혜입니다.

건너가는 태도 자체가 바라밀다입니다.

오래전, 최진석 교수의 노자 인문학을 읽으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노자에 대해 다시 마주할 눈을 가지기도 했었고, 덕분에 인문학에 관심이 더 생기게 되었다. 이번 책은 그의 저서 중 내가 세 번째 만나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최진석"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이미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만족스러웠기에 다른 건 보지도 않고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물듯이 덥석 물어 버렸는데... 무려 반야심경이라니...! 당황스러웠다. 반야심경은 불교의 경전이 아닌가? 기독교인이기에 타 종교의 경전을 읽어볼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아마 알았다면 아마 덮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엎질러진 물. 평생 접할 기회가 없을 반야심경의 맛을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아마 내가 불교도였다면, 조금은 익숙하게 읽어갈 수 있었겠다 싶긴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부분 중에는 그동안 불교에 대해 궁금했던 부분이 적잖게 담겨있어서 나름 뿌듯하다.

우선 반야심경의 풀 네임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는 사실이다. 이건 상식으로 알고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중 마하와 반야의 의미 또한 놀라웠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과 공통점도 마주할 수 있었다. 성경 역시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닌지라,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비롯하여 성경에만 있는 용어들이 있다.(가령 아멘이나 샬롬, 할렐루야 같은) 이 단어들 역시 원어 그대로 옮겼기에 실제 우리나라의 존재하지 않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반야심경에 제목에 등장하는 마하는 크다는 의미인데, 왜 대가 아닌 마하로 옮긴 것일까? 반야 역시 지혜라는 뜻인데, 지혜가 아닌 반야로 옮긴 것일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반야심경은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모델인 현장법사가 옮겼다고 한다. (원래 반야심경은 산스크리트어로 쓰였다고 한다.) 현장법사는 중국인인데, 중국어의 큰 대가 아닌 마하로 옮긴 이유는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뜻을 나타낼 단어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반야 역시 그런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다.

궁금했던 내용 중에 또 하나는 석가가 태어나면서 했던 말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온 세상에서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 즉 내가 제일 존귀하다.라는 뜻인데, 누가 읽어도 다분히 거만함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위인전을 통해 본 석가모니는 왕자로 출가하지 않았다면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 금수저였는데, 그 모든 걸 버리고 깨달음의 길을 간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늘 이상했었는데, 이 책 덕분에 궁금증이 풀렸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물리학의 양자역학과 반야심경의 공통점을 이야기한다. 반야심경과 건너가는 자는 과연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양자역학과 반야심경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석가는 반야심경을 통해 인연과 머물러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곳에 안주하고,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은 진정한 지혜가 아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것. 머물기 보다 변화를 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이자 석가가 의미하는 반야라 할 수 있다.

어디에 서 있건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음을 도모하는 것,

익숙함을 뒤로하고 낯설면서도 위험하고도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는

용기 있는 동작, 이것이 바라밀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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