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빌려주는 수상한 전당포
고수유 지음 / 헤세의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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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특이했다. 요즘은 보기도 힘든 전당포가 등장하는 것도 특이한데, 무려 "시간"을 빌려준다니...! 제목부터 SF틱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타임 전당포의 주인이다. 할머니가 키우는 검은 고양이 크로노스와 앵무새 카이로스가 할머니와 함께 전당포를 지키고 있다. 할머니는 어떻게 시간을 빌려줄 수 있는 걸까? 바로 우주의 힘에 의해서다. 우주의 법칙인 다르마(Dharma)에 의해 시간을 대출하기 위해 온 손님은 필요한 시간을 돌려받는다. 물론 공짜로 대출해 줄 수는 없다. 시간을 거스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주에게서 빌린 시간에 7천 배에 해당하는 시간을 우주로 돌려줘야 하는데, 이를 대갚음의 법칙이라고 한다. 가령 하루(24시간)을 대출한 고객의 경우 갚아야 할 시간은 19년 65일이다. 하루에 대한 대출치고는 상당하다. 이 중 하루는 전당포 주인 할머니의 몫이고, 나머지는 우주로 귀속된다. 그리고 이 우주로 귀속되는 부분 중 아주 일부는 또 다른 고객들에게 대여된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 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책 속에는 다양한 고객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과거의 어떤 시간에서 큰 실패를 경험하고, 그 시간의 영향으로 삶이 망가지게 되고 상당수는 자살을 기도한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등장한 고객 역시 그랬다. 흑수저였던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모은 돈으로 드디어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갈 꿈에 부풀었다. 그동안 악착같이 모으고 모았던 돈이었기에,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그녀가 살던 곳의 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말만 하고 사라지고 결국 그가 그 유명한 빌라왕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듣고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우연히 전당포 명함을 발견한 그녀는 타임 전당포를 찾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그녀에게 하루를 대출해 주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빌라왕의 집을 계약하기 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르는 것만큼, 했던 행동을 바로잡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녀가 동일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상황들이 연거푸 벌어지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약속한 시간에 전당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물론 책 안에는 약속한 시간 내에 돌아온 인물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헬스클럽 사장이었는데, 그는 과거 자신이 붙인 전단지를 떼어내는 타 클럽 아르바이트생과 몸싸움(실제로는 주인공이 폭력을 쓰도록 상황을 노리고 상대측에서 꾸민 것 같다.) 했던 것이 동영상으로 찍혀 공개됨으로 사업을 접게 되었던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역시 하루치 대출을 받게 된 그는 그 일이 일어나는 아침으로 돌아간다. 겨우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만, 갑자기 온 미녀 회원에게 홀려서 결국 약속시간 안에 전당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만약 약속한 시간에 전당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 어떻게 될까? 약속된 시간뿐 아니라 그의 남은 생이 급격하게 소멸되기에 갑작스럽게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사실이다.

사실 책을 읽으며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 실패를 바로잡는다고 해도 20년 가까운 시간을 갚고 나면(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 실제 삶을 바로잡아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렇게 하면서까지 실패를 바로잡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를 바로잡고 그 삶을 즐겨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주인공들의 소원 중에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행복과 타인을 위한 소원도 상당했다. (사고를 당하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대기업 합격을 포기하는 아들, 갑작스럽게 실명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줄이는 어머니 등) 그들은 자신이 아닌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 내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그들의 삶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시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품을 때도 있다. 저거도 내게 주어진 시간들의 가치가 내 삶의 상당수를 포기해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면, 지금 내가 보내는 이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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