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리커버)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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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정겨운 냄새를 맡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아주 정겨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냄새라기보다 공기였다.

쥰세이의 냄새. 또는 그 시절의 우리들 냄새.

십수 년 만에 다시 읽게 된 냉정과 열정사이. 내가 읽었던 책은 주황색의 하드커버로 되어 있는 책이었다. 아오이와 쥰세이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았다. 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흐른 시간만큼 내 마음이 달라졌나 보다. 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의 선을 느꼈으니 말이다.

일본인이지만, 지금은 일본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둘. 미국에서 태어난 아가타 쥰세이와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았던 아오이는 일본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둘은 그 시간을 서로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미워했다. 사랑의 기억이 강렬해서였을까? 헤어진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쥰세이와 아오이는 서로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권으로 만들어진 냉정과 열정사이의 Rosso(Rosso는 이탈리아 어로 빨강을 뜻한다.)는 아오이의 편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아오이 곁에는 미국인 애인인 마빈이 있다. 마빈은 첫눈에 아오이에게 반했고 구애를 했다. 그와의 몇 번의 데이트를 한 아오이는 그와 함께 살게 된다. 늘 아오이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을 행복해하는 마빈. 아오이 역시 그를 좋아하지만, 순간순간 그녀를 감싸는 쥰세이와의 기억은 마빈과의 관계를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일본 유학 전에 일했던 지나와 파올라의 보석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아오이에게는 소꿉친구인 다니엘라가 있다. 그녀는 애인 루카와 결혼을 하고 딸을 출산한다. 다니엘라, 루카 그리고 아오이와 마빈은 넷이서 종종 데이트를 했었기에 다니엘라는 아오이가 마빈과의 결혼을 미루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아오이가 일본에 다녀온 후 많이 변했다는 사실만 느낄 뿐이다.(물론 쥰세이와의 일을 다니엘라는 잘 모른다.)

I was so in love with him.

마빈의 누나 안젤라가 한동안 마빈의 집에 머물렀다. 그녀는 이혼녀로 이곳저곳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아오이 역시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 안젤라를 좋아하고, 안젤라 역시 동생의 애인인 아오이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안젤라는 아오이의 마음을 마빈보다 정확하게 안다. 그녀가 마빈보다 더 마음에 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난히 비 오는 날은 감정적으로 추락하는 아오이. 신기하게도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있는 동안 유난히 비가 자주 왔던 것 같다. 읽기 시작한 날도, 읽는 중에도, 책을 덮은 날에도... 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왠지 비가 오니까 아오이의 마음에 자꾸 가닿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사실 왜 이렇게 아오이가 비를 싫어하는가 싶었는데... 중반부를 넘어서 이유가 등장한다. 충분히 싫어할 만하다... ㅠ)

사람의 감정은 이상하게 스스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물론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이들 사이에 왜 이렇게 긴 시간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실제 이유가 자신들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또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했다면, 서로 안에 쌓인 상처들을 공유했다면 긴 시간 서로를 향해 풀어내기 힘든 감정선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함께 있는 시간이 좋긴 하지만, 또 아팠기에 이별을 선택한 그들이지만 서로가 남긴 그림자는 생각보다 진했기에 매 순간순간 서로를 찾아 헤매는 둘의 모습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과연 이 둘은 어떻게 될까? 서로를 향한 그리움 때문에 다시 마주할까? 아니면 그 그림자를 조금씩 지워갈까?

다시 만난 냉정과 열정 사이 속 쥰세이와 아오이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나이를 먹고,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그때 마주하지 못한 여러 가지 감정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십여 년 후에? 아님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다시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때의 쥰세이와 아오이는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순간 정겨운 냄새를 맡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아주 정겨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냄새라기보다 공기였다.

쥰세이의 냄새. 또는 그 시절의 우리들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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