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현대의 우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너무 눈에 띄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스타벅스로 가는 예수님이라니... 과연 이 안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2000년 전 예수님과 12제자가 대한민국에 왔다. 문화도, 시대도 다른 제자들은 낯선 환경에 나름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지만, 과거의 습성은 버리지 못한 상태다.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은 목욕탕부터, PC방, 찜질방, 지하상가, 교회, 서울역, 학교 그리고 카페까지 간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지만 그놈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않다. 거기다 믿음도! 믿음이 있었다면 주머니 사정 즈음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상황에 먼저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2000년이 지났지만, 많은 것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헤매고 있다. 어딜 가나 서로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끌어내리려고 술수를 쓴다. 회계 담당 유다는 여전히 뒷주머니를 찰 궁리를 하고, 베드로는 설레발을 친다. 안드레는 매사에 울컥하고, 도마는 여기저기 의심투성이에, 빌립은 잠만 잔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부족하기만 한 제자들을 바라보는 예수님 역시 여전히 답답한 마음으로 혼을 내기도 하고, 상황 속에서 교훈을 주기도 한다.
왜 스타벅스가 등장할까?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서나 역시 스타벅스로 가는 예수님이 기억에 남는다. 왕따를 당하는 한 아이가 있다. 같은 반 친구 5명으로부터 갑자기 따를 당하는 아이는 돈을 뺏기기도 하고, 맞기도 한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두렵고 고통스럽다. 그 상황에서 아이는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은 아이와 함께 스타벅스에 들어가 핫초코와 케이크를 사주신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따뜻함 속에서 깜박 잠이 든 아이는 꿈을 꾸게 된다. 천국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받은 것이다. 일명 왕따들의 잔치다. 그곳에는 삭개오도 있고, 예수님도 계셨다.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끔찍한 왕따를 당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고문과 박해 끝에 죄 없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다. 살며시 꿈에서 깬 아이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정말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기도했으니까 이제 개학하면 자신 있게 학교에 가라. 하지만 너의 주변 환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게 하나 변했다. 그건 바로 너 자신이야. 자신 있지?"
자연스레 책을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현대에 맞게 각색된 상황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등장하는 성경 말씀에 눈이 간다. 저자는 바로 이것을 목적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웃다가 말씀을 읽게 되는 상황을 바라고 말이다.
성탄절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성탄절을 맞아 교회에 가신 예수님은 과연 축하를 받으셨을까? 오히려 교회에서 부처님을 만났다는데,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베드로야, 봉사를 하려거든 봉사하는 자세가 먼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니? 앞으로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하거라."(벧전 4:11)
이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씀일까? 베드로 전서 4장 11절에는 어떤 말씀이 나와있을까? 궁금하다면 성경책과 책을 한번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