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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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가.

원래 세계란 무엇인가.

애초에 나는 누구인가.

비가 내리고 날씨가 급 겨울이 되었다. 독특한 시각의 호러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다.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작품들이었던 것 같다. 기시 유스케의 단편소설 4편이 담겨있는 이 작품집 속 가을비 이야기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다. 왜일까? 도대체 왜 가을비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 장에 옮긴이의 말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가 안 되는 작품도 더러 있었다.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해서 읽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첫 번째 나온 아귀의 논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책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짧은 작품이었음에도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전생의 업보가 이 작품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짝짓기를 하는 모든 생물들에 대한 원한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안타까움이 컸던 것 같다. 또한 작품 속 두 주인공인 다나구치 미하루와 아오타 요시카즈의 이야기 속에서 썸의 기운(?)이 살짝 느껴졌는데, 아오타 요시카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썸이 강제 종료(?) 되어서 더 아쉬웠던 것 같다.

비운의 음악가와 그가 남긴 목소리의 비밀이 담긴 백조의 노래라는 작품과, 실종된 작가를 찾아 나선 이야기가 담긴 푸가도 흥미로웠지만 마지막에 들어있던 고쿠리상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우선 고쿠리상은 우리나라의 분신사바와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시작은 4명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 죽음을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곤도 다쿠야와 니지마 하루토, 고토 신이치, 오가와 가에데는 모두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 하루토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뇌종양 환자이고, 신이치와 가에데는 둘 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다쿠야는 과거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죄책감이 크다. 하루토는 한 기사를 통해 고쿠리상의 어둠 버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컬트 연구가인 우시쿠보 히로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고쿠리상 중 어둠 버전은 일명 러시안룰렛 버전으로 불리는데, 4명의 인물 중 다수는 해결책을 받게 되지만, 적어도 1명 이상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4명은 폐 병원인 바크티 초후에 모인다. 우시쿠보 히로키의 진행으로 고쿠리상을 하게 된 4명. 그들 중 죽음의 카드를 뽑게 되는 인물은 누구였을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변호사가 된 다쿠야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주간 추상 기자인 노구치 ??페이였다. 그는 과거의 고쿠리상 이야기를 꺼내며 다쿠야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사건과 함께 그가 벌인 과거의 일을 다시금 조명하겠다는 이유였다. 결국 다시금 살인을 하게 되는 다쿠야. 그리고 그로부터 들은 과거 고쿠리상 4인방 중 사망한 하루토를 제외한 친구들이 현재도 과거 못지않은 끔찍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금 고쿠리상 게임을 제안하게 되는데...

각자가 받은 내용대로 자신이 가야 할 위치에 도착한 인물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쿠야 앞에 펼쳐진 고쿠리상의 진실은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책 속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의든, 타이든 자신이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상황에 노출되게 된다.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또 원치 않는 다른 상황을 마주한다. 그래서 그곳에 매몰되기도 하고, 탈출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벗어날 수 없는 괴담 속 주인공들과 우리의 삶은 과연 다를까? 우리 역시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고 있진 않은가? 코로나19를 지내오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진 상황에서 가을비 이야기를 접해서 그런지 어둡고 침침한 작품 속 이야기가 낯설지만, 또 낯설지 않다는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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