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KBS에서 대하사극을 방영하는데, 제목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고려거란전쟁이다. 사극 전문 배우인 최수종 배우가 강감찬 장군 역으로 출연한다고 하는데, 기왕이면 원작을 먼저 만나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제목만 가지고는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다. 책을 읽기 전, 저자는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개괄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희가 993년, 거란의 소손녕을 맞이하여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탈환한 것이 바로 거란 1차 침공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거란은 1010년 다시 고려를 재침공한다. 거란이 고려를 침공한 명분은 신하인 강조가 반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했다는 이유였다.
1차 침공의 선봉장이었던 소손녕은 바로 2차 침공의 선봉장인 소배압의 동생이다. 그렇게 보면 책 속에 유난히 거란인들의 이름이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은 야율 씨이고, 그다음은 소 씨다. 알고 보니, 거란의 왕족은 야율아보기를 시작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6대 황제 야율융서(성종)까지 야율의 성을 가지고 있다. 소 씨는 왕비족이라고 한다. 야율융서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거란의 경종이 일찍 사망했으므로 아들인 야율융서를 대신해 승천황태후가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 그녀는 한덕양과 야율사진, 야율휴가의 힘으로 아들을 황제로 옹립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한덕양과는 공식 연인 관계였기에, 한덕양은 야율융서를 아들처럼 생각했고 야율융서 역시 한덕양을 아버지로 생각했다고 한다.
고려거란전쟁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은 1010년 11월 16일 진시(8시)부터 101년 12월 17일 미시(14시)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강감찬은 상권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고려와 거란 전쟁은 병사의 수치상으로는 싸움이 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이번에도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거란은 40만의 군사로 고려를 침공했는데, 고려는 겨우 700여 명의 결사대로 맞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전쟁에서 승리한 고려의 군사적 위상은 놀라울 정도다. 삼구 채에서 진을 치고 있던 강조가 결국 거란에 사로잡히고, 강조가 사로잡힌 후 항복서를 가지고 양규를 찾아가는 부도통 이현운의 회유에 거짓을 알아채는 장면이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거짓된 말에 현혹되기 보다 상황을 판단하며 항복하지 않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양규. 또한 도순검사였던 강조가 왕을 내치고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목종과 김치양 등의 잘못된 정치로부터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이유였다. 물론 강조는 잘못된 계획으로 거란에 사로잡히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끔찍한 고문을 겪어낸다. 그랬기에 왕은 시해했을망정, 조국을 배신하지 않은 강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역사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김숙흥이라는 인물로 당시 구주 별장직을 맡고 있었다. 이섬이 이끄는 용만(의주)는 거란에 의해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럼에도 이섬은 깃발과 구주군가를 통해 군의 사기를 북돋았다. 구주군가를 들은 김숙흥은 구주 도령으로 지원을 간다. 덕분에 군의 분위기를 다 잡을 수 있었고, 흥화진을 지켜낼 수 있었다.
상황이 오기 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야겠지만,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생각에 유연성이 떨어져서 잘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준비는 철저히 하되 실전에 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서경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치는 조원과 강민첨. 얼마 없는 군인마저 탁사정과 함께 도망을 간 상황에서, 서 영 안에 있는 백성들과 힘을 합쳐 막아내는 그들의 활약으로 다행히 서경은 거란의 손에 떨어지지 않았다. 과연 거란과의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