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 이치의 호러 소설을 벌써 여러 권 접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나 역시 호러나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타고난 새가슴 겁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상이 아닌 소설은 읽는 편인데, 상상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읽는다면 그나마 덜 공포스럽기 때문이다.(얼마 전에 공포소설을 읽고 서평은 12시 가까이 되어서 쓰게 되었는데, 불이 다 꺼진 집에서 혼자 쓰려니까 진짜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ㅠㅠ)
5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는 이 책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표제작인 젠슈의 발소리다. 가장 길고 히가 자매가 등장하기 때문에 역시나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사와무라 이치의 작품에는 단순한 공포만 담겨있지 않다. 읽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거나, 반대로 안타까운 기분도 든다. 사회의 민낯을 공포와 호러를 통해 전해준다고 해야 할까?
첫 번째 등장한 거울에는 주인공 다하라 히데키가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게 된다. 3개월 후면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기에 하루하루가 기대된다. 결혼식장에서 대형 거울을 보게 되는데, 피투성이가 된 남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후임과 함께 결혼식장에 자리를 잡고 앉는 신부의 이름을 보고 신기해한다. 바로 자신의 아내와 성이 같았기 때문이다. 다하라 치사라는 이름을 보고 귀여운 이름이네... 하고 생각하던 중 입장하는 신랑과 신부를 보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신랑은 배우처럼 잘생긴데 비해, 신부는 뚱뚱하고 못생긴 게 평균보다도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알고 있는지, 신부는 망가지면서까지 하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신부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었다는 이야기를 듣던 중,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신부의 친구의 기묘한 행동뿐 아니라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부의 말에 히데키는 당혹스러워지는데...
외모에 대한 편견과 눈에 보이는 대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는 모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한테 눈이 가기 마련이니 말이다. 한편, 뚱뚱한 사람을 보면 막말을 서슴없이 하는 경향도 많다. 자기관리를 못했다는 말을 비롯해서 이상한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기 때문이다. 신부인 치사를 보고 하객들이 터뜨리는 말들은 정말 가관이다. 거기에 치사가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막말을 하던 히데키는 신부가 자신에게 아버지라고 부르자 당황스러워한다. 자신의 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듯이 말이다.
마지막에 나온 젠슈의 발소리에도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젠슈는 요괴의 이름인데, 가슈소쿠세이라고도 불린다.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요괴의 출현으로 사상자가 계속 생기고 있다. 히가 자매 중 동생인 마코토는 얼마 전, 오컬트 가지인 노자키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 갑작스럽게 10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토코가 참석한다. 축의금을 전달하고 급하게 가려는 언니를 잡다가 마코토가 넘어져서 부상을 입게 된다. 자신 때문에 다친 동생을 대신해 고토코는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요괴와 관련된 모로타 저택에 갔다가 다리 아래가 없는 형 와타루와 동생 도오루를 만나게 된다. 모로타 저택에 있는 그림은 과거 구로하타 가네쓰구라는 스님이 그린 그림인데, 그림을 본 순간 고토코와 노자키는 요괴가 그려져있다고 느낀다. 기묘한 것은 꼭 동생인 도오루가 자리를 비운 날만 요괴가 출연했다는 것이다. 꾀를 낸 이들은 도오루가 급하게 출장을 가는 상황을 만들고, 동생이 사라지자마자 형인 와타루는 기어서 집을 나서는데...
젠슈의 발소리에는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가족은 서로 걱정을 하는 존재기도 하지만, 서로를 질투하고 때론 서로의 말과 행동에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요괴 젠슈와 가슈소쿠세이가 도움을 받는 존재들 또한 그들과 비슷한 감정을 지닌 존재들의 도움을 받는다.
"젠슈는 아마 형제나 자매일 거예요. 형제에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와 동시에 갇혀 있음으로써 뒤틀린 울분이 쌓여있는.......
한마디로 말해 와타루 씨와 젠슈는 우연히 파장이 맞았어요.
요즘은 '싱크로 한다'라고 하지만요."
이번에도 역시나 기묘하고 무섭지만, 그 안에 담긴 여러 인간사의 균열들과 문제점들을 작품을 통해 드러낸 사와무라 이치.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