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와 아키라
이케이도 준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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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만났다. 처음 만났던 작품(한자와 나오키)처럼 이번에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제목이 되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젊은이 아키라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름과는 달리 그들의 삶의 시작은 확연히 달랐다. 대형 해운회사의 재벌 3세로 태어난 금수저 가이도 아키라와 부도로 외가인 이와타까지 쫓겨가서 살게 된 흙수저 야마자키 아키라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야마자키 프레스 공업이라는 영세한 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 고조가 사업에 실패한 후, 야마자키 아키라의 가족은 이와타의 외할아버지 댁으로 오게 된다. 상점가에서 장사를 하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그리고 재취업을 한 아버지 덕분에 아키라는 어렸을 때부터 장사와 기업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자라난다. 그리고 얼마 후 대형 슈퍼가 들어오는 개점일 당일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단상에 있는 것을 본다. 그 둘은 이렇게 처음 만나게 된다.

평생 롤 모델이었던 할아버지 가이도 마사쓰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사망 전에 가이도 아키라의 아버지이자 장남 가즈마와 스스무, 다카시에게 사업 분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할아버지는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사망한다. 그리고 그 후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다. 실제 경영에 대한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두 삼촌 스스무와 다카시는 모기업인 도카이 해운의 주식을 넘기는 대가로 자신들의 휘청이는 사업 인수를 형에게 요구한다. 결국 도카이 상회와 도카이 관광을 인수하게 된 아키라의 아버지 가즈마.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가이도 아키라는 경영자로의 철학을 가지게 되는 한 편, 돈 때문에 의가 상하는 삼 형제의 모습을 보고 착잡함을 느낀다.

한편, 공장이 도산한 후 재취업을 하게 된 아버지 고조가 다시 비슷한 사건에 연루되는 모습을 보며 기울어진 집안 형편 때문에 취업을 하기로 한 야마자키 아키라. 워낙 출중한 성적 때문에 담임교사는 대학 진학을 권유한다. 어린 시절부터 은행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야마자키 아키라는 결국 대학 진학 후 은행에 취업하게 된다. 우연의 일치일까? 가이도 아키라 역시 가업을 이어받는 대신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게 되고 둘은 같은 은행에서 만나게 되는데...

어쩌면 뻔한 히스토리로 진행된다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놓이고 따뜻해지는 이유는 결국 진실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의 두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일을 처리해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상처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극복되고 표현되는 장면에서는 나 또한 감정이입이 되며 울컥하기도 했다. 독한 시집살이를 겪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더 혹독하게 시집살이 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현실을 이렇지만 책 속 현실은 달라서 더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어도 작품 속에서만이라도 모두가 꿈꾸는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면 좋겠으니 말이다.

1970년대부터 30년간의 일본의 경제사가 책 속에 담겨있기에 소설 속 이야기와 함께 일본 경제사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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