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아니 손에서 뗄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의 모든 화폐가 사라지고 오직 "눈물"이 화폐가 된 세상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작가가 썼음에도,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은 영어다. 마치 달러구트 꿈백화점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늘 남을 돕고, 나는 손해를 봐도 남의 일을 먼저 도와주는 오지랖녀 엠마 화이트.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에는 타인의 알바 대행, 타인 대신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일정만 빼곡하다. 그런 그녀는 졸업을 앞두고 교수 캐런 플러와 면담을 하게 된다. 다음 주에 눈물 관리청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 엠마에게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늘어놓은 캐런은 Together라고 쓰여있는 티켓 하나를 쥐여준다. 과연 이 티켓은 무엇일까?
교육을 받으러 간 날,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특이했다. 명품 가방에 물인 퓨리를 쏟았다고 화를 내는 그레이스, 유명한 호텔의 후계자인데 졸지에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고 욕을 하는 데이먼 펠튼, 그리고 7살은 되어 보이는데 할 줄 아는 말이 없어 보이는 루디와 머들까지...교육을 마치고 돌아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 중이던 어느 날, 한 통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1월 1일부로 눈물 관리청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문자였다.
그녀가 근무하게 된 곳은 제일 꼭대기 층으로, 청장인 레이먼과 이성 담당관인 이던 펠트로가 팀 동료였다. 엠마는 감정 담당관으로 측정이 어려운 눈물들의 가격을 매기는 일이었다. 근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날, 동료이자 상관인 레이먼은 엠마에게 한 가지 질문을 건넨다. 최근에 자신을 위해 울어본 날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엠마는 이상하게 대답을 하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얼마 후 엠마는 B동으로 파견근무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상황은 끔찍했다. 일명 악어의 눈물이라 부르는 썩은 눈물들을 처리하는 폐수처리장의 조 아저씨를 비롯하여 과거 자신과 같이 교육을 받았던 레이먼은 뒷골목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빼앗는 악랄한 범죄자로, 명품을 두르고 다녔던 그레이스는 레이먼에게 기억을 빼앗긴 피해자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엠마와 관계를 맺게 된다.
늘 자신은 피해자라고 여기며, 자신이 벌인 파렴치한 일에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었던 데이먼은 피해자인 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사실 데이먼 또한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뒤에 밝혀지긴 하지만,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엠마는 느낄 수 있었다. 좀 전까지 당당했던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믿었던 신념에 금이 갔음을.
수치심과 좌절감, 죄의식과 죄책감이 뜨거운 온도로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되어 그를 집어삼키고 있음을.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용서받고 싶다는 생각이
몇 분 사이에 그를 완전히 장악했다.
자꾸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언급하게 되는데, 책 속에 여러 사건이 등장하며 주인공인 엠마의 이야기와 엠마의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하나 둘 펼쳐진다. 계속 곱씹게 되는 것은 레이먼이 엠마에게 한 질문이었다. 타인을 위해서는 울어주고 신경을 써주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언제 울어봤고, 언제 마음을 써줬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과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 참 의미 깊었다.
'스스로 사랑할 시간이에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어쩌면 외면하고 무시했던 마음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과거의 어떤 하루,
평생 나를 힘들게 했던 그날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