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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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서희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

그러나 개경으로 돌아가시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학에서 정치란, 군주가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군주가 솔선수범해야 백성들이 기꺼이 따른다.

어려움을 무릅쓰는 것은 왕의 의무와 책임이었고 성종에게는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려사는 조선사에 비해 자료가 빈약한 감이 있다. 조선에 비해 오래되기도 했고, 현대까지 지나오면서 숱한 전쟁의 포화를 마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에 비해 기록의 체계가 깊지 않아서이기도 할 것 같다. 사실 고려 거란 전쟁이라는 제목을 마주했을 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우리나라의 3대 대첩 중 하나라는 "구주대첩"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대체 구주대첩이 뭐지? 저자의 책 첫 장에 적은 내용을 보자면, 우리가 익숙히 아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을 구주(龜州)로 표기한 것이었다. 사실 귀주의 龜는 구로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정확히 어떤 의도인 지는 모르겠지만, 구가 아닌 귀로 옮겼으면 조금 더 빨리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검색해 보니 귀주대첩뿐 아니라 구주대첩으로도 같은 내용이 뜨긴 했다.)

책 속의 주된 등장인물이라면 서희와 강감찬이라 할 수 있다. 서희는 거란의 장군 소손녕과의 담판을 통해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획득했기 때문이고, 강감찬은 고려를 침략해온 소손녕의 형 소배압과 맞서 구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 두 인물을 중심으로 고려사 전반적인 이야기가 책 속에 등장한다.

역사가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지워낼 수 있을 정도로 책의 서술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뿐만 아니라 삽화와 사진, 지도 등을 통해 독자가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무척 애를 쓴 티가 많이 났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가 집에서 멀지 않기도 하고, 큰 아이가 얼마 전 아빠와 함께 낙성대공원에 가서 장군복도 입어보고(생각보다 무거웠다고 한다.), 여러 가지 역사 공부를 하고 와서 자랑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책을 통해 만난 강감찬 장군이 무척 반가웠다. 큰 공을 세운 명장이기에, 뭔가 인간적인 면모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점이 등장했다. 가령 강감찬의 본명이 강은천이라는 것과 고려사 기록을 보면 대놓고 외모가 상당히 떨어졌고(체모왜루-키가 작고 보기가 흉함), 가분수였다고 하니 급 인간미가 넘쳤다. 장원급제를 했으나 26년을 근무해도 승진이 늦었다는 것도 그중 하나겠지만, 그럼에도 소배압에 맞서 구주에서 승리를 쟁취한 그의 활약은 역시 읽고 또 읽어도 흥미로웠다.

물론 서희도 강감찬도 큰 활약을 한 것이 틀림없고, 그들이 주연인 것도 틀림없겠지만 서희가 빛을 발한 데는 성종이라는 왕이 뒷받침을 해주고 믿어줬기 때문이고, 강감찬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는, 강감찬 못지않은 리더십을 가진 현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때의 임금 선조와 대놓고 비교가 된다. 같은 유학을 마주했던 성종과 선조임에도 그들의 리더십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크고 작은 위기의 상황에서 리더의 자질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이 책은 KBS에서 2023년 11월에 방영 예정인 고려 거란 전쟁(가제)의 원작이라고 한다. 얼마 전 강감찬 역에 최수종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오랜만에 대하드라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척 기대가 된다. 그즈음에 한 번 더 책을 읽으면 더 몰입이 잘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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