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르메트르의 20세기 역사 3부작이 완결되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처음 접한 작품이 마지막 책인지라, 역주행을 해야 한다는 것?
600쪽이 넘는 벽돌 책 속에 과연 무슨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일까? 띠지에 적힌 '악마 같은 플롯을 지닌 책!'이란 문구가 벽돌임에도 이 책을 손에 잡게 만들었다. 두꺼운 두께를 펼치고 보면 여러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교차되면서 등장한다. 책의 주된 배경은 제2차대전이고, 등장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서로 마주한다. 처음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치 드라마처럼 등장인물이 서로 이래저래 연결되면서 관계를 주고받는 형태라고 할까?
얼마 전 어머니 잔 벨몽을 잃고 고아가 된 루이즈 벨몽은 교사로 근무하면서, 주말에는 쥘 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서빙 알바를 한다. 그런 그녀에게 식당 단골인 의사 조제프 외젠 티리옹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루이즈의 벗은 몸을 보여주면 1만 프랑을 주겠다고 말이다. 부모가 남긴 유산도 있고, 투잡(?)을 하는 관계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큰 금액을 제시한 것도 단골손님이라는 것도 정말 벗은 몸만! 보여주겠다는 생각하에 벨몽은 티리옹과 약속한 호텔로 간다. 그리고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는 티리옹 앞에서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하는 벨몽.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총성이 울리고 티리옹은 자살을 한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놀란 벨몽은 나체 상태로 호텔을 뛰쳐나온다. 이 일로 벨몽은 재판을 받을 지경이 된다. 첫 번째 혐의는 매춘이었다. 정황상 벨몽은 나체 상태로 호텔을 비롯하여 도로를 뛰어다녔고, 호텔 방에서 고액이 든 봉투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후에도, 판사는 어떻게든 벨몽에게 혐의를 씌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티리옹의 아내를 불러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신문에 직접적으로 벨몽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벨몽이 다니던 학교에까지 소문이 퍼진다. 티리옹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벨몽에게 그런 거래를 제의한 것이고, 왜 그녀를 앞에 두고 자살을 한 것일까?
한편, 전쟁이 계속되는 중 수학교사 출신인 가브리엘은 전장에 배치된다. 교사 출신이기에 군 물품을 빼돌리고, 병사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라울 랑드라드 패거리의 악행을 수첩에 꼬박꼬박 적는다. 그리고 그들이 드럼통 석유 두 개를 빼돌린 날, 자신의 수첩을 들고 상관을 찾아가겠다고 이야기한다. 그 일로 라울 패거리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지만, 끝까지 수첩을 사수한다. 하지만 몸의 대화(?) 덕분일까? 라울로부터 소소한 도움을 받게 된 가브리엘은 라울과 가까워진다. 그러던 차에 독일의 기습으로 둘은 졸지에 탈영병 신세가 되고 마는데...
그 밖에도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자신의 자리를 구축하는 데지레 미고(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할 정도로 담력이 셀 수 있을까? 그 와중에 현지인조차 못 알아듣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데 현지인 또한 자신이 못 알아듣는 과거의 이야기인가 보다 싶어서 넘어가는 장면에서 정말 혀를 내 둘렀다.)와 헌병인 페르낭과 그의 아내 알리스 이야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책 가득 서로 맞물리며 이어진다.
그중 가장 마음이 쓰이는 주인공은 단연코 벨몽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우울증에 걸린 엄마와 함께 사는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크나큰 시련이 찾아왔을 때, 누구도 그녀를 도울 사람이 없었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임신은 되지 않고 그렇게 애인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 이복 오빠의 존재까지...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이 상당하다. 주제는 어둡지만, 책 내용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던 것 또한 저자의 능력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기회가 된다면 피에르 르메트르의 다른 책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