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팩토리나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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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듦새가 아무리 허술한 이야기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 꿈이 현실이 되기를 기도했다.

아니,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우리 관계는 이제부터였다.

책 속의 세계는 기억을 지울 수도, 새로운 기억을 이식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기억을 심기도, 지울 수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의억( 나노로봇에 의한 기억 개조 기술이 만들어낸 가공의 기억) 덕분에 아마가이 치히로는 의억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 아버지는 여러 명의 아내의 의억을, 어머니는 치히로 말고 다른 자녀의 의억을 구매했다. 물론 치히로는 그 안에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된 치히로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지워주는 나노로봇인 레테를 구매하기 위해 돈을 모은다. 알약 하나로 기억을 지우고 이식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을까? 치히로와 상담한 상담사의 실수 때문인지, 레테(특정 시기의 기억을 제거해 주는 나노로봇)이 아닌 그린그린(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이 도착했고 당연히 레테일 거라 생각한 치히로는 설명서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린그린을 먹고 만다. 그날 이후로 치히로에게는 첫사랑의 기억이 생긴다.

나쓰나기 도카. 소꿉친구였던 도카는 치히로의 첫사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카와의 관계가 어그러질까 봐 도카에게 직접적으로 고백하지 못한다. 물론 도카 역시 치히로는 좋아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물건, 특정한 경험이 떠오를 때마다 도카와의 기억은 조금씩 더 선명해진다. 천식을 앓는 도카가 쓰러진 날, 치히로는 도카를 앉고 병원으로 달린다. 다행히 도카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 축제일 유카타를 걸친 도카와 비슷한 여자를 본 순간, 치히로는 혼란에 휩싸인다. 의억 속 의자(의억 속 가공의 등장인물)일 뿐인 도카를 찾아 헤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의억에 휘둘리지 않겠다 결심한 치히로는 레테를 먹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도카에 대한 기억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고, 기억 속 도카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날도 레테를 먹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옆집인 202호 문이 열리면 나쓰나기 도카가 등장한다. 둘은 서로를 알아본다. 얼마 전 선배인 에모리로 부터 연애 사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치히로는 도카의 등장이 못내 의심스럽다. 혹시 사기가 아닐까 싶어서다. 그런 도카는 수시로 치히로의 집을 찾아오고, 음식을 만들어 놓고, 치히로의 빨래를 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치히로 주변에 머무는데...

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자꾸 해피엔딩이길 원하지만, 생각지 못한 상황의 진실이 드러난다. 꼬이고 꼬인 이들의 기억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과연 진짜 기억일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나갔는데,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마주한다. 어린 시절 기억을 지우고 싶은 치히로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사라져가는 도카. 이 둘의 기억과 그 안에 담긴 사랑이 못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신형 AD(알츠하이머병)를 앓는 의억기공사 도카와 그녀를 통해 의억을 갖게 된 치히로. 과연 미래에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날이 올까? 기억은 서로가 공유해야 더 애틋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설령 누군가가 세상에 없을지라도, 그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과연 모든 게 사라진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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