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었나 보다. 명확히 설명되지 않아서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책이 낯선 분야의 책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림책임에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읽었을 때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색연필로 그린 선명하지 않은 그림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지문이 거의 없는 말풍선에 의지해서 내용을 유추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오히려 아이가 읽었다면 한결 편하게 이해했을까 싶을 정도다. 한편, 이 책의 저자는 이사벨라 치엘리 지만, 내가 두 번째 저자가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뿐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가 두 번째 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메멧 속 이야기의 빈 공간을 내 생각과 내 경험으로 유추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캠핑장에 머물며 사는 한 가족이 있다. 엄마와 어린 소녀 루시. 왜 그들이 캠핑장에 머무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할머니와 엄마가 통화를 하는 장면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된 남자아이 로망. 또래인 루시를 보고 관심이 동한 로망은 루시에게 짓궂은 장난을 한다. 루시의 가발이 벗겨진 것이다. 노랑 금발머리 가발이 벗겨진 루시의 머리는 짧디짧다. 가발을 빼앗긴 채 돌아가는 루시와 그런 루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로망. 책의 제목인 메멧은 루시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다. 강가에 흘러가는 작은 페트병으로 만든 강아지 말이다. 루시는 마치 살아있는 개를 대하듯, 패트의 뚜껑을 열어 먹이를 넣어준다. 투명한 페트병 속이 마치 뱃속인 듯 루시가 준 음식과 간식이 들어있다. 루시는 메멧에게 목줄을 채워주고, 어디든 데리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메멧이 사라진다. 수영을 즐기던 날이었다.
한편, 로망은 루시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마음을 담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루시를 보고, 자신의 저금통을 과감히 털어낸 로망은 루시에게 강아지 인형을 선물한다. 물론 루시의 텐트 앞에 두고 온다. 하지만 루시는 그 강아지 인형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로망의 마음이 루시에게 전해진 것일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결정한 루시네. 로망을 찾아가 캠핑장을 떠난다는 말을 전하고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로망은 그 말에 전혀 반응이 없다. 이별에 선물로 루시는 로망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과연 로망이 했던 것처럼, 루시 역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캠핑장 주변의 자연이 책 속에 녹아있다. 처음엔 낯설었던 풍경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었다. 그 어떤 책보다 글 밥이 적음에도, 책 속에 가득 찬 내용을 차마 글로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쉽게 친해지는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루시와 로망의 이야기 속에는 같이 뛰어놀고 감정을 나누는 장면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과연 둘이 친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물론 그 궁금증은 풀리긴 했지만 말이다.
루시가 떠난 후, 로망의 마음의 계절은 어땠을까? 하지만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 루시를 만났던 그 계절이 돌아왔을 때 로망은 다시금 환하고 따뜻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루시가 남긴 선물을 마주했을 때도 그렇고... 루시를 닮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짧은 계절 속 만남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