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스티커 사진이 한참 유행을 했을 때 친구들과 여러 번 스티커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무지개 무인 사진관(무무사)을 읽으며 옛 사진이 찾아보고 싶어졌다. 김재희 작가의 책을 여러 권 마주했는데, 이번 책은 결이 좀 달랐다. 추리 소설보다는 힐링 소설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나 서점 탐정 유동인 시리즈처럼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전 자기들과 달리, 무무사의 경우 손님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완벽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고민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인생의 큰 기로와 사람 사이의 감정의 문제들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책의 소제목과 계절이 묘하게 연결되는데, 그 안에 사연이 함께 담겨있다. 무인 사진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인이 작업실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손님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인"이라는 말이 붙기도 하고, 셀프로 스스로 사진을 촬영하고 때론 출력까지 셀프로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인"이기도 하다. 특이한 점이라면 사진관 안에 자신의 사연을 적을 수 있는 노트가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무사의 주인인 이연주가 사연들을 읽고 댓글을 달기도 하고, 그중 사연을 뽑아서 직접 사진 촬영을 해주기도 한다. 특별한 점이라면 무무사에서 사진을 찍게 되면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사연의 주인공은 25살의 취준생인 현수경이다. 농사를 짓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살고 있는 수경은 참 다양한 일을 했었다. 당장 월세를 내기도 빠듯한 살림인지라, 당장 200만 원을 제시한 업무 조건이 이상한 회사에 취업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사연을 노트에 남겨둔다. 그녀는 이력서에 남길 사진이 필요했다. 연주가 찍어준 사진 덕분일까? 수경은 그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된다. 밤늦게 문서작업만 하면 되기에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반응하지 말고, 화장실 물 소리가 들리면 뒷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가라는 이상한 조건이 붙어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 할머니에게 현금을 받아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를 만나러 간 수경은 그곳에서 우연히 연주를 만나게 되고 수경이 취업한 회사가 피싱 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결국 연주와 같이 일을 하게 된 수경은 무무사 일을 하며 손님들의 다양한 사연을 접하게 된다.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된 용정은 남편으로부터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낙심한다. 남편으로부터 받은 2천만 원 중 일부로 명품백을 사지만, 잃어버렸다며 무무사에서 진상을 부리기도 한다. 용정의 사연을 들은 연주는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고, 용정이 가장 잘하는 일을 토대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따끔한 조언을 해준다. 그 밖에도 엄마에 의해 지금까지 삶이 좌지우지된 임진성은 결혼을 종용하는 엄마 때문에 결혼정보 회사에 보낼 사진을 찍으러 무무사에 온다. 단,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만한 사진을 원한다는 사연을 남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취업, 연애, 이혼, 병 등 다양한 개인의 문제들을 들고 무무사를 찾는다. 사실 무무사는 사진관이지 고민 상담소도, 정신건강의학과도 아님에도 그들의 사연은 자신의 원하는 쪽으로 풀려간다. 물론 사진이나 직원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기보다는, 손님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며 때론 엄하게 혼을 내기도 하는 연주와 수경 때문일 것이다. 무무사의 도움을 받은 손님들은 또 다른 사연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신이 무무사를 통해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 말미에 연주의 사연이 등장하는데,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놀랐다. 책 중간중간 연주의 비밀이 조금씩 등장하는데, 빠르게 마무리가 되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동네마다 한두 개 있던 사진관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확인하기 때문에 사진을 인화하는 일이 많지 않아 거였겠지만, 무무사 같은 곳이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사연의 주인공 들 중에 마음이 쓰였던 인물이라면 단연 서용정이었다. 다시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용정에게 닥친 큰 아픔이 속이 상하기도 했다. 책 말미에 작가의 말을 읽고 보니 작가 역시 용정처럼 최근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놀랐고 가슴이 아팠다. 용정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차기작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기왕이면 무무사의 이야기로 만나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