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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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부디 너희 세상에도 라는 제목과 함께 외계인같이 보이는 인물들이 줄지어 어딘가로 향하는 기이를 넘어 괴이한 그림이 표지에 가득 담겨있다. 내가 읽은 책은 8편의 소설 중 4편이 담겨있는 가제본이었는데, 각각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내용을 품고 있음에도, 죽음과 미래라는 기본 테마가 작품 속 베이스로 담겨있다. 문제는 미래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 있다. 보통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보다는 발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상상하지만, 책 속에 담긴 미래는 암울하고 무섭다. 역 유토피아인 디스토피아의 사회라고 할까?

예를 들어 첫 번째 등장한 반짝이는 것이라는 작품에는 좀비가 등장하는데, ACAS 바이러스로 인해 벌어진 현상이다. ACAS 바이러스는 심정지 상태지만 뇌는 죽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뇌 속에 남아있는 기능이라고는 식욕밖에 없다 보니 음식을 향한 탐욕만 남아 있다. 주인공인 노인 일규 역시 ACAS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다행이라면 그는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에 아직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낸 후, 아들 내외와 살고 있는 일규는 5년 전 이 바이러스 때문에 아내를 잃었다.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늘 마트를 오래도록 돌며 기분을 푼 후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는, 그날도 일규의 행동에 지갑을 들고 마트를 향한다. 아내가 돌아올 때는 설령 일규의 잘못이었어도 먼저 사과를 하며 주전부리를 내민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날 이후 만날 수 없었다. ACAS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마트에 가득했고, 아내는 바이러스에 감염 여부조차 모른 채 살처분 되듯 살해된다. 몇 년에 거친 소송 끝에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게 되었고, 그 돈으로 아들 내외와 집을 마련한 것이다. 문제는 얼마 전부터 일규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결국 때가 온 것인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손녀에게는 좋은 기억의 할아버지로 남고 싶었기에 일규는 문을 열고 나선다. 며느리가 차린 거한 음식들을 먹으며 필름이 끊긴다. 깨어난 곳은 양재천이다. 주변에는 일규 같은 감염자들이 가득하다. 그것도 노인들 말이다.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살다 죽기 위해 안락사 회사인 웰다잉 주식회사를 향하는 일규. 과연 그는 마지막 남은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첫 번째 작품이 바이러스로 인한 끔찍한 세상을 다루었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살인을 부르고, 또 다른 살인을 부른다. 물론 주인공이 저지른 살인에는 공범이 있다. 사람이 아닌 숟가락 말이다. 증거가 남지 않는 숟가락과의 범죄.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로 살인을 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숟가락의 하수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데... 과연 이들은 헤어질 수 있을까?

잔인하지만 서글픈 인간의 감정이 밑바닥에 드러나있다. 그래서일까? 짧은 작품임에도 주인공들의 희로애락을 만날 수 있었다. 남유하 작가를 검색하다 보니, 반짝이는 것에 등장한 웰다잉 주식회사와 ACAS 바이러스에 대해 쓴 단편소설이 먼저 나와있었다. 이번 작품과 연결된 듯싶어서 내용이 급 궁금해진다.

남은 4편의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그 이야기 끝에는 어떤 감정을 만나볼 수 있을까? 공포스럽고, 안타까운 미래의 이야기 속에 담긴 인간다운 감정의 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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