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리시온 3 - 운명과 선택
이주영 지음 / 가넷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을 아끼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곧고 빠른 길로 가는 것이지.

네 진심을 따르는 거란다. 진심을 다한 선택은 새로운 운명을 만들 수 있거든."

여타의 다른 판타지 소설과 겨루어도 좋을 만큼 흥미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비롯하여 배경까지 만족스럽다. 4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임에도, 1권만 읽으면 뒷 권들은 자동으로 빠르게 읽힌다는 표현 역시 맞다.

주인공이자 책 표지 정중앙에 있는 인물 보리얀. 그녀가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세상을 지키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줄거리라 할 수 있다.

옛날 세상을 만든 창조의 신 에르는 대양 샤와 구름 섬 겔리시온과 함께 신성한 존재인 에린들을 만든다. 사실 고대의 에린은 생식 능력이 없었다. 대신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후손을 갖고 싶어 했고, 영생을 포기하는 대가로 후손을 갖게 된다. 에린 중 가장 똑똑했던 루에린은 검은색을 상징하지만, 에르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었다는 이유로 그는 내쳐짐을 당한다. 에린들의 후손들은 신의 선택에 의해 태어나는데, 그중 검은 머리를 가진 에린들은 저주받은 루에린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극심한 차별을 당한다. 능력 있는 선장 바얀과 딸인 보리얀 역시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루에린이다. 책 속에는 차별이 정당화되어있다. 루에린이라서, 여자라서 보리얀은 참 많은 고초를 겪으니 말이다. 그런 보리얀은 우연한 기회에 최초 루에린의 능력인 다른 피조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자신이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그 능력은 앞으로 보리얀이 겪을 환난과 고통을 헤쳐나가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어둠의 기운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존재인 마라트. 마라트의 저주를 받아 대양에는 갈수록 기괴하고 강한 괴물들이 넘쳐난다. 창조의 신인 에르는 천년의 한번 모크샤를 통해 괴물들로부터 에린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지만, 모크샤였던 샤카르문을 이어 천년 후 태어날 모크샤의 알이 깨진 후 2천 년이 지나도록 모크샤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이 괴물들은 무자비하게 퍼지게 된다. 바로 그 괴물로부터 대양과 겔리시온을 지키기 위해 에린의 후손들은 길을 나선다. 그리고 서쪽 호수 자일리아샤의 최고 선장이 바로 보리얀의 아버지인 바얀이다. 바얀의 오랜 친구이자, 대양에서 아내를 잃은 선장 스루딘과 그의 아들 루딘. 정찰을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바얀의 배에 보리얀과 함께 탄 어느 날, 봐서는 안되는 괴물의 눈을 통해 루딘은 보리얀이 타고 있는 배가 크게 난파되고, 보리얀이 고통을 겪는 상황을 보게 된다. 과연 루딘이 본 환영은 훗날에 대한 예언일까?

1권의 첫 부분에 등장인물들과 배경이 간략하게 삽화와 함께 설명된다. 1권부터 4권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들어있기에, 각 권을 읽으며 1권의 내용을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처음부터 보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을 듯하다. 장황해서 더 복잡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나 악의 축은 등장한다. 루에린이라는 사실 때문에 보리얀은 이유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훌라르(바르벨루스의 상급 슈라문)는 보리얀을 지키라는 신탁 때문에 보리얀이 선원의 임무를 포기하도록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상황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악용하여 보리얀과 바얀에게 복수 아닌 복수(자신을 괴롭혔던 보모가 루에린이라는 이유로 루에린인 둘을 괴롭힌다)를 하고자 괴롭히고 위해를 가하는 관리 장교 카슘과 카슘의 아버지로 자신의 숨겨진 아들인 카슘을 처형하고, 과거 자신의 집과 원수를 졌던 훌라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카슘의 생모인 즈로이아을 이용하는 제카르슘의 모습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어린 시절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성인이 된 그들이 결국 스스로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그들의 파멸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보리얀은 어떻게 그 모든 상처와 어려움을 이겨내는지를 비교하면서 읽으면 또 다른 감동이 있을 것 같다.

품에 안지 못한 아들을 죽인 원수, 아버지와 유일한 친구를 죽인 원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결국 그들은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사사로운 복수심을 접고 협력을 하게 된다. 과연 이들의 끝은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과연 괴물로부터 평화로운 세상을 지키고, 이천년간 등장하지 못한 모크샤는 깨어날 수 있을까?

한 여성의 성장기이자, 영웅기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들이 돋보이지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리얀이라는 인물의 내면묘사나 전체적인 장면과 환경묘사가 탁월해서 마치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참 좋았다. 나름의 러브라인도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