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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ㅣ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9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상남 옮김, 찰스 산토레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22년 7월
평점 :
인어공주는 가냘픈 두 발이 칼날에 베이는 듯 아팠지만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이 더 아팠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인어공주의 결말은 너무 가슴이 아팠다. 생명의 은인을 알아보지 못한 왕자. 그런 그를 사랑해서 아름다운 목소리는 마녀에게 주는 대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된 인어공주의 결말은 비슷한 것 같았지만, 그리 비극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해피엔딩이 아닌 것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인어 왕국의 왕에게는 다섯 명의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중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는 막내딸이었다. 인어공주들은 15살이 되면 바다 위로 올라가 인간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보다 더 신나는 세상 이야기를 알고 싶었던 공주에게 5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드디어 5년이 지났다. 인어공주는 멋진 장식을 하고 바다 위로 올라간다. 마침 큰 배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인어공주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중 왕자의 얼굴이 가장 좋았다. 바다 왕궁의 조각상과 닮은 듯한 그를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다.(잘생긴 건 만국 공통어인가 보다. 인어에게도 통하는 걸 보니 말이다.) 갑자기 바닷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파도가 치고,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성난 바다에 배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인어공주가 정신을 차렸을 때, 배는 조각이 나 있었고 왕자는 물속에 빠져서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바다에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인간은 바다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 인어공주는 왕자를 안고 해변가로 간다. 해가 뜨기 전까지 왕자 곁을 지키다 사람들의 소리에 바다로 몸을 순간 인어공주. 교회에서 나온 여자가 가까이 갔을 때 왕자는 깨어난다.
금사빠 인어공주는 결국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몰래 마녀에게 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는 대가(인어공주는 인어들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로 다리를 얻게 된다. 대신 걸을 때마다 칼로 다리를 도리는 듯한 통증과 피가 난다. 인간이 된 인어가 꿈꾸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왕자와 결혼해 영혼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심장이 터져 물방울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인어공주는 왕자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멋진 그림과 함께 좀 더 촘촘한 이야기를 마주하다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무모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인어공주처럼 말이다. 인어공주의 아름다운 외모를 좋아했지만, 왕자는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구해준 공주와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왕자를 구해줬다고 믿는 그녀 역시 솔직했어야 했다. 그녀가 왕자를 구해준 것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어쨌든 깨어난 왕자를 교회로 데리고 들어가긴 했지만, 왕자가 바다에서 해변까지 나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증언은 오로지 인어공주만 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목소리를 잃었다.)
왕자의 배신(?)에 물방울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인어공주에게 재기의 기회가 있었다. 언니들이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마녀에게 주고 구해온 칼이었다.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방까지 몰래 들어간 인어공주.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마 익숙한 인어공주 동화겠지만, 마지막 한 장은 색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이 한 장이 가슴 아픈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반전시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인어공주는, 여전히 예뻤지만 답답하기도 했다. 그놈의 사랑이 뭐라고... 이래서 죽일 놈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