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음주 운전을 했다 해도 비가 오지 않고 그때 나나가 울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20살 대학생 마가키 쇼타는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구라야마 아야카와 사귀고 있다.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선술집에서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쇼타. 여자친구 아아캬는 문자로 지금 당장 오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는 엄포를 논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버스도 끊기고,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있는 터라, 쇼타는 자동차를 가지고 가기로 한다. 부모님은 지방에 내려간 터라, 집에는 고양이 나나 혼자 남아있다. 나나가 안쓰러웠던 쇼타는 나나를 데리고 길을 나선다.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나나를 보던 차에 차가 뭔가를 친다. 처절한 비명을 들은 듯한데, 설마 사람일까 두려워진 쇼타는 공포에 사로잡혀 차를 유료주차장에 세워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과연 쇼타가 친 것은 무엇일까?
새벽 이른 시간에 어머니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받으니 자신은 아게오 경찰서 교통과에 근무하는 사와다 형사라고 한다. 길에 어머니인 노리와 기미코의 핸드폰이 떨어져 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어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사망했다는 소식. 3시간 넘는 거리에 사는 마사키는 여동생 구미에게 연락을 한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인 노리와 후미히사는 39도 넘는 고열로 앓고 있었다. 새벽 1시에 어머니는 왜 길을 나선 것일까?
다음 날, 80대 할머니가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문제는 차에 치이고 200미터를 끌려갔다는 사실이다. 자수해야 할까? 그가 자수하는 순간 잃게 될 것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자신의 미래는 물론, 교육계에서 유명인 사인 아버지 마가키 노리유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누나는 파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던 차에, 사와다가 쇼타의 집을 찾아온다. 전날 밤 12시에서 2시 사이에 차를 운전했는지를 묻는다. 점점 좁혀오는 수사망. 경찰은 이미 쇼타의 행적에 대한 조사를 끝냈다. 쇼타는 고민한다. 차를 몬 것은 맞지만 사람을 치였는지 몰랐고, 자신이 운전할 당시 파란 불이었다고 주장한다.
독감에 걸린 아버지 후미히사에게 어머니 기미코의 사망 사실을 전하는 마사키.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판장에 나간다. 하지만 후미히사는 참여하지 않는 대신 녹음을 요청한다. 쇼타의 증언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마사키. 사고가 나자마자 기미코를 병원으로 옮겼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시신의 훼손이 너무 심해 자신만 겨우 어머니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작별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런 그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과연 뉘우치고 있기나 한 걸까?
쇼타의 재판 상황을 들은 후미히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부쩍 인지능력이 떨어진 터라, 아들인 마사키는 자신과 같이 살자고 이야기하지만, 후미히사는 거부한다. 과연 그가 마음먹은 일은 무엇일까?
한편 사고의 원인 제공을 했던 아야카는 어떨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믿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은 남자친구 쇼타에게 그녀 역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와 예전과 같은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숨기고 있는 큰 비밀에 대해 언젠가 털어놓고 싶기도 하다.
용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고를 내고 4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것이 과연 속죄가 될 수 있을까? 사회파 소설이지만 섣불리 이해되지 않았다. 누구의 입장에 서냐에 따라 물론 잣대는 달라질 것이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쇼타의 혼란스러움이 잘 드러난다. 자신은 죄책감에 악몽까지 꾸고 있는데, 타인을 죽인 다른 사람은 별것 아니라 생각하는 모습을 본 후다. 그와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20대의 젊은 시절 4년을 감옥에서 썩고, 미래마저 저당잡혀버린 자신은 이미 속죄 이상을 했고, 오히려 피해자라는 말에 죄책감이 점점 자기합리화로 변해가는 모습은 좀 씁쓸했다. 그럼에도 포기하기 보다 자신의 과거를 떳떳하게 밝히는 모습은 또 다른 시작이 된 것 같다. 그렇다고 평생을 속죄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답은 각자에게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