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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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조건 없이 무언가를 제공할 때,

인간이 거기 기대어 절제도 노력도 잃는다면 그게 타락 아닐까.

잔뜩 긴장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악마"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하... 도대체 이 집은 어떤 집이길래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것일까? 그것도 월세 계약을 말이다. 김초엽 작가의 말대로 정말 독특하고 참신한 주제다.

지옥의 자리가 없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망자들을 수용할 곳이 없던 터에 우연히 대추 사건으로 악마를 세입자로 들이게 된 강복주 할머니. 그녀에게는 피가 섞인 아들 둘(중 한 명은 사망, 다른 한 명은 돈만 떨어지면 찾아오는 정효섭)과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인 객식구 서주가 있다. 10살에 할머니 집에 들어오게 된 서주는 10년 넘게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집 관리를 하고 있다. 학비가 모자라 현재는 휴학하고 닭갈비 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서주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은 폐가 수준으로 오래된 집이다. 그나마 있던 세입자들도 다 나가고, 남아있는 것은 김 사장이라 불리는 김석경과 얼굴조차 보지 못한 히키코모리 세입자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세입자 악마.

빈 방에서 나는 괴성과 부엌에서 뼈다귀와 생선 대가리 등 음식물 쓰레기를 잔뜩 넣어 구역질을 하면서 비벼 먹는 남자, 그리고 보일러실에서 보이는 불꽃... 서주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새 세입자가 들어왔다 늘 말과 비는 공용지역(빈방들과 부엌, 옥상, 복도, 보일러실)을 세놓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근데 이 세입자가 기묘하다. 알고 보니 지옥의 악마란다.

어느 날, 알바를 가기 전 요기라도 할 양으로 들어간 부엌 식탁 위에 고소한 냄새가 나는 찻잔에 미숫가루 한 잔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셨는데 너무 맛있었다. 근데... 쪽지에 당 충전하라는 말을 보며 이상했다. 할머니는 절대 그런 쪽지를 쓰지 않을 거고... 혹시 악마가? 그날 내내 서주는 속이 좋지 않았다. 악마로부터 무언가를 먹었다는 게 영 찝찝했으니 말이다.

알바를 마치고, 친한 동료인 모카 언니, 승빈과 가볍게 한 잔을 하고 나니 시간이 늦었다. 아뿔싸! 대문은 잠겨있었다. 전화로 할머니를 깨울 수 없었던 서주는 결국 담을 넘어 지하로 해서 집에 들어가기로 한다. 지하실을 통해 들어가다 마주친 악마. 생각보다 그는 예의 바르고 잘생기고, 점잖았다. 머리 위에 돋아난 뿔만 빼면...

그렇게 악마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근데 이 악마가 뭔가 다르다.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이미지가 아니다. 왜 이리 친절한 걸까? 서주에게 뭐라도 주기 위해, 아니 서주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 이런 악마가 다 있나?!

그러던 차에 개망나니 둘째 아들 정효섭이 나타났다. 이미 예전에 한번 된 통 당한 터라, 서주는 그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남자가 알바생 얼굴을 보고 다닌다는 소식에 내심 두려움이 생긴다. 같이 알바를 하는 승빈은 자꾸 서주에게 과한 친절을 베푼다. 그리고 세입자 악마와 친해지던 중에 할머니가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피는 안 섞였지만,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강복주 할머니와 서주. 하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공식적으로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사이다. 당장 수술을 하게 돼도, 할머니 수술 서류에 보호자로 사인을 할 수 없는 사이니 말이다. 모자 사이지만, 남보다 못한 할머니와 효섭. 그저 엄마의 돈을 뜯어낼 생각만 가지고 있는 아들이지만, 할머니가 사망하면 재산은 서주가 아닌 효섭에게 간다. 이런 관계이기에 서주는 할머니 앞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무슨 자격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 때문에 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이는 서주지만,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어떤 자격도 없는 서주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그런 서주의 상황을 아는 악마. 악마는 왜 서주에게 잘해주는 것일까? 악마가 노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들의 관계와 마음에 주목하며 읽으면 더 흥미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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