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소설집이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책 속에 등장하는 한 작품의 제목이다. 그 작품이 표제작인 셈이다. 첫 번째 소설을 읽고 놀랐다. 그동안 만났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과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보통의 평범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거나, 불륜이거나, 이중 삼중의 기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커플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첫 번째 작품을 지나면, 에쿠니 가오리표 커플들이 등장하니, 실망하지 마시길...^^;;
표제작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왠지 낯이 익다. 쇼코는 그렇다고 쳐도, 곤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름이 아닌데 말이다. 역시나 내 기억이 맞았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무릎을 쳤다. 바로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소설인 "반짝반짝 빛나는"의 등장인물들을 다시 만났던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작품이다. 어찌 보면 2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단편(책에 담겨있는 작품 중에는 긴 편에 속했지만)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러 작품들이 있는데, 에쿠니 가오리틱 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던 러브 미 텐더라는 제목의 작품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마 제목을 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지 않을까? 사실 누구의 노래였는지는 몰랐지만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였다.
30대부터 엘비스 프레슬리에 빠져 살게 된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하... 아빠와 이혼하고 지금 만나고 있는 그와 결혼을 하겠단다. 근데 그의 정체는 경악할 만하다. 바로 엘이었다. 엘은 가족들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약자로 부르는 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게 언제인데... (찾아보니 1977년이다.) 귀신도 아니고, 밤 12시만 되면 전화로 사랑을 속삭인다고 한다. 이쯤 되니 엄마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빠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빠의 반응도 일반적이지 않다. 그저 전화 장난일 거라 치부하고, 엄마가 좋아하니 됐다는 건 무슨 상황인 걸까? 결국 12시까지 기다리지만, 엘의 전화는 오지 않는다. 무슨 바쁜 일이 있을 테지...라고 생각보다 쿨하게 반응하는 엄마와 들어가서 잔다는 아빠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에쿠니 가오리의 색을 진하게 보여준 소설은 선잠이라는 작품이었다. 유부남인 고스케씨와 6개월가량 동거하다 헤어진 21세의 대학생 히나코. 현재는 고스케씨와 만났던 6개월 동안 신문을 배달했던 18세의 토오루와 만남을 가지고 있다. 헤어졌음에도 고스케씨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히나코. 결혼반지를 낀 여성(주부)를 보면 그의 아내가 자동으로 떠오르고, 그렇게 고스케와의 기억을 빠져들어간다.
사실 히나코가 토오루를 만나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고스케 때문이었다. 그와의 연애를 중명해 줄 사람이 필요하던 차에, 신문배달을 하느라 매일 들르는 토오루를 보게 되고 토오루에게 진한 키스를 날리며 그날 밤 파티에 초대한다. 토오루는 자신의 친동생이자 야구부 원인 후유히코와 함께 나타난다. 진한 키스가 토오루에게는 다른 의미였을까? 히나코 주변에 머무는 토오루와의 관계를 이어나가지만, 히나코의 마음은 그를 잊지 못한다. 그 여름의 기억을 말이다.
진하기도, 약하기도 한 에쿠나 가오리만의 사랑관. 이번에도 그녀 특유의 감성과 색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난해한 사랑의 모습과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들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