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속 여자아이의 모습이 괴기스럽다. 다친 것인지, 한 쪽 눈에는 거미가 붙어있다. 그녀는 누구일까?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의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의 단편소설집 "어떤 은수를" 만나게 되었다. 역시 그녀만의 상상력은 특이하고, 섬뜩하지만, 또 여운이 있다. 전천당 속에서는 상품과 주인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어떤 은수를 에서는 조금 긴 텀을 만날 수 있다.
책 속에는 3개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표제작인 "어떤 은수를"은 첫 번째 담겨있다. 책의 제목을 읽으며 은수가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혹시 표지의 여자아이의 이름일까? 싶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작가가 한국인이 아니니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은수는 한자어다. 말 그대로 은빛 짐승을 뜻한다. 돌의 알에서 태어난 은수는 주인이 될 인간이 바라는 대로 성장한다. 돌의 정령이라고도 불리며, 생물과 광물 중간에 해당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마치 그리스 로마신화 속 그리핀처럼 인간과 짐승이 뒤섞인 듯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에게 충성하는 성질 덕분에 최고의 애완동물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에 은수 알은 상당히 비싼 값으로 거래되지만, 돈이 있어도 구매가 쉽지 않다. 은수 가게인 은숲에서 거래를 할 수 있는데, 알을 고른 후 매일 한 방울의 피를 먹이며 정성껏 돌본다. 한 달이 지나면 부화하게 되는데, 부화하자마자 주인의 피와 함께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대 부호인 이시와타리 세이잔이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소문이 퍼진다. 두 번의 결혼을 했지만, 자녀가 없고 그의 뒤를 이어 부를 거머질 후계자도 없는 터라 그 많은 재산이 누구에게 갈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중, 5명의 사람이 뽑힌다. 그와 이런저런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구라바야시 후유쓰구, 가이토 후미코, 아라모리 데루코, 구니마루 데루히사, 오후루카와 지아키. 은숲 주인인 유키히코의 명함을 들고 은숲에 가서 은수알을 고른다. 고른 알을 1년 동안 키운 후 가장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은수의 주인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기로 한다. 5명은 제각각 은숲으로 가서 알을 받아온다. 과연 그들 중 세이잔의 재산을 받을 사람은 누가 될까?
세이잔의 돈에만 혈안이 되어 은수를 도구로 사용하는 후유쓰구,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했었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없는 16세 소녀 후미코, 겉은 착한 과부 같지만 속내는 시커멓게 썩은 데루코, 아내를 너무 사랑하지만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아내를 잃고 은수를 키우게 되는 데루히사, 그리고 가슴 뛰는 일을 발견하게 되는 지아키까지...
인간의 탐욕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낳고, 결국은 파멸의 길로 이끈다. 보기에는 청순하고, 순진해 보이는 인물의 속내는 구린내가 날 정도로 끔찍했다. 그에 의해 하나 둘 파멸에 이른 끝에 와서야 그들 또한 어찌 보면 피해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기묘하고 섬뜩하고 특별하다. 책 속 이야기처럼,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사연과 상황의 이야기를 통해 히로시마 레이코만의 특별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