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라푼젤 - 성별 반전 동화 12편
캐리 프란스만 그림, 조나단 플랙켓 글, 박혜원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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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공주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스스로 무엇을 하기보다는 기다리거나 누군가에 행동에 의해 삶이 해결된다. 공주는 조용하고, 아름답고, 소극적이다. 그런 모습은 은연중에 여성은 그래야 한다는 모습을 각인시킨다. 마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공주의 모습이 여성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근데, 시대가 바뀌었다. 딸이라고 핑크색만, 치마만, 인형놀이나 소꿉장난 등의 실내놀이만을 즐길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미스터 라푼젤이라는 책 속에 담긴 12편의 동화는 단지 등장인물의 성별만 바뀌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동화의 성별이 바뀌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잭과 콩나무를 바꾼 재클린과 콩나무였다. 가난한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재클린은 먹을 게 없어서 하나 남은 재산인 소를 팔기 위해 시장에 갔다가, 소를 콩으로 바꿔온다. 아버지는 재클린의 행동에 화를 내고, 재클린 역시 속이 상한다. 어쩔 수 없이 강낭콩을 땅에 심는 재클린. 다음 날, 엄청 크게 자라 단단한 사다리같이 엮인 콩나무를 보고 재클린은 콩줄기를 타고 올라가고 싶어진다.

좀 지쳐서 다시 내려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재클린은 끈질긴 구석이 있는 소녀였어요.

뭐든 성공하려면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계속 발을 내디뎠어요.

콩줄기에 끝에서 재클린은 큰 성을 발견하게 된다. 마을 경계에 서있는 직각의 바위를 보고 있는데, 한 신사가 등장하여 성에 얽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친절하고 멋진 귀부인이 살던 성에 나쁜 거인이 등장해 주인을 죽이고 이 성을 차지한다. 다행히 남편과 막내딸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결국 거인 때문에 아내와 아들들을 잃고 가난한 처지가 된 그 남편이 바로 재클린의 아버지라는 사실... 성의 주인은 재클린의 어머니였기에, 성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신사는 재클린에게 두 가지 보물을 꼭 되찾기를 바란다. 황금알을 낳는 수탉과 말하는 하프 말이다. 결국 재클린은 성으로 잠입하지만, 거인의 남편에게 붙들리고 성의 일을 돕게 된다. 그러면서 거인이 잠든 사이 수탉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재클린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 재클린은 변장을 한 채 다시 성으로 올라가는데...

기존에 읽었던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와는 내용 면에서도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거인의 성이 원래 잭의 부모님 것이라는 설정이나, 거인의 남편, 말하는 하프와 황금알 낳는 수탉이라는 보물 등이 낯설다. 그럼에도 힘든 모험을 이겨내는 재클린의 모습과 결국 성을 되찾는 모습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책 속에 등장하는 성을 소유하고 있는, 큰 재산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은 다 여왕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각색을 하며 첨가된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이 책은 두 작가의 작품이다. 어린 시절 밤마다 아버지가 성별을 바꾸어 읽어주셨던 이야기가 이 책의 시작이 되었다. 문장에서 성별을 나타내는 단어를 자동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고, 그를 계기로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은 글을, 아내는 그림을 그려서 이 책을 완성했다. 놀라운 것은 동화의 원작들 역시 아내와 남편이 팀을 이뤄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전래동화를 통해 우리가 가진 편견이나 이분법적 사고가 조금은 바뀌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쓰기 시작했단다. 그런 면에서,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자연스럽게 인물의 성별이 아닌 행동에 주목하게 되었으니 두 저자의 목표가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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