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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사라지지 않아
양학용 지음 / 별글 / 2021년 12월
평점 :
내가 언제 어른이 되었는지 떠올려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있다.
아이들은 혼자일 때 어른이 된다는 사실!
몇 해 전 흥미롭게 봤던 프로그램이 있다. 유명인들의 2세들이 그들끼리 팀을 꾸려 해외에서 부모 없이 일정 기간 동안 자기들의 힘으로 생활을 하는 프로였다. 익히 알만한 부모들이 패널로 출연해 자녀들의 생활을 보며 한층 어른이 된 듯한 자녀들의 행동에 놀라기도 하고, 뿌듯해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길은 사라지지 않아" 역시 그 프로그램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책이 10년 전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었다는 글을 보니 그 프로그램이 이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딴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유명 인사들의 자녀가 아닌 우리나라의 평범한 청소년들이었다는 사실 정도랄까?
개인적으로 한 번도 계획 없는 여행을 꾸려본 적이 없다. 당일치기, 갑작스러운 무계획 여행을 두려워하는 성향 상 모든 여행들은 시간표가 어느 정도 짜여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렇기에 늘 익숙한 음식과 익숙한 장소들이 여행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책의 등장하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그 어떤 것 하나 익숙하지 않은 이역만리의 나라에서 모든 걸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자체만 해도 두려울 텐데 어른들도 아닌 10대 청소년들이(물론 14명의 아이들을 이끈 성인 보호자가 있긴 했지만) 피부로 부딪치며 해 나갔다는 것 자체만 해도 대단했다.
책 속에는 제주도에서의 사전 캠프 이후 인도의 라다크, 레, 히말라야 트레킹 등의 여정이 등장한다. 낯선 문화와 환경뿐 아니라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바로 숨 쉬는 것이었다. 고산지대에 머물렀던 여정들 속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와 고통, 두통 등을 경험하며 아이들은 조금씩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물론 여행 초반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나가는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 안에서 각자가 적은 짤막한 일기들은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늘 쫓기듯 학원으로, 학교로 내 몰리던 아이들이 뭔가 멈춘듯한 시간 속에서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행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아이들은 그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7~10년 여가 흐른 후 각자의 자리에서 성인이 된 아이들은 그때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곱씹으며 현재의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개중에는 고산병 후유증으로 1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었던 이야기나 계속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그곳을 가족들과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인생에서 보기에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책 속의 아이들뿐 아니라 책으로 그들의 여정을 같이한 나 역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 아이들도 이런 여행을 꿈꿔봤으면 좋겠다.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을,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다름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