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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플레이어 - 무례한 세상에서 품격을 지키며 이기는 기술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평점 :
어린 시절부터 나는 융통성이 없는 아이였다. 가르쳐준 대로, 소위 FM으로 살았다. 아직도 부끄러웠던 기억 하나가 있는데, 수업 시간에 너무 시끄러워서 선생님이 모두 눈을 감으라고 했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렀다.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선생님이 눈을 뜨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근데, 웃는 소리가 더 커져서 슬쩍 눈을 떴더니, 친구들이 나를 보면서 비웃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비단 단적인 예일 수 있겠지만, 공정한 것,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히려 정도(正道)를 가면 융통성이 없고, 답답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그런 세상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무례한 세상에서 품격을 지키면서 이기는 기술. 즉, 페어플레이(fair play)를 말이다. 저자는 반칙을 써서, 상대의 것을 쟁취해서 승리를 얻는 것이 이기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회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오히려 품격있게, 기술적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진정한 승리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반칙을 쓰고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방법은 단시간에는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나락을 떨어질 수 있단다.
책 속에는 참 많은 실례가 등장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은 1989년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 사건이었다. 당시 기장이었던 헤인즈와 부기장 빌 레코즈는 이륙 1시간 후 갑작스러운 폭발 소리를 듣게 된다. 폭발로 기체는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기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존재였다. 기장의 말이 곧 법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기장인 헤인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겼을까? 당시 기체는 장주기 운동으로 상승과 하강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 처했는데, 승객 중 여객기 기장이자 조종법 훈련교관인 데니 피치가 타고 있었다. 승무원은 기장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헤인즈는 데니 피치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같은 상황의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1999년 대한항공 화물기 747이 런던 외곽에서 추락한다. 당시 비행기 안에는 4명이 타고 있었다. 기장인 박덕규, 부기장 윤기식을 비롯하여 정비사까지 말이다.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던 기장과 상대적으로 신참인 부기장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엄격했다. 유나이티드 사건과 달리 KAL 화물기 사건은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도출해냈다. 헤인즈의 비행기는 정확한 판단력과 아집을 갖지 않은 마인드를 가진 헤인즈로 인해 180여 명이 살 수 있었지만, 박덕규의 비행기는 부기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결정이 최선이라 믿었던 기장의 안이한 생각으로 결국 전원 사망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저자는 경청하기, 제공하기, 방어하기를 통해 승리할 수 있는 법을 설명한다. 내가 전문가라 할지라도, 타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옳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할 경험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이 가진 목표를 지키면서 협력할 수 있는 법을 찾아야 한다.
책의 1부에서는 페어플레이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설명을 하고, 2부에서는 실제 그런 페어플레이의 자세로 성공을 이룬 인물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기분 또한 들었다. 물론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술은 쉽지 않다. 당연한 것이나 편한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아집을 버려야 한다. 또한 내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이익 또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무례한 세상을 향해 근사하고 품격있게 승리하는 기술을 꼭 체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