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코너스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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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쉽게 엄두가 안 나는 소설들이 있었다. 대부분 고전소설이나 상을 받은 소설들로 이해하기 쉽지 않거나 어려운 말이 가득해서 몇 장 읽다 포기하는 작품들이다. 물론 실제로 읽어본 책은 미미하지만, 그 몇 권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만들었다. '다른 책도 이렇겠지...'하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담아만 놓는 류 말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한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표지가 참 깨끗하다.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깔끔하게 새겨진 주황 벨벳 느낌이 좋다. 역시 두께도 그리 두껍지 않다.(어떤 고전들은 100쪽 미만이지만 700쪽 벽돌 책보다 더디게 읽히기도 한다;;)

우선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나름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수기 형식의 글이기에 주된 화자는 주인공인 오바 요조다. 그리고 서문과 후기의 화자는 오바 요조의 사진을 본 소설가의 글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유리고코로가 생각났다.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 모습이 인간실격 속 요조와 겹쳐졌기 때문이다.

요조는 소위 있는 집 도련님이었다. 사람들을 웃길 정도로 광대적인 면이 있었고, 그에 비해 성적도 좋아서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꽤 좋은 인상을 주는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는 특이한 면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계획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요조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감정들을 잘 공감하지 못했다. 관심도 없고, 좋지도 않지만 그저 연기하듯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물론 그런 모습은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갖고 싶은 선물이 없지만, 아버지의 기분을 생각해서 억지로 (아버지가 사주고 싶은) 사자탈을 수첩에 적어놓았던 일이나 엉뚱한 작문을 써놔서 선생님들을 웃기기도 한다. 어찌 보면 어려서부터 처세술을 깨달은 아이라는 생각도 들고, 진심으로 우러나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기에 쉽지 않겠다 싶기도 했지만 억지로 하는 것에 비해 어렵지 않은 것은 오랜 경험으로 숙달이 되어서는 아닐까?

그렇게 성장해 가는 요조는 우연히 미술학도인 호리키 마사오를 만나면서 염세적인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술과 담배, 마약을 하고 매춘부와 가까이 지내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사상에 빠져 지내기도 한다. 그러다 요시키를 만나게 되는데...

한마디로 여전히 나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내가 가진 행복이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진 행복의 관념이

서로 완전히 어긋나있는 듯한 불안,

나는 그 불안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다 미쳐 날뛸 뻔한 적도 있습니다.

책 마지막 장에 작가의 연대가 담겨있는데,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삶에서 상당한 시간을 자살시도로 보내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 소설의 제목처럼 자신의 삶이 인간으로 결격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끝내려 하는 우울한 인간의 모습을 소설과 삶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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