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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말고 파리로 간 물리학자
이기진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평점 :
티브이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한 계기에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물리학자를 본 적이 있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는 마이크로파를 통한 당뇨 수치를 재는 것이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공들여 연구를 했고 이제 그 결과물을 상용화하기 위한 단계에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임신성당뇨로 하루에 4번씩 채혈을 해야 했다. 다행히 출산 후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당뇨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에, 그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정말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상당히 유심히 프로그램을 봤다. 사실 물리학자로도 유명하지만, 가수 씨엘의 아빠로 더 유명한 이기진 교수의 이야기를 보며 연구만큼이나 놀랐던 것이 자녀 교육에 대한 부분이었다.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과거 씨엘의 자퇴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딸이 자퇴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본인이 교육자임에도 딸의 자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거나 화를 내기는커녕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에 문화충격이 크기도 했다. 궁금했다. 그가 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생각보다 평화로운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사실 물리학자기 때문에 조금은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론이나 연구 이야기를 풀어놓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자신이 연구하는 물리학을 설명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왠지 모르게 안심과 함께 흥미가 생겼다. 낮에는 열심히 연구를 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삶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왠지 멋져 보이기도 하고 진정한 워 라벨을 실천하는 삶이라 생각이 들어 부럽기도 했다. 책 속에는 저자가 머물렀던 프랑스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함께 했던 친구들 이야기, 맛있게 먹었던 음식 이야기, 프랑스 요리와 도구들에 대한 이야기, 프랑스 사람들과의 이야기 등 그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등장한다. 프랑스어를 나름 3년 배웠는데(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기억나는 건 인사 몇 개가 전부이기에 저자가 적어놓은 프랑스 단어들(그것도 필기체로 써서 알아보기 힘듦)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그림으로 잘 표현해 줬지만, 나름 설명이 한국어로 되어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프랑스어 그대로 적어놔서 말이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스스로 요리를 해 먹은 경우도 종종 있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레시피가 등장한다. 요리에 대한 내용도 상당수 있고 말이다. 실제 프랑스에서 산다면 이래저래 유용한 정보들(스파게티 면, 병따개 등)도 꽤 담겨있다. 이쯤 되면 물리학자의 부캐는 셰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음이 맞는 친구 혹은 이웃들과 가벼운 와인 한 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은 참 부럽다. 물론 문화도 다르고, 연구를 해야 하는 학자이기에 낮 동안의 생활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책 속에 담겨있는 저자의 모습은 참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가족들의 이야기도 등장해서 그런지 아빠의 삶도 멋졌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표지도 예쁘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