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안데스의 시간 - 그곳에 머물며 천천히 보고 느낀 3년의 기록
정성천 지음 / SISO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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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문명을 처음 접한 건 상당히 오래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서점에서 사 온 책 한 권. "태양의 아들 잉카"라는 제목의 책은 빽빽한 글과 함께 흑백이지만 낯선 풍경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아버지기에 세계 문명이나 세계사에 대한 책도 참 좋아하셨는데, 처음 보는 이색적인 이야기에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후 중년의 가수 3인방이 페루로 여행을 떠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고산지대가 많은 페루의 경치와 잉카문명으로 유명한 마추픽추를 담은 영상을 보고 예전 기억이 살포시 떠올랐다. 코로나19 시대기도 하지만, 워낙 해외에 나가면 배앓이와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기에 엄두가 안 나는 나였어서 마냥 동경 정도에 그치지만 뭔가 아쉬움이 자꾸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책을 만난 건 그런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실제 내 발로 디디고 공기를 맡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타인의 여행기를 따라가는 것 또한 또 다른 여행의 맛이 아닐까? 특히 시시각각 바뀌는 젊은이의 시각이 가득한 여행기도 좋지만, 연륜 있는 저자의 여유 있는 여행기 또한 새로운 맛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40년간 교직에 몸을 담고 있다 퇴직한 선생님이다.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해외 교육 자문관 파견 시험에 합격하고, 과거 근무했던 남미(브라질)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페루에서 지내며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했다. 많은 여행기를 만나봤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전직 교사여서 그런지 그저 유명한 곳의 풍경이나 있었던 일만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문화 같은 함께 알면 좋을 교양들을 같이 풀어낸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여행기를 따라가며 좀 더 입체적으로 여행지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익숙하게 들어본 관광지인 우유니 사막이나 쿠스코 뿐 아니라 저자가 머물렀던 지역인 모케과를 비롯해서 저자가 여행했던 아따까마 사막, 티티카카 호수와 우로스 섬, 씨피아 폭포 등의 여행기와 상당수의 사진들을 만나다 보니 흥미로웠다. 특히 치안이나 여러 가지가 불편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저자가 살았던 모케과의 경우 생각보다 치안이 좋았다고 한다. 역시나 번화가나 유명 관광지가 더 위험한가 보다.

관광지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서 모든 것이 하나 둘 변화해가고 있는 페루와 안데스의 모습을 통해 편의성을 잡긴 했지만, 천해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평생을 익숙하게 살았던 고국이 아닌, 많은 것이 이질적인 곳에서 살면서도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저자의 여유 또한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또한 새롭게 발견한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여행지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의 풍습이나 분위기, 풍경들을 꼼꼼하지만 다채롭게 기록했던 이야기라서(모케과의 개들과 손뜨개질하는 남자들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흥미로웠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영상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여행기. 덕분에 페루라는 나라를 한 번 더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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