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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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공포와 스릴러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겁보인 나는 공포물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특히 영상화된 작품들의 경우 극도로 꺼린다. 자다 깨거나, 화장실 갈 때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특이한 것은, 책은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장면 상상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사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 편이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사라고 해봤자 3번 정도 밖에 안되니 말이다. 지금 사는 집도 내가 구한 것이 아니다 보니, 이사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 등이 많지 않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이사에 대한 생각들을 곁들여가면서 읽게 된 것 같다.

총 6개의 단편이 담겨 있는 마리 유키코의 이사를 읽다 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도,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도 담겨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왜 무서운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디까지나 글로만 읽어서 그런 것 같다. 다시 읽으며 보니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지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공포는 정말 독자가 어디까지 상상하느냐에 따라 그 강도나 깊이가 다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상자라는 작품이었다.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 역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어서 더 실제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주인공 사토 유미에 회사에서 3월 중순 자리 교체를 했다. 많은 사람이 근무하기 때문에 스티커의 색과 번호를 이용해서 각자의 짐을 분리했다. 유미에에게는 입사 동기 교코가 있다. 둘은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문제는 유미에의 상자들이 다 사라지고, 오히려 그의 자리에는 모르는 상자들만 왕창 쌓여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라면 교코가 종이 명부 파일을 보내주기로 했다는 것. 식사 후 유미에는 43개의 상자 속에서 허우적대며 업무를 하다가 박스들이 자기 자리에 쌓인 것이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착오가 아니라 배송 처가 불확실한 물건들을 일부러 상자들을 유미에 자리에 쌓아놓았다는 사실 말이다. 한편 여기저기서 클레임과 업무 협조를 받는 유미에. 각 상자의 주인들이 걸려온 전화 속에서 유미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나마 유미에의 상자 두 개를 발견한 교코는 상자를 들고 유미에를 찾지만 유미에에게 고맙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다. 왜냐하면 유미에는 사라진 개인 물건이 들어있는 상자 하나를 못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유미에는 교코와 식사를 했던 분수광장에서 자신의 상자를 들고 가는 노숙자를 보게 되고 그를 좇아가게 되는데...

유미에의 상자에는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애지중지 한 것일까?

단편이라서 읽어나가는 속도감이 빠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지는 사실들은 소름을 끼치기에 충분하다. 상자라는 작품 역시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눈들과 그 모든 내용들이 합쳐지면서 만들어 낸 이야기가 공포 이상의 공포를 선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해설을 통해 알게 된 작가의 선물! 나처럼 눈치 없는 사람이라면 또 한 번 놀랄 수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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