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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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진실을 알아야 하는 동생의 추격기라고 할까?

그동안 접했던 소설과는 뭔가 다른 점이 존재하지만 말로 표현이 쉽지 않은... 그래서 심리 스릴러라고 소개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언니 레이첼과 동생 로라. 친밀한 자매는 아니었지만, 여느 자매처럼 미묘한 감정들이 쌓여있는 관계다.(원래 자매들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감정을 공유하며 싸움-옷이나 액세서리 등-도 하고 수다도 떨며 지낸다.) 레이첼과 떨어져 런던에서 보조 조경사로 일하는 로라는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러 기차를 탄다. 자매가 자란 동네에 한 여성이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며 역을 내리지만 언니가 마중을 나오지 않는다. 간호사로 일하는 언니는 워낙 바쁠 거라 예상한 로라는 언니의 집이 있는 콘월로 향하고 집 문을 열자마자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언니가 키우던 개 페노가 계단 꼭대기에 목줄로 매달려 죽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단에 피 묻은 손자국을 본 로라는 언니 레이첼이 살해당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도 로라는 이 모든 이야기를 언니에게 해주고 싶다. 마치 언니가 문을 열고 웃으며 나올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든다. 하지만 언니는 세상을 떠났고, 구급차와 경찰이 도착한다.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향해 가는 로라의 모습 속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나 불신이 보인다. 바로 경찰을 향해서다. 언니의 죽음을 수사하는 에빙던 서의 모레티 경위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도, 로라는 불안을 느낀다.

왜일까? 왜 로라는 경찰조차 믿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15년 전 그날 밤. 언니 레이첼이 당한 일 때문이었다.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한 레이첼을 향해 경찰들이 내뿜었던 말과 방관했던 조사들이 로라와 레이첼 자매로 하여금 불신감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인 레이첼이 술을 마시고 새벽에 나왔다는 이유를 대며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로라는 레이첼의 죽음 역시 경찰들이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내가 찾고 있는 건 어쩌면 각기 다른 남성 세 명일지도 모른다.

스네이스에서 언니를 공격했던 남자, 산등성이에서 언니를 지켜보았던 남자,

그리고 언니를 살해한 남자.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가득하다. 피해자가 어떤 상태에 있다고 해서 피해가 사라질까? 가해자의 가해가 사라지는 걸까? 외국의 소설임에도 우리나라의 이야기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경우가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역시 피해자에게 칼을 겨누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특히 성폭력의 경우 100% 가해자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옷 차람이나 행동을 운운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생각보다 쉽게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레이첼과 로라의 상처받은 마음에 더 마음이 쓰였다.

물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진범 찾기 또한 매력 있었다.

주인공이 전문적인 탐정이나 추리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기에, 추리소설 특유의 쪼이는 맛(?)이 크진 않지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자매가 겪은 감정적 묘사와 사건에 대한 생각들이 촘촘하게 서술되기 때문에 색다른 맛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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