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0.00001%도 상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바로 내 아이의 사고(혹은 죽음)이다. 돌 지나고 얼마 안 돼 아이를 재우기 위해 방에 들어가던 찰나! 갑자기 까무러치게 우는 아이를 보고 불을 켜니, 아이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말 찰나였다. 3초도 안되는 시간 속에 벌어진 일 앞에서 119를 불러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울고만 있었다. 평소 냉철한 내가 어떻게 그랬을까?
결국 신랑이 119에 전화를 해 대원들이 왔고, 입술 안과 밖에 많이 찢어진 대다 이가 다쳤을 수 있기에 종합병원으로 옮기자는 결론과 함께 처음으로 119를 타고 응급실에 갔고, 아이가 어린 관계로 수면마취를 하고 입술 안과 밖을 7바늘 꿰맸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그 순간 말이다.
이 책에 주인공 엄마 델마와 아들 루이의 이야기에 비하면 내가 겪은 일은 새 발의 피도 안되겠지만, 그 끔찍한 시간을 서로 이겨내고자 노력한 둘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감동을 느낀 것 또한 사실이다.
워킹맘이자 혼자 몸으로 아들을 키우는 델마. 여느 토요일 아침 같은 그날은 그들의 일생에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런저런 약속들로 바쁜 델마는 루이를 깨워 길을 나선다. 스케이트를 탄 루이는 엄마에게 뭔가 할 말이 있지만, 그때 걸려온 업무전화 한 통. 결국 루이의 말을 듣지 못하고 전화를 받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대형 여객선의 고동소리 같은 엄청난 소리가 들렸고, 거기 아들 루이가 누워있었다.
대형 트럭에 치인 루이. 시간은 그렇게 멈췄다.
아들이 사고를 당한 그 주말. 그럼에도 워킹맘이기에 델마는 빅 보스에게 발표할 PPT를 마무리한다. 루이를 지키려면 직장을 그만둘 수 없기에 악착같이 일을 하는 델마는 월요일 자신의 PPT를 발표한다. 성차별, 성희롱이 난무하는 회사.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프로답게 일을 처리했던 델마의 프레젠테이션 앞에서 빅보스는 딴짓을 하고, 결국 델마는 발표를 멈췄다. 여전히 헛소리만 짓거리는 빅보스. 여전히 성차별과 성희롱적 발언만 일삼는 빅 보스. 델마는 그동안 참았던 화를 담아 빅 보스의 따귀를 날리고, 그렇게 실업자가 된다.
"그렇지 않다. 네가 틀렸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란다.
네가 그렇게 생각 안 할 뿐이지.
그 부정적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야 해. 내가 곁에 있잖니.
루이가 곁에 있잖아. 의사들은 거짓말하지 않아. 우리 꼬마 루이를 붙잡아두고
있다는 건 희망이 있다는 얘기야.
너는 강하다, 델마. 오래도록 네게 얘기한 적 없지만,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지금의 모습으로 자란 네가 자랑스러워."
루이를 잃게 될 거란 불안감에 델마는 일상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녀 곁으로 와준 그녀의 엄마는 델마가 포기하지 않도록 악역을 맡기로 한다. 사고 후 한동안 들어가지 못했던 루이의 방을 청소하다 발견한 공책 한 권.
루이가 자신의 꿈을 적은 꿈 수첩이었다. 노트를 보는 순간 델마는 결심한다. 루이를 대신해, 루이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말이다.
이제 안락한 내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준비되었다.
루이를 위해. 그리고 조금은 나 자신을 위해.
루이와 델마의 시선이 책 속에서 교차한다. 처음에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해서 눈물이 흘렀다. 나 역시 워킹맘이기에 델마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내 커리어도 잘 관리하고 싶고... 두 가지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던 델마의 마음을 나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응원의 마음으로 바뀌었다. 루이와 델마를 함께 응원하고 있었다.
루이의 꿈을 위한 델마의 발자국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단지, 루이를 위한 게 아니라 어쩌면 델마를 위한 게 되었으니 말이다. 루이에게 하루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그녀 역시 또 다른 도전을 받는다. 시작은 루이였지만, 과정을 통해 루이와 델마가 함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했다. 끔찍한 그 하루가 없었다면, 과연 루이와 델마는 일상을 살고 있겠지만 서로의 꿈을, 성장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끔찍한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