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정신없이 읽다 보니 순식간에 책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소가 마사유키는 32세의 조경사다. 솜씨가 좋고, 깔끔하지만 온몸이 화상으로 인해 몸을 쓰는 게 자유롭지 않고 서른임에도 백발인 남자. 그가 일하는 소가조원에서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조경사 일을 하고 있다.

특이점이라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매일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난봉꾼 집안으로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

일을 하던 중 급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시마모토 료헤이가 다쳐서 응급실로 갔다는 전화다.

일 마무리도 못하고 료헤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한 마사유키는 팔을 다친 료헤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다준다.

(근데 료헤이와 마사유키는 예상과 달리 친척도 피가 섞인 사이도 아닌데, 왜 경찰은 마샤유키에게 전화를 건 걸까?)

저녁을 차려주던 중 료헤이의 할머니 후미에가 돌아오고, 마사유키를 본 후미에는 고맙다는 말이 아닌 가시 돋친 말만 쏟아낸다.

마사유키가 기다리는 7월 7일까지 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후미에가 사망한다.

후미에의 부고 소식에 마사유키는 고민에 휩싸이지만 결국 료헤이를 맡기로 (료헤이의 부모는 이미 사망했고, 후미에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료헤이는 그런 마사유키의 제안에 대해 불만과 함께 할머니처럼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막 걷기 시작한 때부터 12년 동안 마사유키는 후미에와 료헤이를 돌봤다.

그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이고, 마사유키는 왜 후미에가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식사나 불단에 제를 올리는 것조차 거부함에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일까?

처음에는 자신이 저지른 사건도 아니고, 엄연히 가해자도 아닌 마사유키의 희생이 너무 답답했고, 개 취급도 하지 않고 용서조차 하지 않으면서 12년간 마사유키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받는 후미에의 모습에 화를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마사유키의 속죄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같다.

태어나 자신을 처음 친구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대신해 속죄하고 싶은 미안함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럼에도 마사유키가 안쓰러운 건 사실이었다.

자신의 실수도 아무렇지 않게 치부해버리는 세태 속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마사유키의 모습은 그저 어리숙한 바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서 마사유키의 모습이 더 울림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들 결핍을 안고 있다.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낳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