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이 엉키지 않았으면 몰랐을 - 엄마의 잃어버린 시간 찾기
은수 지음 / 이비락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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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삶은 멀리서 볼 때와, 그 안에 들어와서 볼 때의 온도차가 상당하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경험해봐야 더 잘 느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경험이나 감정들이 책 속에 녹아있어서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나는 그랬다. 우리 엄마는 지금 봐도 원더우먼이다.

새벽에 일어나 손빨래를 하고, 아침밥을 하고, 집안일을 해놓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 들어와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쪽잠을 자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결혼해도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다.

그때는 가끔 한 번씩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하는 게 마치 엄청난 일을 한 것 마냥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원래는 엄마가 할 일인데(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다. 결혼 전까지 그랬으니 말이다.) 내가 도와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당연한 것은 없었다. 엄마의 일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편하자고, 엄마에게 미뤄둔 우리의 일이었다. 엄마도 자고 싶고,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이래저래 하고 싶은 게 많았을 텐데 엄마의 시간을, 자유를, 노력을, 야금야금 빼 먹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 속에 나오는 저자의 눈물을 보며, 우리 엄마도 내 모습도 보였던 것 같다.

다행이라면 우리 시어머니는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주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

(본인 몸이 아프셔도, 자식들 먹이겠다고 늘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하시는 분이시다. 물론 가끔 그런 정성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남편과 비교해도 딸리지 않은 스펙을 가졌지만, 아이를 양육해야 하기에 직장을 포기하고 경단녀가 된 엄마.

어렵게 구한 기간제 교사 자리지만, 이래저래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는 엄마.

그렇게 이런저런 손길이 필요할 때가 지나, 엄마를 찾지 않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엄마.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아직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지금으로는 먼 미래의 이야기까지 말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깨어서 잘 때까지의 모든 일이 엄마의 일이 된다.

엄마를 하루에도 수십 번 부르는 아이의 요구를 그때마다 적절하게 들어줘야 하는 것은 별개고 말이다.

나는 지금 워킹맘으로 살고 있지만, 직장을 그만두면 어떨까?

저자는 뭐 하나 사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그 눈치의 대부분은 시어머니한테서 오는 것이었지만... ᅲ)

그래서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면, 또 아이들이 걸리고 말이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ㅠ)

남편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직장은 단순히 돈벌이 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단지 돈이 없어서 직장을 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왜 이해해주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갑자기 엄마의 시간에 공백이 생겼을 때 저자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자유시간 앞에서 뭘 해야 할지 버벅대는 모습...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순 없었지만, 퇴사 후 느껴지는 기분과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요즘도 나는 가끔 부모님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엄마는 아직도 말린다.

엄마가 할게~하면서 말이다. 예전 같으면 좋다고 앉아있었을 텐데, 요즘은 속이 상하다.

친정 부모님이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셔서, 회사에 급한 일이나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는 부모님의 손을 빌린다. 어찌 보면 엄마의(혹은 아빠의) 일을 하나 더 늘린 셈이 된 것이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손이 필요하다. 전보다 더 바쁜 엄마의 손 말이다.

그리고 그 손 앞에서 나는 오늘도 숨 쉴 틈을 얻는다. 엄마의 희생을 담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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