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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세계사 ㅣ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17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곰브리치 세계사 = 재미있는 세계사🌲
세계사 하면 외울 것도 많고 사건도 많고 다소 딱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플 이웃님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작년에도 세계사에 관한 책들을 읽었지만 사건 중심이라 별로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서술 방식이 약간 달랐다. 애당초 손자뻘 되는 아이들을 위해 쓰다 보니 전문용어는 아예 없고 이야기식으로 쓰여있어 읽기가 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이틀 동안 틈틈이 읽어 보았는데 처음 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었다. 물론 세계사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분들은 다소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다만 이 책은 유럽 중심으로 씌여져 있다. 근현대사가 주로 유럽 중심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역사를 소설처럼 읽으실 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문장을 몇 개만 올려본다. 특히 19번 별이 빛나는 밤에... 이 부분에서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베네딕트님의 말씀이 감동적이었다.
이 틀 동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에른스트 교수님에게 감사드린다.
2020.1.8.목
12.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모험가
한 번은 그의 아버지가 아주 멋지지만 성질이 사나운 말 한 마리를 샀다.(중략) 알렉산드로스는 말이 태양을 향해 서게 하여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말을 쓰다듬어 주면서 얼른 올라탔고 온 왕궁의 갈채를 받으면서 말을 몰았다. 그 후로 부케팔루스는 알렉산드롯의 애마가 되었다.(p122-123)
‘고르디우스의 매듭‘ 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소아시아 정복 과정에서 생겨났다.(중략) 검을 빼 들어 매듭을 반 토막 냈던 것이다. 이 행동은 ˝내가 검을 쥐고 세상을 정복하여 예언을 실현하겠다.˝는 뜻이었다.(p124)
알렉산드로스는 한창때인 서른두 살에 죽고 말았다. 열에 들떠 병상에 누워 있던 알렉산드로스는 누구를 후계자로 삼을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품위 있는 자.˝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중략) 이집트는 사령관인 프톨레마이오스의 가문이 다스렸고 메소포타미아는 셀레우코스의 가문이 차지했으며 소아시아는 안티오 소스의 가문이 지배했다. 인도는 완전히 잃어버렸다.(p133)
16.기쁜 소식
사도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략)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중략) ‘좋은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은 그리스어로 ‘에브 안겔리온‘이며, ‘복음‘을 뜻하는 독일어 ‘에반겔리움‘도 여기서 비롯됐다.(P165-166)
18.천둥 번개가 치던 시대
476년 새로운 시대, 즉 ‘중세‘가 시작된다.(중략)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이탈리아를 오랫동안 다스리지는 못했다. 568년 북쪽에서 또 다른 게르만족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서서히 별이 빛나는 밤이 찾아왔다. 중세로 접어든 것이다.(p187-189)
19.별이 빛나는 밤에
베네딕트는 참회만이 그리스도가 가르친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스스로 선해지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선한 일도 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중략) 베네딕트가 세운 협회는 그의 이름을 따서 ‘베네딕트 수도회‘라 불리게 되었다.(중략) 수도원에 들어 오려는 사람은 세 가지 덕목에 서약해야 했다. 그 세 가지란, 첫째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며, 둘째로 결혼하지 말 것이고, 셋째로는 수도원장에게 항상 그리고 무조건 복종할 것이었다.(p193)
20.알라 외는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예언자다
무함마드는 아랍 어로 ‘알라‘라 불리는 신 이외에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중략) ‘복종‘은 아랍 어로 ‘이슬람‘인데, 무함마드는 자신의 교리를 이슬람이라 불렀다(p203)
25.도시와 시민
특히 유대인은 언제나 박해의 대상이었는데, (중략) 유대 인은 경작지를소유할 수 없었고 농부도 될 수 없었으며 기사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들은 수공업에도 종사할 수 없었으니, 유일하게 허용되는 것은 상업이었다. 도시의 특정 지역에만 거주할 수 있었고 특정한 옷을 입어야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큰돈을 벌었으며 기사나 시민들도 이들에게서 돈을 빌려 쓰게 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대 인은 더욱 미움을 샀고 습격을 받아 돈을 강탈당하는 일도 자주 겪었다.(p265-266)
26.새로운 시대
1420년경 피렌체 시민들은 이런 자신들이 중세의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중략) 오래전 지나가 버린 옛 시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시대가 갑작스레 ‘되살아난‘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고대 문물을 통해 자신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재생‘이나 ‘부활‘을 뜻하는 ‘리나시멘토‘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말보다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p274-275)
1453년 이후에는 책들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발명이란 인쇄술을 말하며, 이는 페니키아 인의 알파벳 발명에 버금갈 만큼 위대한 것이었다.(중략) 곧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인쇄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며, 이렇게 인쇄된 서적이나 성서, 여러 문서들이 도시는 물론 시골에도 널리 보급되었다.(p280-281)
28.새로운 신앙
루터는 이렇게 가르치고 썼다. ˝믿음 외에는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중략)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신의 은총을 얻도록 도와줄 수는 없다. 달리 말해 모든 신자는 스스로가 사제이다.(중략)신자는 교회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각자 성서를 열심히 읽어 신의 생각을 알아내야 한다.. 성서에 나와 있는 것만이 타당하다.˝ 루터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p300-301)
29.교회 사이의 투쟁
모두들 자신의 생각을 제어할 수 단계에 이르자 로욜라아와 친구들은 ‘예수의 군대‘라 불리는 수도회를 창설했다. 바로 ‘예수회‘가 설립된 것이다.(중략)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하는 대신 교회 자체를 혁신하는 길을 통해 초기 크리스트 교도의 경건함을 회복시키고, 그리하여 종교 걔혁에 효과적으로 맞서려 한 이런 노력을 ‘반종교 개혁‘이라 부른다.(p310-311)
33.계몽의 시대
계몽주의의 탄생 이후 200년 동안 사람들은 지난 2,000년 동안보다 훨씬 더 많은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고 알아냈다. 특히 계몽주의의 세 가지 주요 신조인 관용과 이성, 인도주의는 잊지 말아야 한다.(p352)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국가 제일의 공복이라 생각했고 계몽주의를 관철시키려고 애썼다. 또한 프로이센을 독일의 최강국으로 만들고 오스트리아 황제의 힘을 빼앗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왜냐하면 오스트리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신앙심이 깊은 훌륭한 어머니로 자녀도 열여섯 명이나 둔 여자였다. 무엇보다도 국민 교육에 힘을 썼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스웨덴, 러시아의 편이 되었고 프리드리히 대왕을 지원한 나라는 영국뿐이었다.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 황태자에게 시집을 보냈고 아들인 요제프 2세는 더 열렬히 계몽주의를 위해 싸웠다. 미국 독립전쟁의 지도자는 벤자민 프랭클린이었는데 그는 이성적이고 검소한 사람이었다. 또한 조지 워싱톤은 영국인 이주자와 무역 도시의 시민들과 함께 연방을 결성했고 1776년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신성한 인권을 신생 국가의 기본봅으로 천명했지만 노예는 포기하지 않았다.(p354-357)
40.나 자신이 체험한 세계사의 한 부분 - 회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에서는 관용이라는 것이 점차 자취를 감췄다. 이들 나라의 정치가들은 이른바 ‘세계 분할‘에 서 자국이 불이익을 입었다고 국민들에게 이야기했으며 자국은 원래부터 다른 민족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정치가들은 국민에게 고대 로마 제국의 후손임을 상기시켰고, 일본 정치가들은 무사의 전통을, 독일 정치가들은 국민에게 고대 로마 제국의 후손임을 상기시켰고, 일본 정치가들은 무사의 전통을, 독일 정치가들은 옛 게르만족이나 카롤루스 대제 혹은 프리드리히 대왕 등을 상기시켰다.(p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