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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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이시는 초등학생 시절 인큐베이터로 부화한 병아리를 키우던 게 기억났다.
여섯 놈이 알을 까고 나왔는데, 그중 한 놈은 날 때부터 다리 한 짝이 굽어 있었다.
언제나 먹이통과 물통에 가장 늦게 도착했고, 다른 형제들보다 야위고 머뭇거렸다.
어느 날, 그 불구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들에게 쪼여 죽었다.

_ <19분> 권1, 127쪽 중에서

 
   

2007년 3월 6일 아침. 스털링 고등학교에 다니는 피터 호턴은 자신의 파란 책가방에 책을 대신해 총 네 자루와 폭탄 재료, 더하여 198명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탄약을 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한 그는 먼저 매슈 로이스턴의 차를 찾아 폭탄을 설치했다. 그리고 폭탄이 터지는 동안 피터 호턴은 학교 정문 계단을 오르면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첫 피해자는 조 패터슨이었다. 복도에서는 알리사 카를, 카페테리아에서는 엔젤라 프루그와 마들렌 쇼, 코트니 이그나시오를 쏘았다.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을에게 총을 난사한 피터 호튼은 이제 겨우 복수의 커튼이 열렸다는 듯 사상장와 부상자들이 흐느끼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크리스피 시리얼을 먹는다. 마치 더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든든히 먹어두는 사람처럼. 

시리얼 그릇을 비운 그는 다시 총을 들고 카페테리아를 나가 복도에서 자레드 위너 등 세 명의 학생을 총으로 난사하고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있던 프랑스어 교사 루시아 리톨리까지 죽인다. 정문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교실, 카페테리아,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을 따라 체육관까지 간 그는 드디어 마지막 난사 지점은 라커룸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매슈 로이스턴을 두 번 쏘는 것으로 난사 사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언니의 골수이식을 위해 태어난 동생이 부모를 고소한다는 내용의  <쌍둥이별>(<마이 시스터즈 키퍼>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기에 그 제목으로 쓴다.)에서 '맞춤형 아기'가 불러오는 가족 내의 갈등과 사회적 책임과 관심을 물은 조디 피콜트가 이번에는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더욱 묵직한 소재로 찾아왔다.

<19분>은 이성과 감성이 모두 가장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남과 다르다는 것이 불러오는 갈등과 상처들, 그리고 무심코 던지는 어른들의 작은 언행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각 캐릭터들의 치밀한 내면 묘사와 후반부에 벌어지는 법정 싸움은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큰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 머릿 속에 영상이 그려지고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만만찮은 분량에도 불구하고(두권 합쳐서 약 800쪽) 한번 잡은 이 책을 놓지 못하고 밤을 새워 읽은 건 간만에 해보는 경험이었다. 


오늘, 아무 아이나 부잡고 인기를 얻고 싶은가를 물어본다면, 그 아이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목말라 죽을 것 같은 사막에서 그 아이에게 한 잔의 물과 당장의 인기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그 아이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알다시피. 당신은 인기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당신을 덜 근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_ <19분>, 권2, 6쪽 중에서

앞부분에 말한 피터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어느 평온한 날 아침 19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안전해야할 학교에서 총을 난사하며 수년간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친구들의 눈 앞에 총 구멍을 들이밀은...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피터가 이 사건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지난 17년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는 피터가 가해자가 아닌 그 역시 피해자였음을 보여준다.

외소한 몸집에 내향적이었던 피터의 포지셔닝은 유치원 버스를 타는 첫 날 그의 도시락 통이 친구들에 의해 창 밖으로 던져지면서 시작되었다. 집에서는 운동도, 공부도 잘하는 형과 비교되기 일수였고, 형 역시 잘나가는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피터를 짓밟으며 더 위로 올라선다.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던 조지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피터에게서 멀어진다. 피터와 함께 있으면 자기에게 닥쳐올 후한도 있었지만, 관심 받고 인기 있는 아이들 그룹에 속한다는 그 매력을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조지가 속해있는 그룹의 친구들의 장난으로 피터가 가슴 졸이며 보낸 사랑 고백 메일이 전교생을 상대로 뿌려지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가장 감수성이 민감할 나이인 그때, 찌질하고 못난 한 남학생이 학교에서 잘나가는, 그리고 더 잘나가는 남자친구가 옆에 있는 여자를 "감히" 사랑하는 사건이 온 학교에 까발려진 것이다. 지금까지 내밀었던 수많은 구원과 도움의 손길은 실패한지 오래였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리고 옛 친구이자 사랑하는 조지마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제 아무리 자신을 스스로 타일러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복수'라는 두 단어 뿐이었다.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인기가 당신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떻게 입는지, 점심은 무얼 먹는지, MP3에 어떤 음악이 들어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그러나 나는 늘 이게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중요한 거라면, 당신은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_ <19분>, 권2, 6쪽 중에서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제목에서도 그랬듯이 '19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19분이면, 잔디를 깎고, 염색을 하고, 빠래를 갤 수도 있지만,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 공격을 게시할 수 있으며, 복수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 그치만 책을 읽고 난 후에 남는 건 '19분'이 아니라 '나와 다른 남이 공존하는 이 세상'이었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인정을 넘어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남과 같아야 하고 튀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받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더더욱.

조지의 마지막 법정 진술로 마무리 되는 이 사건에서 조지는 법정을 내려와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는 피터랑 같아. 우리 중 몇 명은 그걸 잘 숨기는 것뿐이야. 눈에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사는 거랑 모두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척하며 사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아? 어느 쪽이든, 가짜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시죠?'라고 묻지 '당신은 누구신가요?'를 묻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연극을 하며 나 역시 너와 같다고 외치고 있는지 모른다. 조지의 마지막 외침처럼 우리의 내면은 모두 피터와 같았을지 모른다.

조디 피콜트의 소설은 그래서 좋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묵직한 소재를 맛깔지게 요리해내니 말이다. <쌍둥이별>에 이어 또 한번의 영화화 소설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이번에는 제발 엉뚱한 제목으로 바꾸어 책의 아우라를 망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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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주홍색 연구 펭귄클래식 58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에드 글리네르트 주해, 이언 싱클레어 작품해설,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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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이라는 말만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바로 '셜록 홈즈'다. 셜록 홈즈를 만들어 낸 아서 코난 도일의 이름보다도 그의 소설 속 인물인 홈즈의 이름이 더 먼저,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인물. 초등학교 시절, 단짝친구와 열광하며 읽었던 인물. 그래서 한때는 실제 존재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그의 사진을 찾아 다녔던 인물. 인색끔찍한 사건 보다도, 사건 속 이해관계 보다도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 셜록 홈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기억 속 한편에 묻어두었었던 홈즈의 이름이 다시  떠오른 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셜록 홈즈> 때문이었다. 출퇴근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포스터들과 각종 기사 때문에 홈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홈즈의 추억을 떠올려보고 싶었다. 어린시절 열광하던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었다. 홈즈에 대한 책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첫 소설인 <주홍색 연구>를 손에 잡게 되었다.

     셜록 홈즈가 가진 지식의 범위
      
      1. 문학에 대한 지식 : 전무함
      2. 철학에 대한 지식 : 전무함
      3. 정치에 대한 지식 : 부족함
      ...
      9. 끔찍한 사건을  다룬 문헌에 대한 지식 : 놀라운 수준.
      _ <주홍색 연구> 29쪽 중에서

 

<주홍색 연구>는 홈즈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존 왓슨 박사와 셜록 홈즈의 첫 만남에서부터부터 런던 남동부 지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어떤 다른 시리즈의 책보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왓슨 박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홈즈는 이해 불가능한 사람이다. 화학과 의학분야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 사람이 전공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 박식하지만, 태양계이야기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규학과 과정을 밟은 것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홈즈의 캐릭터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바로 '지동설'에 얽힌 이야기인데 바로 이 <주홍색 연구>에 나온다. 홈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왓슨 박사는 홈즈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음을 발견한다. 더 놀라운 것은 홈즈의 다음 반응이었다. "이제 모르던 것 알았으니 잊으려고 최개한 노력해야겠습니다." 홈즈의 논리에 따르자면 인간의 뇌가 담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 따위의 사실은 자신의 인생과 일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않으니 다른 유용한 정보들을 위해 바로 그 정보는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홈즈는 겉치레도 속임수도 없으며, 궤변이나 형이삭학적 사고를 배제하고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하는 실증주의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추리 논리를 보면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능한 현장에서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사실과 사건을 머릿 속에 넣어놓고 예상되는 결과를 추론하는 것, 즉 거슬러 뒤짚어 가는 추론(홈즈의 말에 의하면 '분석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 <주홍색 연구>에서도 이 논리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던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해낸다.

사실... 추리소설을 읽는데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저 홈즈의 매력에 푹 빠져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범인을 찾아내 지목하는 순간의 짜릿함을 함께 느끼면 되는 것을. 홈즈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전집 9권에 마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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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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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심장을 준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지만
그 심장을 뛰게 만든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_ <당신 없는 나는>, 245쪽 중에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1995년 샌프란시스코의 여름 햇살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긴 머리와 반짝이는 초록빛 눈동자를 가진 버클리대 3년생인 스무 살의 가브리엘과, 소르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어학연수차 미국 땅을 밟은 마르탱의 위대한 첫사랑은 그해 여름 한 통의 편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서글픈 사랑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날 밤, 지독한 추위와 외로움으로 둘러쌓인 맨해튼의 어느 카페에서 1막을 내렸다. 2막은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다시 시작된다.

파리와 샌프란시스코의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도시의 배경과, 고흐의 자화상과 천국의 열쇠라 불리는 전설의 다이아몬드 등신비로우면서도 몽환적인 소재들. 출생의 아픔으로 외로움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 가브리엘과 사랑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심장이 필요없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마르탱, 작가의 사망일에 맞춰 명화를 훔치며 씻을 수 없는 죄에 대해 속죄하는 아키볼드, 이 세명 주인공이 펼쳐나가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당신 없는 나는?>이다. 

기욤 뮈소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개인적으로 기욤 뮈소는 손에 꼽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문학성은 차치하더라도 이야기의 구성력이라는 지점에 있어서는 최고다. 특히 대중소설에서 이는 독자들의 호흡을 끌고 나가는 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 부분에 있어 기욤 뮈소는 탁월한 서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화면(배경) 전환이나 이야기의 전환 방식이 마치 영화를 보는듯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서서히 밝혀지는 사건 이면의 관계들과 얽혀진 이야기들이 소설의 폭을 더욱 넓혀준다. 

2009년 작 <당신 없는 나는?> 은 비주얼한 측면을 강조하는 기욤 뮈소의 장점이 가득한 책이다. 고풍스럽고 차분한 파리의 골목길과 센강을 가로지리는 퐁네프 다리, 샌프란시스코의 바닷가와 안개도 삼키지 못하는 강렬한 주홍빛을 뽐내는 금문교, 포근한 눈과 세련된 건물들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 12월의 뉴욕까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세 도시는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의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가브리엘과 마르탱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르탱은 파리로 다시 돌아가야만했고, 그들은 서로의 사랑만을 확인한채 편지와 전화로 그 사랑을 이어갔다. 하지만 인터넷도, 장거리 전화 시스템도 잘 되어 있지 않은 때라 서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으려면 최소 3주가 걸렸고, 전화도 점점 힘들어져갔다. 마르탱은 청혼을 결심하고 가브리엘에게 12월 24일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보내 자신을 만나러 와주기를 청한다. 그리고 24일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근처 카페에서 한 남자가 하루 종일을 누군가를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가는 모습이 목격된다.

가브리엘이 뉴욕에 가지 못한 사연과 프랑스로 돌아가 경찰이 되어버린 마르탱의 삶, 그리고 마르탱이 모든 것을 걸어가며 쫓는 명화 절도범 아키볼드 등이 얽히고 섥힌 이야기가 바로 <당신 없는 나의?>의 내용이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이 묘미라고 하면 한국 여성인 '오문진'의 등장이다. 마르탱에게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한국인 검사로 등장하는데 그녀에 대한 묘사와 함께 한국의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 재미있다. 기욤 뮈소의 한국에 대한 관심인지, 한국 독자들에 대한 팬 서비스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처음 기욤 뮈소의 책(<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처음 읽었고, 여전히 기욤 뮈소의 책 중에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한다)을 읽었을 때 만큼의 울림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욤 뮈소의 새로운 책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었다. <당신 없는 나는?>이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거였을거다. "나는 심장을 두 개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하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또 하나는 항상 사랑에 빠져 있는 것으로. 그랬다면 두 번째 심장에게 두근거리는 임무를 맡겨 두고, 다른 하나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으리라. _ <당신 없는 나는?> 56쪽 중에서" 

[출처] 내 심장을 뛰게한 건 당신입니다 _ <당신 없는 나는?>|작성자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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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거품 펭귄클래식 52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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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해 이토록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가 또 있을까?  보리스 비앙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건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관련리뷰 : http://blog.naver.com/nayana0725/40092779023 ). 죽음,충동,에로티즘,폭력,환상의 하드보일드라는 평을 받는 이 소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동생을 잃은 형이 백인사회에 복수를 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리에게 사랑은 복수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반면 <세월의 거품> 속 주인공 콜랭에게 사랑은 목적이다. 언젠가 찾아올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콜랭은 어느날 드디어 운명의 여자 클로에를 만나다. 클로에와 사랑에 빠진 콜랭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지만 클로에는 곧 병에 걸리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면서까지 그녀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생전 안해보던 '노동'이라는 것도 하게 되고, 한번도 누군가에게 비굴하게 부탁을 한 적이 없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이 두 소설이 같은 작가의 머릿 속에서 나왔다는 것부터가 내게는 충격이었다. 사랑을 잔인한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도, 한 사람의 전부를 걸어서라도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목적으로도 너무나 멋지게 그려낸 보리스 비앙은 굉장히 넓고 깊은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폭력적으로, 때로는 가슴이 절절해질 정도로 애절하게 사랑을 그려내고 있으니깐 말이다.  <세월의 거품>은 이렇게 보리스 비앙에 대한 작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게한 책이었다. 
 

   
  골치가 다 아파. 어떨 땐 절망에 빠져 있다가도 또 어떨 땐 한없이 행복해지는 거야. 
뭔가를 이렇게까지 갈망한다는 건 너무나 기분 좋은 일이야."

_ <세월의 거품>, 55쪽
 
   

 
<세월의 거품>은 300만 부 이상 팔리는 등 현대 프랑스 문화계에서 성공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부잣집 도련님과 같은 콜랭은 어느날 파티에서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클로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클로에는 폐에 수련이 피어나는 병(아마도 폐렴 정도가 아닐까. 보리스 비앙은 이처럼  감각적인 언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환상적으로 그린다)에 걸리고, 콜랭은 그녀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치료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치료비를 벌기 위해 급기야 막노동까지 하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이 소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작가가 좋아했다던 ,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은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고(듀크 엘링턴의 음악 중 '클로에'라는 음악이 있다. 콜랭과 클로에가 만나는 순간 나오는 음악도 바로 이 음악이다), 콜랭의 집안 곳곳을 다니며 그의 일상과 생각을 읽어내는 작은 생쥐는 마치 내면과의 대화를 연상케하고, 돈을 벌러간 군대에서 온 몸으로 총기를 만드는 판타지적 요소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군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사회 비판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소설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잘 녹아있다. 돈에 의해 성대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을 결정해버리는 교회, 경찰은 아무 근거 없이 총을 들이대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며, 프로그래밍 된 공장은 인간을 하나의 노동하는 기계로만 볼 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묘사들이 동화처럼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어서 읽는 내내 전혀 불쾌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조롱의 웃음을 자아낸다.

콜랭의 친구인 시크가 보이는 책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니다. 그는 파르트르라는 철학자(사르트르가 아닐까?)에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데 그의 강연회를 듣고 책을 사기 위해 그의 연인 알리즈와의 결혼 자금을 다 날려버리고 만다. 이 둘의 결말은 조금은 엽기적이기는 하지만 정작 책 한 줄 읽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파라트르에 열광하는 그의 모습은 내공은 없이 지적 허영심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식인들에 대한 조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세월의 거품>은 프랑스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책 발간 이후 이를 각색한 영화, 오페라, 연극들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하나의 트렌드어로 각종 광고와 상업물에 사용될 정도였단다. 제목만큼 낭만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세월의 거품>.  모든 것을 떠나 책을 덮은 후에 콜랭의 헌신적인 마음만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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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철학자들의 서 -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
사이먼 크리칠리 지음, 김대연 옮김 / 이마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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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자의 서>는 티베트불교의 구도자 파드마삼바바가 깨달은 가르침을 후세 제자들에게 전하는 책으로 사후세계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환생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영원한 대자유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등등 열반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죽음의 의례들을 설명한다. 이와 비슷한 <이집트 사자의 서>는 영혼이 별들이나 태양에 있는 내세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189개의 주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티베트나 이집트에 '사자(死者)의 서'가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현생보다는 후세에 대한 고민, 육체보다는 영혼에 무게의 중점을 두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의 문제를 고민했던 철학자들은 '죽음'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현재'를 고민하는 이들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기는 했을까?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던 그들은 어떤 죽음을 맞이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책이 바로 <죽은 철학자들의 서>이다. 철학자들은 어떻게 죽었으며 죽음 혹은 죽어감에 대해 우리가 철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적절한 태도란 무엇인가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고대 철학자에서 20세기 사상가들까지 짦은 설명과 함께 다양한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단락 단락 끊어져 있어 익숙한 철학자부터 낯선 철학자까지 골라 읽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죽음을 맞는 철학자들의 모습은 때로는 경건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머스럽기도 하다. 플라톤은 그동안 자신이 글을 써오던 책상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소똥에 질식사했다. 쾌락을 추구했던 에피쿠로스는 신장병에 걸려 살을 찢는 고통 속에서도 벗들과 제자들에 둘러싸여 유쾌한 죽음을 맞이했고, 신비로운 아우라를 가진 노자는 <도덕경>을 쓰고 어디론가 떠나 그렇게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메멘토 모리. 우리가 살아가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상기하는 것은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맨 첫장에 저자는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완결성은 조금 부족한 책이지만 탈레스에서 데리다까지 동서고금을 망라한 유명 철학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수백까지 모습은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요즘 지나 온 나의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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