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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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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는 초등학생 시절 인큐베이터로 부화한 병아리를 키우던 게 기억났다.
여섯 놈이 알을 까고 나왔는데, 그중 한 놈은 날 때부터 다리 한 짝이 굽어 있었다.
언제나 먹이통과 물통에 가장 늦게 도착했고, 다른 형제들보다 야위고 머뭇거렸다.
어느 날, 그 불구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들에게 쪼여 죽었다.
_ <19분> 권1, 127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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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6일 아침. 스털링 고등학교에 다니는 피터 호턴은 자신의 파란 책가방에 책을 대신해 총 네 자루와 폭탄 재료, 더하여 198명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탄약을 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한 그는 먼저 매슈 로이스턴의 차를 찾아 폭탄을 설치했다. 그리고 폭탄이 터지는 동안 피터 호턴은 학교 정문 계단을 오르면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첫 피해자는 조 패터슨이었다. 복도에서는 알리사 카를, 카페테리아에서는 엔젤라 프루그와 마들렌 쇼, 코트니 이그나시오를 쏘았다.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을에게 총을 난사한 피터 호튼은 이제 겨우 복수의 커튼이 열렸다는 듯 사상장와 부상자들이 흐느끼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크리스피 시리얼을 먹는다. 마치 더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든든히 먹어두는 사람처럼.
시리얼 그릇을 비운 그는 다시 총을 들고 카페테리아를 나가 복도에서 자레드 위너 등 세 명의 학생을 총으로 난사하고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있던 프랑스어 교사 루시아 리톨리까지 죽인다. 정문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교실, 카페테리아,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을 따라 체육관까지 간 그는 드디어 마지막 난사 지점은 라커룸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매슈 로이스턴을 두 번 쏘는 것으로 난사 사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언니의 골수이식을 위해 태어난 동생이 부모를 고소한다는 내용의 <쌍둥이별>(<마이 시스터즈 키퍼>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기에 그 제목으로 쓴다.)에서 '맞춤형 아기'가 불러오는 가족 내의 갈등과 사회적 책임과 관심을 물은 조디 피콜트가 이번에는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더욱 묵직한 소재로 찾아왔다.
<19분>은 이성과 감성이 모두 가장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남과 다르다는 것이 불러오는 갈등과 상처들, 그리고 무심코 던지는 어른들의 작은 언행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각 캐릭터들의 치밀한 내면 묘사와 후반부에 벌어지는 법정 싸움은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큰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 머릿 속에 영상이 그려지고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만만찮은 분량에도 불구하고(두권 합쳐서 약 800쪽) 한번 잡은 이 책을 놓지 못하고 밤을 새워 읽은 건 간만에 해보는 경험이었다.
오늘, 아무 아이나 부잡고 인기를 얻고 싶은가를 물어본다면, 그 아이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목말라 죽을 것 같은 사막에서 그 아이에게 한 잔의 물과 당장의 인기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그 아이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알다시피. 당신은 인기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당신을 덜 근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_ <19분>, 권2, 6쪽 중에서
앞부분에 말한 피터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어느 평온한 날 아침 19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안전해야할 학교에서 총을 난사하며 수년간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친구들의 눈 앞에 총 구멍을 들이밀은...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피터가 이 사건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지난 17년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는 피터가 가해자가 아닌 그 역시 피해자였음을 보여준다.
외소한 몸집에 내향적이었던 피터의 포지셔닝은 유치원 버스를 타는 첫 날 그의 도시락 통이 친구들에 의해 창 밖으로 던져지면서 시작되었다. 집에서는 운동도, 공부도 잘하는 형과 비교되기 일수였고, 형 역시 잘나가는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피터를 짓밟으며 더 위로 올라선다.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던 조지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피터에게서 멀어진다. 피터와 함께 있으면 자기에게 닥쳐올 후한도 있었지만, 관심 받고 인기 있는 아이들 그룹에 속한다는 그 매력을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조지가 속해있는 그룹의 친구들의 장난으로 피터가 가슴 졸이며 보낸 사랑 고백 메일이 전교생을 상대로 뿌려지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가장 감수성이 민감할 나이인 그때, 찌질하고 못난 한 남학생이 학교에서 잘나가는, 그리고 더 잘나가는 남자친구가 옆에 있는 여자를 "감히" 사랑하는 사건이 온 학교에 까발려진 것이다. 지금까지 내밀었던 수많은 구원과 도움의 손길은 실패한지 오래였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리고 옛 친구이자 사랑하는 조지마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제 아무리 자신을 스스로 타일러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복수'라는 두 단어 뿐이었다.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인기가 당신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떻게 입는지, 점심은 무얼 먹는지, MP3에 어떤 음악이 들어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그러나 나는 늘 이게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중요한 거라면, 당신은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_ <19분>, 권2, 6쪽 중에서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제목에서도 그랬듯이 '19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19분이면, 잔디를 깎고, 염색을 하고, 빠래를 갤 수도 있지만,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 공격을 게시할 수 있으며, 복수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 그치만 책을 읽고 난 후에 남는 건 '19분'이 아니라 '나와 다른 남이 공존하는 이 세상'이었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인정을 넘어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남과 같아야 하고 튀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받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더더욱.
조지의 마지막 법정 진술로 마무리 되는 이 사건에서 조지는 법정을 내려와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는 피터랑 같아. 우리 중 몇 명은 그걸 잘 숨기는 것뿐이야. 눈에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사는 거랑 모두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척하며 사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아? 어느 쪽이든, 가짜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시죠?'라고 묻지 '당신은 누구신가요?'를 묻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연극을 하며 나 역시 너와 같다고 외치고 있는지 모른다. 조지의 마지막 외침처럼 우리의 내면은 모두 피터와 같았을지 모른다.
조디 피콜트의 소설은 그래서 좋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묵직한 소재를 맛깔지게 요리해내니 말이다. <쌍둥이별>에 이어 또 한번의 영화화 소설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이번에는 제발 엉뚱한 제목으로 바꾸어 책의 아우라를 망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