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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거품 ㅣ 펭귄클래식 52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사랑에 관해 이토록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가 또 있을까? 보리스 비앙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건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관련리뷰 : http://blog.naver.com/nayana0725/40092779023 ). 죽음,충동,에로티즘,폭력,환상의 하드보일드라는 평을 받는 이 소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동생을 잃은 형이 백인사회에 복수를 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리에게 사랑은 복수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반면 <세월의 거품> 속 주인공 콜랭에게 사랑은 목적이다. 언젠가 찾아올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콜랭은 어느날 드디어 운명의 여자 클로에를 만나다. 클로에와 사랑에 빠진 콜랭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지만 클로에는 곧 병에 걸리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면서까지 그녀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생전 안해보던 '노동'이라는 것도 하게 되고, 한번도 누군가에게 비굴하게 부탁을 한 적이 없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이 두 소설이 같은 작가의 머릿 속에서 나왔다는 것부터가 내게는 충격이었다. 사랑을 잔인한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도, 한 사람의 전부를 걸어서라도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목적으로도 너무나 멋지게 그려낸 보리스 비앙은 굉장히 넓고 깊은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폭력적으로, 때로는 가슴이 절절해질 정도로 애절하게 사랑을 그려내고 있으니깐 말이다. <세월의 거품>은 이렇게 보리스 비앙에 대한 작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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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가 다 아파. 어떨 땐 절망에 빠져 있다가도 또 어떨 땐 한없이 행복해지는 거야.
뭔가를 이렇게까지 갈망한다는 건 너무나 기분 좋은 일이야."
_ <세월의 거품>, 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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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거품>은 300만 부 이상 팔리는 등 현대 프랑스 문화계에서 성공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부잣집 도련님과 같은 콜랭은 어느날 파티에서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클로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클로에는 폐에 수련이 피어나는 병(아마도 폐렴 정도가 아닐까. 보리스 비앙은 이처럼 감각적인 언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환상적으로 그린다)에 걸리고, 콜랭은 그녀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치료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치료비를 벌기 위해 급기야 막노동까지 하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이 소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작가가 좋아했다던 ,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은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고(듀크 엘링턴의 음악 중 '클로에'라는 음악이 있다. 콜랭과 클로에가 만나는 순간 나오는 음악도 바로 이 음악이다), 콜랭의 집안 곳곳을 다니며 그의 일상과 생각을 읽어내는 작은 생쥐는 마치 내면과의 대화를 연상케하고, 돈을 벌러간 군대에서 온 몸으로 총기를 만드는 판타지적 요소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군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사회 비판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소설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잘 녹아있다. 돈에 의해 성대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을 결정해버리는 교회, 경찰은 아무 근거 없이 총을 들이대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며, 프로그래밍 된 공장은 인간을 하나의 노동하는 기계로만 볼 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묘사들이 동화처럼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어서 읽는 내내 전혀 불쾌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조롱의 웃음을 자아낸다.
콜랭의 친구인 시크가 보이는 책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니다. 그는 파르트르라는 철학자(사르트르가 아닐까?)에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데 그의 강연회를 듣고 책을 사기 위해 그의 연인 알리즈와의 결혼 자금을 다 날려버리고 만다. 이 둘의 결말은 조금은 엽기적이기는 하지만 정작 책 한 줄 읽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파라트르에 열광하는 그의 모습은 내공은 없이 지적 허영심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식인들에 대한 조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세월의 거품>은 프랑스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책 발간 이후 이를 각색한 영화, 오페라, 연극들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하나의 트렌드어로 각종 광고와 상업물에 사용될 정도였단다. 제목만큼 낭만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세월의 거품>. 모든 것을 떠나 책을 덮은 후에 콜랭의 헌신적인 마음만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