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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명복을 비는데 어때서 '그 사람다움'같은 걸 찾아내야 하는 거죠?"
"명복은 빌지 않습니다."
"어... 그럼 뭘 하는 거예요?"
"(중략) 나는 돌아가신 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애도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_ <애도하는 사람> 164-165쪽 중에서
천안함 함몰, 김길태 사건, 공무원 교통사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날 사건과 사고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세상에 넘쳐다는 사고 중 하나로? 혹은 잔인하게 죽어간 안타까운 죽음으로?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죽어간 이들보다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몰은 상황을, 그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그들을 죽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더 잘,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런데 여기 우리네와 달리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며 그날의 사건과 사고를 훑어보고 죽은 이들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다. 어디서, 누가 죽었는가를. 그의 수첩에는 죽은 이들의 사고 장소와 일자가 빼곡히 적혀있다. 그리고 사고 장소로 찾아가 죽은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를 묻는 게 아니다. 생전에 어떤 이로 하여금 사랑받았고, 어떤 사랑을 베풀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한 쪽 무릎을 꿇고, 손을 위아래로 올리고 내렸다가 가슴 앞에서 포개고, 고개를 숙이고, 죽은 자의 이름을 왼다. "당신은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1935년 시작된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 상 수상작인 <애도하는 사람>은 이렇게 쉽지만은 않은 주제로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전국을 떠돌며 살아가는 청년 시즈토와 그를 둘러싼 각각의 사연을 가진 세 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이 책이다. 자극적인 기사만을 쫓아 특종을 노리는 기자 마키노,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고 방금 출소한 유키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 준코가 그들이다. 모두가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기자인 마키노는 사건 현장에서 죽은 이를 애도하는 시즈토를 만나고 그의 행동에 기이함을 느낀다.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죽음에도 그는 애도를 표하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 애도하는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죽은 이들 뒤에 있는 치부와 자극적인 살해 방법 등을 밝히기 위해서 뛰는 기자의 눈에는 그가 기이하게 보였다. 살인자인 유키요의 눈에도 시즈토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살해한 남편을 애도하는 시즈토를 발견한 유키요는 처음에는 의심과 경계로 쫓지만, 그녀도 역시 그를 따라 애도의 여행을 하며 죽음의 두려움에서 한발짝 한발짝 벗어나기 시작한다. 시즈토의 엄마이자 말기 암 환자인 준코의 이야기, 점차 시즈토를 이해하며 변해가는 기자 마키노, 죽음의 공포와 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유키요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며 시즈토의 애도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죽은 이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인생의 본질은 어떻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사는 동안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어떤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았는가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_ <애도하는 사람> 164-165쪽 중에서
때로는 불합리한 죽음에 대한 분노와 애통함을 가슴에 새기는 편이 공양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런 죄 없이 망망대해에서 소리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어간 천안함의 군인들이나, 죄의식 하나 없는 김길태의 잔인한 수법에 무기력하게 숨을 끊은 여중생을 기억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분노와 원통함을 앞세우다보면 기억에 남는 것은 고인이 아닌, 사건이나 사고 혹은 범인일 뿐이다. 화를 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분노와 초조감에 사로잡혀 실제로 어떤 인물이 세상에 떠났는지 마음에 새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무슨 기준으로 어떤 고인은 동정하고, 어떤 고인은 내팽개치는가. 시즈토에게 그 기준은 무의미하다. 그는 모든 죽은 이들을 그 나름의 방법으로 '기억'하기 위해 끝이 없는 애도하는 여행을 한다. 그 이면에는 죽은 이들을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쳐져 가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이 죽어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다.
시즈토의 말 대로 인생의 본질은 어떻게 죽었나가 아니라, 사는 동안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어떤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았는가이다. 이제 그들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해야 할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