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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키 바트만 - 19세기 인종주의가 발명한 신화
레이철 홈스 지음, 이석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그자는 관람객을 무대로 불러 그 엉덩이 부위를 만져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그런 욕구를 느끼도록 엉덩이가 불록한 그 비정상적인 몸매가 잘 보이게 빙 돌라고 강요합니다.
마치 잔인한 짐승이 전시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대중들 앞에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_ 136쪽 중에서
1810년 9월 런던. 당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명사와 지식인들에게 한 장의 초정장이 날라들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제목의 초청장에는 아프리카 케이프에서 온 호텐토트의 비너스 사르키 바트만이 처음으로 관객들 앞에 나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시 런던에서는 이렇게 사람을 전시하기도 했는데, 주로 태생적인 기형이나 일부러 신체를 훼손한 기이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희귀한 풍경, 기이한 것들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었다. 인간의 호기심의 대상을 사고 파는 이 사업은 당대 런던을 휩쓰는 최고의 오락 사업이었는데, 그 무대에 사르키 바트만이라는 한 여성이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호텐토트족'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케이프타운으로 여행을 다녀간 유럽 여행객 사이에서 퍼진 전설인데, 그것은 바로 이 지역 여성들은 커다란 엉덩이에 긴 음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땅에서부터 사르키 바트만을 눈여겨본 던롭과 세자르는 그녀를 데리고 와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당장 그녀에게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그녀를 무대에 세웠다. '호텐토트'라는 말은 이상하고 불안정한 것,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 성적으로 과도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고, '비너스'는 잘 알다시피 순수함을 상징했다. 이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음탕함과 순수함, 야수적 육욕과 초월적 여신을 하나로 포괄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이름이 탄생했다.
무대 의상은 그녀의 기이한 몸매가 더욱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나체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옷에 착 달라 붙는 타이즈로 온 몸을 감쌌고, 화려한 장신구들로 엉덩이 주변을 감싸 둔부는 더욱 크게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진주알로 수놓아 갈무리한 치마를 앞에 두르고, 모피 털, 장식물들이 주렁주렁 달리게 해 마치 그녀의 긴 음순을 가리기 위함처럼 보이게 했다.
그들의 전시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전설 속에서만 살아 숨쉬던 엄청난 둔부에 긴 음순을 가진 호텐토트의 비너스가 눈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첫 공연 직후 사르키를 주제로 한 시와 노래, 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린 캐리커처, 신문기사 등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노점상과 호객꾼들은 '사르키'와 '호텐토트'를 외쳐댔다. 그렇게 사르키 바트만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정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눈요기거리가 되어 있었다.
사르키 바트만, 그녀는 대체 누구이고 왜 이 먼 런던까지 오게 되었으며, 왜 인간의 존엄성마저 던져버리며 눈요기거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사르키 바트만은 1789년 남아프리카의 코이족 일원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시절 백인 정찰대에 의해 납치되었고 케이프타운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노예와 같은 시종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그 불행한 생활이 종지부를 찍기라도 하는듯 선술집에서 만난 어느 군악대원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지만, 그녀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아기는 죽고 남편은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혼자가 된 그녀는 세자르라는 고용주를 만나게 되고 유럽으로 밀항해 오게 된다.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완벽하게 빼앗겨 버린다. 아니, 그녀의 삶 뿐 아니라 그녀의 육체마저도 더이상 그녀의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세자르는 그녀를 아프리카 희귀종으로 소개해 옷을 벗겨 무대에 올린다. 큰 엉덩이는 아프리카 인종이 인간 원숭이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고, 세간에 떠돌던 긴 음순에 대한 소문을 더욱 자극해 사람들이 끊임 없이 그녀를 찾게 만들었다. 1810년에서 1814년 그녀의 쇼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만 그녀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왜, 무엇을 위해 자신이 사람들의 눈요기가 되어야 하는지 몰랐다. 원치도 않는 춤을 춰야 하는 것은 고문이었고, 때로는 옷을 벗기려는 강압적인 분위기들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그녀는 술과 담배, 마약 등에 의자히게 되고 결국 그녀는 더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둘 유럽인들이 아니었다. 1815년 그녀는 과학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유럽 과학자들의 말도 안되는 미명 아래 실험실로 향한다.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채 실험실로 간 그녀는 자신의 옷을 벗기려는 과학자들에게 맞서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그녀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겨우 생식기를 가릴 수 있는 작은 천조각만 손에 움겨쥐게 된다. 그날 작성된 과학자들의 보고서와, 화가들이 그린 세밀화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사르키는 1815년 혹독하게 추운 겨울날 숨진다. 그녀의 죽음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는데, 감기와 기관지염을 제때 치료받지 못한데다 술에 의지하는 정도가 커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비참한 것은 사르키는 죽어서도 대중들의 눈요기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사르키의 육체를 박물관에 팔아 넘겨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한 것이다. 파리자연사박물관은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골격 뼈대, 전신 밀랍인형, 뇌와 생식기 등을 전시했다. 그렇게 그녀는 죽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사르키 바트만>은 19세기 유럽인들에의해 자행되었던 인종주의의 희생자인 사르키 바트만의 비참한 생애와 후에 그녀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한 후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르키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저 평범한 한 여성이 생김새와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욕정의 대상이 되며, 놀이거리로 전락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후대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녀는 200여 년만에 고향땅으로 되돌아 왔지만 200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녀가 유럽땅에서 겪었던 수모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혹시 나는 지금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한 사람이 아닌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부디 그녀의 영혼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홀로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