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주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 앙투안은 항상 자신이 개의 나이를 먹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스물다섯 살인 현재, 그는 좀더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자신의 두뇌에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의 수의를 입힐 결심을 했다.
지성이란 잘 설계되고 멋있게 바름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성은 너무나 타락해서 이제는 공인된 지식인이 되느니
차라리 바보가 되는 편이 훨씬 유리할 때가 많다는 것을 보아왔다." 
_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5쪽

 

앙투안은 바보가 되기로 결심했다. 겨우 스물다섯인 그는 여러분야의 학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주 전공은 문학이었지만 이따금씩 생물학, 인시류, 아람어 수사학, 영화 등 자기가 알고 있는 분야의 강의를 대신해 하기도 했다.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의 곁에는 수많은 문학가와 사상가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플로베르의 서한집을 가장 좋아했으며 플로베르의 고충과 시행작오 속에서 종종 길을 찾곤 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자신의 행복을 되찾겠다며 생각하기를 멈추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의 지성과 명석함이 행복을 좀먹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왜 그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겼을까? 예를 들면 이런거다. 그는 옷을 살 때면 모든 옷들의 원산지를 확인했다. 나이키의 아시아 공장들과 그 밖의 다른 다국적 기업들의 공장에서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이나 비민주국가에서 투자하는 기업의 제품은 절대로 사지 않았다. 지성인으로서 책임 있는 소비자 태도를 지녀야 마땅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그의 소비 태도는 비싼 대가를 요구했다. 그런 기업들을 제외하고 소비를 하려고 하니 그의 옷은 별로 없었고, 그는 종종 굶주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껏 그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자, 그래서 이제 앙투안은 '막'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제일 처음으로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제버릇 개 못준다고 앙투안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도서관으로 달려가 술의 역사에 관한 책을 모조리 검색해 읽는 것이었다. 그러곤 바로 술집으로 향해 한 술꾼을 만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과연 그는 알코올에 흠뻑 취할 수 있었을까? 그는 보기 좋게 실패하고 다음 작전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앙투안은 알코올 중독자 되기, 성공적인 자살 법을 알려주는 자살 강의를 듣고 자살 시도하기 등을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마지막 세번째 작전 '바보 되기'에 들어간다.

정신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멀리 했다. 그는 책들을 모두 상자 속에 넣어버렸다.
소설, 이론서, 백과사전은 물론이고 음반, 다양한 강의록과 자료들, 지식, 과학, 역사, 문학잡지들...
단칸방 벽에 붙은 렘브란트, 에곤 실레, 에드워드 호퍼 그리고 미야자키의 그림들까지 모두 떼어냈다.
_ 113쪽

이제 그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등을 마음껏 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맥도날드에 들어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후렌치 후라이에 식도까지 따끔거리게 만드는 콜라를 마신다. 예전에는 결코 가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소굴이며, 기름기와 설탕 공급자이며, 생활 패턴의 획일화를 상징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 용돈이 떨어지자 서민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증권회사에 들어가 자금 운용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떼돈을 벌었고 그것으로 스포츠카와  최신형 전자제품, 명품 옷을 사들인다. 심지어 친구의 조언에 따라 결혼정보 업체를 찾아가 여자를 구하기도 한다.

 

자, 그래서 과연 앙투안은 행복해졌을까?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성적 삶과 바보적 삶의 양 극단에서는 모두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세상은 바보 선언 이전의 앙투안의 삶처럼 머리로만 생각하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게 마련이고, 또 바보처럼만 산다면 남의 돈(주식)으로 떼돈은 벌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은 경험할 수 있지만 머리 한쪽은 허전한, 왜 사는지 그 목적의식은 상실하는 텅빈 인간이 되게 마련인 것이다. 

 

200쪽 남짓의 이 책을 일주일간 들고 다니며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재치와 위트가 넘쳤고,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을 꼬집는 풍자가 일품이었다. 이 책에서 잊혀지지 않는 두 장면. 실수로 키보드에 커피를 쏟은 덕분에 거래가 이러우져 억대 주식 트레이너가 된 앙투안의 모습과, 프리섹스를 주창하며 아내는 물론이고 늘 여자를 바꿔가며 만다는 앙투안 친구의 모습은 삶이라는 것이 꼭 머리로만, 혹은 꼭 가슴으로만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 멋진 책을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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