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애, 하는 날
최인석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좋았다.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는 사랑에 대한, 연애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문예중앙 연재 당시 잠깐 읽었던 그의 글 느낌이 나쁘지 않았기에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남는다. 사랑에 대한 지독한 리얼리즘이 내게는 너무나 벅찼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수진과 장우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제대로 된 연애 한번, 사랑의 떨림 한번 경험하지 못한 수진은 뜬금없는 아버지의 유언에(그것도 10년이나 애 낳고 잘 살다가) 상곤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상곤과 작은 서민 아파트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수진, 식을 올린다는 것 말고는 크게 의미도 없는 이 결혼식에서 수진은 어릴적 친오빠의 폭력에서 자신을 구해주던 동네 오빠 장우를 만나게 된다. 말끔한 차리에 따뜻한 미소를 품은 장우, 수진은 장우와 불륜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장우 역시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아내 서영의 집안은 장우에게는 짐이었다. 사위에게 몇천 씩 돈을 빌려달라 손을 내미는 장인 어른은 빌린 돈도 값지 않은채 호화로운 여행을 다녔고, 서영의 오빠 두영은 장우와 수진의 불륜관계가 담긴 사진으로 장우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고만 하는 인간 말종이었다. 그런 장우에게 수진은 다르게 느껴졌다. 수진은 장우에게 따뜻한 저녁을 차려주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그런 여자였다.
그 재미 없는 영화가 '긴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는 것 또한 이상스러웠다.
연숙이 보기에 <긴장>은 영화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간장,이 나을 것 같았다.
_ 32쪽 중에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랑은 그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다. 수진과 진심으로 사랑에 빠질 것 같자 자신의 아이까지 가진 그녀를 버린 장우나, 처남이 관리하라고 준 건물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연숙을 엿보는 두영이나, 점점 변해가는 아내를 잡을 수 없자 폭력까지 휘두르는 상곤이나 모두가 자신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 누구도 사랑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사랑을 해봤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수진 역시 결국 가정과 애인 모두 잃은 자의 변명일 뿐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고나면 '연애 따위는 개나줘버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소설 속 대일의 애인 연숙이 대일의 영화 <긴장>을 보며 전혀 긴장 같지 않다고 느꼈듯이, 나 역시 이 소설 <연애, 하는 날>을 보며 차라리 '연애, 끝나는 날'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모든 추악함과 뒤틀어진 욕망들이 투영된 인물들의 이야기에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붙인 건 어쩌면 작가가 의도했던 역설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지독한 리얼리즘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J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언니는 지나친 이상주의자야"라고. 나도 30년을 살았다. 세상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것,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 쯤은 안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이 있을 것이라 믿고,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고 믿는 건 내가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평생 불행 속에서 살아갈 것 같기 때문이다. 뻔한 세상 속에서 뻔하게 살아가는 것 만큼 재미 없는 삶이 또 어딨겠는가 말이다. <연애, 하는 날>은 그저 소설일 뿐이라고, 난 믿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