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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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인지 허벅지가 떨린다.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방광염 증상이 보여 소변을 받아 남편 손에 들려보냈다. 현기증이 와 기절하려는 것을 학과장이 붙들어 준 날도 있었다. 남의 교수실에서 토했던 날은 또 어떻고. 아무래도 거북이 때문인 것 같다. 정확히는 외할머니를 닮은 거북이가 수술대에 오르던 그날부터 시작한 채식 때문에 비타민 B 결핍이 온 것이다. 그래서 잠을 못잔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멍한 것이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선 것이다. 그래서 예산을 100만 크로네(1억 2,793만원)나 초과한 집을 산 것이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잉그리는 참담하다. 사실 중개인의 입에서 "이제 고객님의 집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도 잉그리는 자신이 집값으로 얼마를 제시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750만 크로네를 부른 것까지는 또렷한데 딱 거기까지. 본인이 820만을 제시했다는 걸 남편에게 고백하며 잉그리는 울음이 터졌다. 휴가는 어떡해? 당장 애들 겨울옷 살 돈도 없는데? 예쁘지만 백년 묵은 주택은 수리할 곳도 1백 군데쯤 될 것이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남편의 분노도 풀겸 아이들도 안심시킬겸 농담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잉그리의 입은 또한번 사고를 터트린다. "아빠랑 엄마는 이혼하기로 했어." 아이들이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숙인다. "엄마아빠 이혼해?" 남편이 소리치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다."정신차려, 여보!!"

오지랖은 넓은데 인간관계는 서툴고 인성 뼈 발라먹은 거지 같은 놈들인 줄을 알아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과 수다스러움으로 인생이 고달픈 잉그리 빈테르.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분담에도 세 아이의 엄마로 대학의 교수로 자리를 지키는 일은 힘들기만 하다. 잡지에서 갓 나온 것만 같은 꿈에 그리던 집을 발견하고 잉그리는 저 집에서라면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말도 안되는 환상에 빠지는데 그 집을 소유한 순간부터 오히려 인생은 지옥 불바다로 화한다. 연일 떨어지는 집값. 기존에 살던 집은 매주 방문하는 손님으로 문턱이 닳을 지경인데 정작 집이 안빠지고 추가근무를 하며 돈을 벌어도 부족할 판에 만만해서 찍혔는지 구조조정에 내몰린다. 변호사일을 더 받았다며 이사 준비는 당신 혼자 해야한다는 남편을 보내고 발을 동동. 한술 더떠 러시아의 국립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오라며 학교는 출장까지 보낸다. 다리는 후들후들 머리는 어질어질, 러시아의 추위가 몰고온 감기로 눈도코도 찡한데 함께 온 교수 놈이 선물인 줄 알았다며 총장의 성화를 훔친다. 잉그리는 고질적인 오지랖을 못참고 대신 숨겨주겠다며 성화를 받아오는데 국보급(?) 성화를 찾아 교수들이, 아니 교수로 가장했다고 추정되는 소비에트 첩보기관 요원들이 미인계를 발휘하며 잉그리에게 접근한다. 잉그리는 굴라크에 갇히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작가는 잉그리의 실수를 만나 독자가 함께 웃고 함께 민망해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딱딱하고 어둡고 심각한 노르웨이 주류 소설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유머 가득한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정서가 달라서인지 웃음의 높낮이가 달라서인지 잉그리의 실수에 으하하핫 웃음을 터트린 적은 없지만 너무 잘하려다가 더 잘하고 다 잘하려다가 모두에게 잘해주려다가 하나라도 도와주려다가 어찌저찌 나선 일에 엉망진창이 됐던 나날들이 기억나 잉그리가 짠하고 안타까웠다. 잉그리가 주는 교훈! 남일에 너무 힘빼지 말자. 나 자신에 집중하자.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갖자.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자. 특히 고기는 꼭 먹자. 건강하게 살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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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생 새움 세계문학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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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의 달콤한 현실은 무한한 희망에, 매혹적인 미지의 불안에 문을 닫는 일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기대는 끝났다. 그러니 이젠 할 일이 없었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그녀는 어떤 환멸감을, 꿈의 소멸을 느끼고 이 모든 걸 막연히 감지했다."(p129) 16살, 수녀원에서 나와 영영 자유로워질 일만 남았던 아름다운 소녀 잔느. 유복하고 사랑많은 가정에서 자라 바보처럼 착하기만 했던 소녀의 유일한 꿈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것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처연한 사랑을 나눈 피라모스와 티스베가 수놓아진 이불을 덮고서, 운명과도 같은 사랑에 빠지기를 꿈꾸던 밤. 잔느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혹시 나를 사랑할 남자가 찾아온 것은 아닌가 설레어 한다. 멀어지는 발소리에 몰려드는 까마득한 실망감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적당한 나이와 적당한 외모의 남자라면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때마침 쥘리앵이 나타났을 때 잔느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마음을 던졌던 것이다.

"오! 나는 운이 나빴어. 모든 불행이 내게 쏟아졌지. 운명이 평생 악착스레 나를 따라다녔어." 그러나 로잘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마님. 그렇게 말해선 안 되죠. 결혼을 잘못 하신 겁니다. 그뿐이에요. 그런 식으로, 약혼자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결혼하면 안 되지요." 잔느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달콤한 연애감정뿐이었는데 데릴사위를 들이고팠던 부모의 의지와 자작 쥘리앵의 적극성과 결혼으로 사랑을 완성하고팠던 잔느의 소박한 욕구가 더해지며 두 사람은 만나지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치른다. 어설펐지만 꿈같은 신혼 한달이 지나고서야 잔느는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쥘리앵이 더는 잔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듯 꾸밈을 멈췄고 소작농과 다름없는 의복을 두른 채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잔느와 잔느의 부모님께 남편으로서 사위로서 저지를 수 없는 무례한 언행을 일삼았다. 가난을 몰랐던 잔느는 장인인 남작 부부의 주머니를 움켜쥐고서 자린고비 짓을 하는 쥘리앵에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한마디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줄리앵은 잔느의 집에 처음 방문한 날 잔느의 자매와 다름없는 하녀 로잘리를 폭행하기도 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 밤부터 로잘리를 방을 드나들었고 기어이 로잘리는 사생아를 낳는다. 함께 젖을 먹고 자랐던 두 사람의 우애가 찢겨지는 순간이었다. 잔느와 친구처럼 지내던 백작 부인과 치정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백작이 사실을 알고 그들의 헐벗은 오두막을 계곡 밑으로 굴려 떨어뜨리기 전까지 잔느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속한다. 잔느가 잔혹한 인생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들 폴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쏟을 뻔한 사랑을 모조리 아들에게 쏟아부은 대가로 잔느는 파산한다. 폴은 창녀와 눈이 맞아 프랑스로 달아났고 계속된 사업 실패 앞에 잔느에게 손을 내민다. 까마득히 잊혀졌던 로잔느가 돌아와 잔느의 곁에 우뚝 서지 않았더라면 잔느는 영문도 모른 채 길바닥에 나앉았으리라. 잔느는 슬프다. 억울하다. 그럼에도 천성이 착한 여자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고 다정한 로잘리에게만 토로한다. 그저 폴이 돌아오기만을 바란다고. 폴에게 편지 한통이 왔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어가고 있고 그녀가 낳은 딸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다. 믿을 사람은 어머니 뿐이며 엄마를 사랑한다는 문장도 변함없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잔느는 이번에도 속아주기로 한다. 프랑스를 다녀온 로잘리의 품속에서 손녀를 안아들며 기껍게 웃는 잔느. 갓난쟁이가 주는 감미로운 온기 위로 무한한 감동 무한한 평온이 찾아온다.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답니다."(p380) 여자의 일생이 아니라 <어느 인생>으로 만나게 된 책이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고전문학작가로 이름을 올렸다는 기 드 모파상의 책을 읽으며 나는 책의 인기 이유를 실감한다. 순진한 부잣집 아가씨가 그닥 잘못한 일도 없이 인생의 내리막을 타는 것이 내도록 안쓰러운면서 동시에 흥미진진했다. 잔느의 삶에 초라함의 가속도가 붙을수록 내 손안의 페이지도 다음 장면을 쫓아 쭉쭉 내달리게 된다. 이것이 내 못된 심사의 반영은 아니라고, 남의 불행을 위안삼으려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왜 이렇게 재미나게 느껴지는지 객관적으로 설명해보려 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내용만 보면 완전히 우울의 극치인데 참 이상도 하지. 이래서 고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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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는 없다
테일러 애덤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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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 지금은 괜찮으셔."(p22) 언니 데번이 보낸 문자를 본 다비의 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덜덜 떨린다. 추수감사절 마지막 통화에서 다비는 엄마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진심도 아니었다. 진심의 일말도 내보이지 않은 채 칼로 쑤시듯 엄마를 상처줬다. 그런 엄마가 수술 중이다. 어쩌면 오늘 밤 엄마는 고비를 넘기지 못할지도 몰랐다. 목전에 닥친 엄마의 죽음 앞에 다비는 스노체인도 걸치 않은 채로, 앞창 와이퍼를 수리하지도 않고서, 연료탱크를 꽉 채우지도 못하고, 기숙사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지금 함박눈이 펑펑 내려 도로 표시선마저 가려진 길 위에서 다비의 혼다는 가동을 거부하려 한다. 휴대폰 배터리는 채 한 칸도 남지 않았다. 구조 요청을 하려 해도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다. 녹색 표지판에 적힌 "마지막 인명사고 이후 365일"의 글자는 내일이면 다비로 인해 수정하게 될까. 얼어죽기를 각오하던 다비의 눈에 녹색 표지판 뒤 또다른 표지판이 비쳤다. "앞에 휴게소 있음". 와나파(작은악마)의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다비는 혼다를 몰고 간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따금씩 신은 사람들을 정확히 있어야 할 곳에 보내시지. 정작 본인들은 모른다 해도."(p415) 7번 주간고속도로에서 조난을 당한 다섯 명의 외부자들이 와나파로 몰려든다. 염소수염의 수의사 에드, 가족을 방문할 목적으로 에드와 함께 길을 나선 사촌 샌디, 한때는 마술사였으나 현재는 회계학을 전공 중인 에슐리, 여드름투성이 얼굴로 내내 다비를 응시하는 소년 라스. 누굴까? 이들 중 도대체 누가 회색 밴의 주인일까?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 낡은 차에 쇠창살을 두른 우리를 만들어 어린 아이를 가둔걸까? 순전히 우연이었다. 엄마의 무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영하 15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다비는 휴게소를 뱅뱅 돌며 신호를 찾는다. 그리고 낡은 밴의 뒷창으로 비친 어린 아이의 실루엣을 알아본다. 드웨인 존슨이나 아놀드 슈왈제네거, 브리 라슨이라면 또 모를까. 그리는 재주 말고는 아무 힘도 없는 미술대생 다비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모르는 척 할까? 구조대가 도착한 후 신고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 사이에 저 어린애가 얼어죽는다면? 신고받은 경찰이 출동하기 전에 납치범이 밴을 끌고 사라진다면? 두려워하며 망설이는 사이, 다비는 자신도 모르는 새 여자아이를 목격했다는 너무 많은 증거를 밴 주위에 흩뿌린다. 범인은 다비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러나 다비는 범인을 특정지을 수 없다. 밴이 누구 소유인지 알 수 없으므로. 차주를 매칭시킨대도 위험은 여전하다. 총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는 범인은 목격자를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나뿐이라는 사실을 다비는 깨닫는다. 오늘밤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건, 다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휴게소의 무고한 손님들을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다비 자신 뿐이다.

"저 웃음, 저게 멍청한 악의 얼굴이구나. 저게 캘리포니아의 한 마을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한 자의 얼굴이야."(p100) 눈보라 치는 밤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작은 영웅의 용기 앞에 내내 숨죽이며 읽게 되는 책이다. 무기라고는 양말에 집어넣은 콘크리트 조각 하나, 이혼하고 집을 나간 아버지가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보내온 공구상자 뿐. 총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허약한 이 무기 앞에서는 황당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강제 밀실화된 휴게소 안에서 아는 자와 알아챈 자와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벌이는 혼돈으로 긴장감은 폭발했고 범인과 다비의 쫓고 쫓기는 추격 앞에선 손에 땀을 쥐었다. 누군가는 꼭 다비 엘리자베스 손과 같을 것이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 한점 망설임 없이 강으로 뛰어들고 불이 난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잠들어 있는 주민들을 깨운 의인들은 꼭 다비와 같았을 것이다. 홀로 달아나지 않고 뚝심있게 불운에 대항했을 것이다. 주저 앉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죽음에 대항한 다비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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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클래식 클라우드 13
고영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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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체호프라 불리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다는 레이먼드 카버. 실은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도 그가 존경하던 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작품을 만나기 전에 작가의 삶을 먼저 알게 되는 것에는 분명한 단점이 있다. 줄리언 반스의 말을 빌자면 "그림들을 이야기로 , 대화로, 가정사로 말해주는 자서전으로 취급하는 것"<줄리언 반스의 사적인 미술산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를 화가에 대한 작지만 중대한 배신이라고 표현했는데 다행히 클래식 클라우드의 <레이먼드 카버>를 읽는 독자들은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의 전처와 친구들 무엇보다 레이먼드 카버 본인의 증언대로라면 그의 작품 상당수가 정직한 글쓰기를 모토로 부모님, 특히 아내와 두 자식을 소재로 끌어다 쓴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카버는 워싱턴주의 야키마에서 태어났다. 산과 들과 강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대자연, 가난한 제제소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인도로 시작한 사냥과 글쓰기로 점철됐던 소년기, 그리고 불행한 카버의 가정사가 야키마의 풍경에 덧씌워진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불안정한 수입에 기댄 가정생활은 평탄하지 않았고 그 시절 그곳의 여느 평범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9세쯤 술과 담배에 손을 댄다. 18세엔 16살인 메리앤과 임신해 살림을 차린다. 20세엔 이미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아버지가 되기에도 어머니가 되기에도 너무나 어렸던 두 사람은 육아와 직장과 학업의 삼중고에 시달린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표현한 것처럼 성급히 만나 아이들을 키우게 된 남자애와 여자애가 알콜중독자가 된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할 때는 가난이 힘들어 술을 마셨고 수입이 좋을 때는 돈이 있어서 술을 마셨다. 작품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더욱 그랬다. 매일 같이 다투고 어쩌면 쌍방향의 외도로 서로를 엿먹이고 그런 와중에도 언제나 함께 다니며 술을 마시며 두 번이나 파산신고를 한 부모라는 존재가 지긋지긋했던 탓인지 큰딸이 가출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녀는 하루만에 되돌아와 구치소에 부모님을 찾으러 가야 했다. 술에 쩔어 널부러진 부모를 보석금을 주고 빼와야 했던 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알콜중독으로 삶이 바닥을 치던 것과는 별개로 카버는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80년대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우뚝서며 주류문학으로 편입했고 전미도서상 후보, 퓰리처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것이 그의 온전한 능력이었나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고든 리시, 카버의 능력을 알아본 잡지 에스콰이어의 소설 부분 편집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고든 리시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카버의 초고를 40프로 이상 덜어냈고 10여 편의 단편의 경우 결말을 싹 갈아치웠다. 이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카버에게 미니멀리스트라는 별명을 안기지만 리시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는지 카버는 내내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라고 인터뷰한다. 리시 또한 카버의 성공을 질투해서, 또 어쩌면 대성당이 그의 손을 떠나 출판된 것을 배신으로 간주하여, 내내 카버와 관련한 말을 떠들고 다닌다. "카버는 내가 만들었다. 대성당 이전의 작품들은 내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시의 가까운 동료가 입 좀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조언까지 한 모양이지만 종내 인디애나주 주립대학의 릴리도서관 수장고에 카버와 관련하여 자신이 소장하던 자료를 매각하며 이 사실이 언론에 드러나게 만든다. 메리앤 이후 카버의 동반자였던 테스 갤러거가 카버의 초고를 다시금 출간하는 것으로 스캔들은 일단락 난다.

카버는 술을 끊었다. 거의 십년쯤. "다른 말로는 안돼. 왜냐면 딱 그거였거든, 그레이비. 그레이비, 지난 10년. 살아 있었고, 취하지 않았고, 일을 했고, 사랑했고, 또 훌륭한 여자에게 사랑받은, 11년"(p22, 그레이비라는 시에서) 지난한 시간 동안 뜨겁게 달구어진 인생이란 팬 위에서 카버는 요모조모로 구워지며 아프고 처참한 육즙을 뱉어냈다. 그 육즙이 모이고 모여 풍요롭고 깊은 맛의 그레이비가 만들어졌고 카버의 볼품없는 스테이크에도 행복의 맛이 스며든다. 카버가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고작해야 10여 년의 시간이었지만 그가 남긴 시를 보면 짧았던 이 시간에 카버는 충분히 감사했던 것 같다. 카버는 끝내 완결시킨 장편소설이 없었다. 카버가 화해하고자 노력했던 두 아이는 아버지, 할아버지와 같은 전처를 밟았고 큰딸은 아버지보다 더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카버가 죽은 딱 1년 후의 일이었다. 더러운 리얼리즘의 표본으로써 후대 작가들의 존경과 세계 각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그가 성공할 수 있게 뒷바라지한 메리앤이나 그의 작품 속에서 계속해 불행한 모습으로 얼굴을 비춰야만 했던 자녀들은 그가 받은 찬사를 마냥 기뻐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훌륭한 작가가 꼭 훌륭한 인간은 아니라는 걸 레이먼드 카버를 통해 새삼스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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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셜록 샘 : 뉴욕 슈퍼 히어로와 호버카 명탐정 셜록 샘 1
A. J. 로우 지음, 앤드류 탄 그림, 이리나 옮김 / 한솔수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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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셜록샘 : 뉴욕 슈퍼 히어로와 호버카>

명탐점 셜록의 여동생이 주인공인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좋아해요.

오빠의 눈을 피해 런던의 범죄자들을 뒤쫓는 소녀 탐정 에놀라 시리즈가 완결나기만 기다리는 중인데

또다른 셜록이 등장했단 얘기에 두 번 고민 안하고 읽게 된 어린이 탐정 소설입니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낸 셜록 샘은 이름만 보면 어디 초등학교 선생님인가 싶은데요.

알고 보면 이제 겨우 열 살이 된 꼬마 탐정입니다.

본명은 새뮤얼 탄 처 록,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돼요.

경찰이나 인터폴에 근무하는 어른들도 못잡는 범인을 체포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천재거든요.

평상시에는 하루 웬종일 다음 끼니를 생각하는 먹보에 마냥 통통하고 귀여운 소년이지만요.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면 용감하게 달려가 조수인 로봇 왓슨과 함께 추리를 시작한답니다.

참고로 망토를 열댓개씩 구매하는 세련되고 자기 주장 강한 왓슨도

로봇학습연구소에서 배운 기술로 셜록 샘이 직접 만든 거에요.

대단하죠??

셜록 샘이 큰 사건 하나를 해결한 후 휴식하고 있던 어느 날,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뉴욕 코믹콘으로 셜록 샘과 가족들을 초정합니다.

인터폴 전용기까지 태워준다는데 안갈 이유가 없죠!

기대한 것은 코믹콘의 흥미로운 볼거리였지만 아이쿠, 셜록 샘에 사건이 빠질 수가 있나요.

린다 연 박사가 개발한 날으는 자동차 호버카를 코믹콘에서 공개했는데

아뿔사, 뉴욕 슈퍼 히어로 다크 디펜더가 들어와 자동차를 훔쳐가 버렸어요.

스파이더맨처럼 정의로운 그녀가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모두가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

셜록 샘만큼은 냉정을 잃지 않은 채 다크 디펜더를 쫓는 추리를 시작합니다.

(사실 셜록 샘의 관심은 온통 뉴욕 샌드위치에 쏠려있었다는 거!! 쉿, 인터폴에는 비밀이에요.)

다크 디펜더는 어째서 호버카를 훔쳤을까요?

호버카를 만든 박사 린다 연의 딸과 제자는 어째서 사이가 나쁜 걸까요?

셜록 샘은 생전 처음 방문하는 뉴욕의 복잡한 도로를 뚫고 날으는 자동차를 되찾을 수 있었을까요?

두근두근한 모험으로 가득찬 셜록 샘과 로봇 왓슨 그리고 꼬꼬마 탐정 친구들의 대활약!!

모험과 추리를 애정하는 친구라면 누구나가 좋아하며 반길거에요.

**셜록 샘이 사건을 쫓아 곧 한국에도 온다고해요**

모두모두 다음 권을 기대해 주세요.

그때까지 셜록 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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