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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ㅣ 클래식 클라우드 13
고영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아메리칸 체호프라 불리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다는 레이먼드 카버. 실은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도 그가 존경하던 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작품을 만나기 전에 작가의 삶을 먼저 알게 되는 것에는 분명한 단점이 있다. 줄리언 반스의 말을 빌자면 "그림들을 이야기로 , 대화로, 가정사로 말해주는 자서전으로 취급하는 것"<줄리언 반스의 사적인 미술산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를 화가에 대한 작지만 중대한 배신이라고 표현했는데 다행히 클래식 클라우드의 <레이먼드 카버>를 읽는 독자들은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의 전처와 친구들 무엇보다 레이먼드 카버 본인의 증언대로라면 그의 작품 상당수가 정직한 글쓰기를 모토로 부모님, 특히 아내와 두 자식을 소재로 끌어다 쓴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카버는 워싱턴주의 야키마에서 태어났다. 산과 들과 강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대자연, 가난한 제제소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인도로 시작한 사냥과 글쓰기로 점철됐던 소년기, 그리고 불행한 카버의 가정사가 야키마의 풍경에 덧씌워진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불안정한 수입에 기댄 가정생활은 평탄하지 않았고 그 시절 그곳의 여느 평범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9세쯤 술과 담배에 손을 댄다. 18세엔 16살인 메리앤과 임신해 살림을 차린다. 20세엔 이미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아버지가 되기에도 어머니가 되기에도 너무나 어렸던 두 사람은 육아와 직장과 학업의 삼중고에 시달린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표현한 것처럼 성급히 만나 아이들을 키우게 된 남자애와 여자애가 알콜중독자가 된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할 때는 가난이 힘들어 술을 마셨고 수입이 좋을 때는 돈이 있어서 술을 마셨다. 작품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더욱 그랬다. 매일 같이 다투고 어쩌면 쌍방향의 외도로 서로를 엿먹이고 그런 와중에도 언제나 함께 다니며 술을 마시며 두 번이나 파산신고를 한 부모라는 존재가 지긋지긋했던 탓인지 큰딸이 가출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녀는 하루만에 되돌아와 구치소에 부모님을 찾으러 가야 했다. 술에 쩔어 널부러진 부모를 보석금을 주고 빼와야 했던 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알콜중독으로 삶이 바닥을 치던 것과는 별개로 카버는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80년대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우뚝서며 주류문학으로 편입했고 전미도서상 후보, 퓰리처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것이 그의 온전한 능력이었나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고든 리시, 카버의 능력을 알아본 잡지 에스콰이어의 소설 부분 편집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고든 리시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카버의 초고를 40프로 이상 덜어냈고 10여 편의 단편의 경우 결말을 싹 갈아치웠다. 이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카버에게 미니멀리스트라는 별명을 안기지만 리시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는지 카버는 내내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라고 인터뷰한다. 리시 또한 카버의 성공을 질투해서, 또 어쩌면 대성당이 그의 손을 떠나 출판된 것을 배신으로 간주하여, 내내 카버와 관련한 말을 떠들고 다닌다. "카버는 내가 만들었다. 대성당 이전의 작품들은 내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시의 가까운 동료가 입 좀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조언까지 한 모양이지만 종내 인디애나주 주립대학의 릴리도서관 수장고에 카버와 관련하여 자신이 소장하던 자료를 매각하며 이 사실이 언론에 드러나게 만든다. 메리앤 이후 카버의 동반자였던 테스 갤러거가 카버의 초고를 다시금 출간하는 것으로 스캔들은 일단락 난다.
카버는 술을 끊었다. 거의 십년쯤. "다른 말로는 안돼. 왜냐면 딱 그거였거든, 그레이비. 그레이비, 지난 10년. 살아 있었고, 취하지 않았고, 일을 했고, 사랑했고, 또 훌륭한 여자에게 사랑받은, 11년"(p22, 그레이비라는 시에서) 지난한 시간 동안 뜨겁게 달구어진 인생이란 팬 위에서 카버는 요모조모로 구워지며 아프고 처참한 육즙을 뱉어냈다. 그 육즙이 모이고 모여 풍요롭고 깊은 맛의 그레이비가 만들어졌고 카버의 볼품없는 스테이크에도 행복의 맛이 스며든다. 카버가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고작해야 10여 년의 시간이었지만 그가 남긴 시를 보면 짧았던 이 시간에 카버는 충분히 감사했던 것 같다. 카버는 끝내 완결시킨 장편소설이 없었다. 카버가 화해하고자 노력했던 두 아이는 아버지, 할아버지와 같은 전처를 밟았고 큰딸은 아버지보다 더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카버가 죽은 딱 1년 후의 일이었다. 더러운 리얼리즘의 표본으로써 후대 작가들의 존경과 세계 각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그가 성공할 수 있게 뒷바라지한 메리앤이나 그의 작품 속에서 계속해 불행한 모습으로 얼굴을 비춰야만 했던 자녀들은 그가 받은 찬사를 마냥 기뻐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훌륭한 작가가 꼭 훌륭한 인간은 아니라는 걸 레이먼드 카버를 통해 새삼스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