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안해서인지 허벅지가 떨린다.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방광염 증상이 보여 소변을 받아 남편 손에 들려보냈다. 현기증이 와 기절하려는 것을 학과장이 붙들어 준 날도 있었다. 남의 교수실에서 토했던 날은 또 어떻고. 아무래도 거북이 때문인 것 같다. 정확히는 외할머니를 닮은 거북이가 수술대에 오르던 그날부터 시작한 채식 때문에 비타민 B 결핍이 온 것이다. 그래서 잠을 못잔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멍한 것이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선 것이다. 그래서 예산을 100만 크로네(1억 2,793만원)나 초과한 집을 산 것이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잉그리는 참담하다. 사실 중개인의 입에서 "이제 고객님의 집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도 잉그리는 자신이 집값으로 얼마를 제시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750만 크로네를 부른 것까지는 또렷한데 딱 거기까지. 본인이 820만을 제시했다는 걸 남편에게 고백하며 잉그리는 울음이 터졌다. 휴가는 어떡해? 당장 애들 겨울옷 살 돈도 없는데? 예쁘지만 백년 묵은 주택은 수리할 곳도 1백 군데쯤 될 것이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남편의 분노도 풀겸 아이들도 안심시킬겸 농담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잉그리의 입은 또한번 사고를 터트린다. "아빠랑 엄마는 이혼하기로 했어." 아이들이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숙인다. "엄마아빠 이혼해?" 남편이 소리치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다."정신차려, 여보!!"

오지랖은 넓은데 인간관계는 서툴고 인성 뼈 발라먹은 거지 같은 놈들인 줄을 알아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과 수다스러움으로 인생이 고달픈 잉그리 빈테르.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분담에도 세 아이의 엄마로 대학의 교수로 자리를 지키는 일은 힘들기만 하다. 잡지에서 갓 나온 것만 같은 꿈에 그리던 집을 발견하고 잉그리는 저 집에서라면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말도 안되는 환상에 빠지는데 그 집을 소유한 순간부터 오히려 인생은 지옥 불바다로 화한다. 연일 떨어지는 집값. 기존에 살던 집은 매주 방문하는 손님으로 문턱이 닳을 지경인데 정작 집이 안빠지고 추가근무를 하며 돈을 벌어도 부족할 판에 만만해서 찍혔는지 구조조정에 내몰린다. 변호사일을 더 받았다며 이사 준비는 당신 혼자 해야한다는 남편을 보내고 발을 동동. 한술 더떠 러시아의 국립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오라며 학교는 출장까지 보낸다. 다리는 후들후들 머리는 어질어질, 러시아의 추위가 몰고온 감기로 눈도코도 찡한데 함께 온 교수 놈이 선물인 줄 알았다며 총장의 성화를 훔친다. 잉그리는 고질적인 오지랖을 못참고 대신 숨겨주겠다며 성화를 받아오는데 국보급(?) 성화를 찾아 교수들이, 아니 교수로 가장했다고 추정되는 소비에트 첩보기관 요원들이 미인계를 발휘하며 잉그리에게 접근한다. 잉그리는 굴라크에 갇히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작가는 잉그리의 실수를 만나 독자가 함께 웃고 함께 민망해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딱딱하고 어둡고 심각한 노르웨이 주류 소설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유머 가득한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정서가 달라서인지 웃음의 높낮이가 달라서인지 잉그리의 실수에 으하하핫 웃음을 터트린 적은 없지만 너무 잘하려다가 더 잘하고 다 잘하려다가 모두에게 잘해주려다가 하나라도 도와주려다가 어찌저찌 나선 일에 엉망진창이 됐던 나날들이 기억나 잉그리가 짠하고 안타까웠다. 잉그리가 주는 교훈! 남일에 너무 힘빼지 말자. 나 자신에 집중하자.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갖자.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자. 특히 고기는 꼭 먹자. 건강하게 살자. 아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