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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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지원 도서입니다

"따가운 굴욕의 눈물이 눈알 뒤쪽에 맺혔다.

소년은 자기를 이따위로 대접하면 안 된다고 그들 모두에게 소리치고 싶은 맹렬한 충동을 느꼈다.

자기는 살인자이며,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소리치고 싶은 광적인 충동을 느꼈다."

(브라이턴 록, p361)

영국의 휴양도시 브라이턴 룩. 런던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브라이턴으로 성령강림절의 휴가를 즐기려는 인파들이 쏟아진다. 초여름의 신선한 공기, 눈부신 햇살, 즐거움을 찾아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프레드 헤일만이 잉크가 묻은 손가락을 물어 뜯으며 불안정하게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브라이턴의 갱단, 콜레오니에게 또다른 갱단 카이트의 정보를 팔아왔고 급기야 카이트는 살해 당했다. 카이트의 뒤를 이은 핑키와 남은 패거리는, 오합지졸임에 분명하지만, 신문기자인 헤일 정도야 어쩌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려는 생각으로 안전한 장소, 곁에 있어줄 사람을 찾는 헤일의 눈에 그녀가 들어온다. 아이다 아널드, 화통하고 친절하고 정이 많은 여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재미있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데 하필 시간도 많다. 그리하여 데이트라고 할 수도 없는 잠깐의 만남 후 헤일이 사망했을 때 유일하게 그의 사인을 의심하고 핑키와 그 패거리를 추적한다.

완전범죄. 17세 소년 핑키의 첫살인은 완벽했다. 부검은 헤일의 사망을 심장마비로 진단했고 경찰은 이에 어떤 의구심도 갖지 않았으며 신문사는 발빠르게 직원의 명복을 비는 기사를 싣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유일한 흠은 헤일의 사망시간을 확정하기 위해 만든 알리바이가 동료인 스파이서로 인해 깨졌다는거다. 헤일이 일정표대로 움직이며 브라이턴에 뿌려야 하는 신문사의 이벤트, 일종의 보물찾기 카드 같은 것을 스파이서가 식당 테이블 밑에 숨겼는데 직원인 로즈가 그걸 보게 된다. 브라이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이벤트인데다 신문에 헤일의 얼굴까지 실린 마당에 자칫 종업원이 두 사람의 얼굴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보면 어떻게 될까? 핑키는 로즈를 만난다. 곰팡이처럼 번진 가난의 얼룩으로 뿌리까지 주눅든 시시한 소녀. 핑키는 로즈를 경멸하지만 입막음을 구실로 친구, 연인, 순식간에 남편의 자리까지 차지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로즈는 핑키를 사랑한다. 한번의 관심, 한번의 데이트만으로 핑키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을 키우고 그가 살인자란 사실마저 덮는다.

이로써 안심이냐고? 설마;; 조금의 위험도 감수할 생각이 없는 핑키에겐 부하인 스파이서도 변호사 프리윗도 무엇보다 숨이 붙은 채인 로즈와 사냥개처럼 제 뒤를 추적하는 아이다 모두가 위협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죽여야만 이 일이 끝이 날까? 핑키는 피로한 머리로 생각하며 스파이서와 프리윗과 로즈를 해치울 계획을 세운다. 허술한 난간 밖으로 스파이서를 떠밀고 얼마간의 돈을 쥐어 프리윗을 떠나 보낸다. 결벽증을 무릅쓰고 간신히 첫날밤을 보낸 후엔 동반자살을 하자며 로즈의 손에 권총을 쥐어준다. 한번 선을 넘은 그에게 두 번, 세 번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선을 넘은 모두가 단숨에 악에 정복 당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댈로는 핑키가 저지른 두 번의 살인에 가담했지만 무해한 소녀의 살인까지는 방관하고 싶지 않았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 댈로의 사죄, 포기를 외치는 아이다, 자살하지 않은 채로 어딘가에 총을 던져버렸다고 말하는 로즈, 절벽 끝에 내몰린 핑키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현대의 잔혹한 추리 혹은 스릴러에 웬만치 익숙한 독자라 악의 본성을 탐구하는 책 치고는 꽤 순한 맛에 초반엔 살짝 당황했다. 생각해 보면 1938년도 작품인 것이다. 20세기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찬사까지 듣는 양반인데 얼마나 많은 후배들이 그의 작품을 모방했겠는가 말이다. 여타 고전 반열에 든 소설들처럼 익숙해서 평이하게 느껴지는 함정에 빠졌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실상은 결코 평이하지 않으며 순한 맛 뒤에 탁 치고 올라오는 얼얼하게 매운 맛이 아주 장난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반전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내용인데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결말. 당시의 반향도 장난 아니었는지 영화를 제작할 때 그레이엄 그린이 직접 시나리오를 수정해 결말을 바꾸기까지 했단다. 아니 내가 관객이라도 결말이 이러면 멘탈 찢어지지 진짜 ㅋㅋㅋ 핑키를 뒤쫓는 아이다가 주인공일 줄 알았는데 이건 살짝 페이크고 찐은 10대 폭력배 핑키 그리고 그의 어린 신부 로즈라는 거. 브라이턴 록을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인 쿳시(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 작가)의 해제도 빼먹지 말고 꼭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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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리뷰툰 -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 1
키두니스트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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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요 왔어요.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이 왔어요.

고전 리뷰는 왜 항상 진지해야 하는데?

한사코 그것이 의문이었던 작가 키두니스트님이 유머와 드립을 쏟아부어 12편의 소설을 소개합니다.

작가님이 처음 소설을 리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18년 말,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부터였대요.

역시 시작의 책은 쉬이 잊지 못하는 법이죠.

제게는 돈키호테가 그런 책이었거든요.

창비 돈끼호떼 1700 페이지를 완독하고 나니 고전이 이런 것인가!!

가슴이 웅장해지며 고전 사랑이 용솟음을 쳤었어요, 코쓱 (* ̄▽ ̄*)v

물론 얼마 안지나 신곡 연옥편부터 절다가 천국편에서 아예 엎어져 좌절했지만요;;

제게 돈키호테가 그랬듯이 작가님도 멋진 신세계를 완독하고 가슴이 충만해지신 게 틀림없습니다.

몇 년 만에 독서다운 독서를 해내고 난 후 첫 결심이 "고전 명작을 만화로 리뷰해 보자!!" 였으니까요.

이렇게 좋은 책을 나만 알다니 아까워, 영업력 쩌는 만화 리뷰를 그리는고얏, 쓱싹쓱싹~

열심히 글을 쓰고 커뮤에 올리고 팬이 생기고 입소문을 타고 출판사와 연이 닿아 드디어 책까지 출간하신 덕력 덕분에 후미진 곳에서 소소하게 독서하는 저 같은 독자에게도 책이 도착해

작가님의 덕력에 같이 물들게 되었어요.

읽고 싶어요 고전고전, 읽은 책은 읽어서 또 읽고 싶고 안읽은 책은 몰라서 어서어서 읽고 싶어요.

멋진 신세계 : 키두니스트님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 2.

민중을 압재하는 독재자도 없고요.

인권 없이 불행하게 사는 하층 계급도 없어요.

쥐도 새로 모르게 테러 당하는 주인공도 없는데 어쨌든 장르는 디스토피아.

왜 이렇게 재미있죠?

1984 : 초딩시절부터 감시형, 압제형 디스토피아를 너무 많이 읽었던 키두니스트님.

그쪽 세계관이 지겨워서 1984는 읽기 싫으셨대요.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나서 예의상 함 봐야지 했는데

어쩌다 보니 조지 오웰의 쩌는 문장력에 반해버렸다나요?

헉슬리는 세계관 구축은 대단하지만 글을 잘 쓰는 느낌까진 아니라는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실은 두 작가 다 쩐다고 생각하며 읽었던 독자.

읽는 게 벅차서 문장력이 어떤지에 대해선 생각도 안했고 지금도 기억 안나요ㅡㅡ;;

참고로 1984는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그렇습니다 ㅋㅋㅋ

걸리버 여행기 : 대망의 엔딩을 읽고 나면 피폐해지지만 그럼에도 역시 명작, 그래서 더욱 명작!!

(이라지만 나는 잘 모르겠소 ㅎㅎ)

소인국, 거인국까지는 걸리버의 동화 같은 모험기로 진짜 재밌어요.

근데 완역판의 라퓨타(공중국)와 후이늠(현명한 말들이 사는 유토피아)까지 읽고 나면 엥?? 뜨악뜨악!

마치 다른 작가가 쓴 것만 같은 지나친 캐릭터 붕괴 때문에 흥미 반감하구요.

책이 진짜 넘 지루해져서 열두번 하차하고 싶어지던데 작가님은 그래서 이 책이 더 좋으셨대요.

몇 번이고 재독하는 책이라는데 어후 전 한번 읽은 걸로 만족합니다.

장미의 이름 : 움베르트 에코, 키두니스트님의 인생 작가 2. 존경 작가 1.

전 중도 하차도 아니고 초반 하차한 후 움베르트 에코 책은 단 한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어요.

제 수준을 지극히 뛰어넘는 내용에 어떻게 해도 도전욕구가 안생기더라구요.

작가님은 유럽 여행길에 이 책을 가져갔는데 초반 1백 페이지 읽고 3주 내내 가방에 처박아놨대요.

소설을 읽는건지 신학논문을 읽는건지 (제 말이요!!!) 모르겠는 마음에 한 반년 지나서야 완독을 하셨대요.

다 읽고 나서 찬사의 이유를 이해하는 동시에 소름이 쫙쫙 돋았다는데 저도 느껴보고 싶어요.

소름 끼치는 그 글발! 내용!! 하...... 그러나 제가 초반 백 페이를 과연 넘길 수 있을까요?

데카메론 : 고전 리뷰툰을 읽고 장바구니에 담은 책입니다.

그간 제목이 주는 진지한 느낌 때문에 종교서적 내지는 철학서적 같은 걸로 오해했어요.

신곡을 원어로 읽으면 막 데카메론 같을 것 같고 그렇잖아요 ㅋㅋㅋㅋ

알고 보니 젊은 남녀가 모여 자기 동네에 소문 쫙 난 연애담을 미주알고주알 들려주는데

그게 모두 19금이라나 뭐라나.

저는 정말 의식을 안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제 손가락이 장바구니에 책을 팍팍 담고 있더라구요.

우선은 민음사 판으로 세 권 낙점했는데 작가님이 읽으셨다는 동서문화사 판으로 읽는 게 나을까요??

누구 둘 다 보신 분 없슈??

에드거 앨런 포 : 작가님 인생 작가 1.

알고 보니 미국 작가.

고백합니다, 저는 여태 영국 작가님인 줄 알았어요.

무덤도 꼭 영국에 있을 것 같잖아요.

작품을 안읽어봐서 프랑스가 배경인 소설들을 다 모르기에 프랑스 작가로는 생각 안했다는 함정이 ㅋㅋㅋ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나

글발은 바닥인데 세계관이 어마어마하다는 러브크래프트 전집.

초초초 주류 작가이나 전혀 무난하지 않다는 카프카의 단편 소설들.

엄청나게 유명한 몇 몇 작품 이외에도 모든 단편들이 하나같이 재미있다는 혜자 작가 오 헨리.

키두니스트님이 수백번은 읽었다는 해리 포터까지.

리뷰를 읽다 보면 안읽고 싶은 책이 없어요.

고전과 낯가리는 독자라면 필이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을 읽으셔야 합니다.

고전과 안면을 익히고 나면 속까지 궁금해지고

그러다 운명의 책도 만나게 되고 짧든 길든 고전 사랑을 불태우게 되실겝니다.

전 우선 데카르트부터 읽어 볼게요.

고전과 19금이라.. 훗/ ヽ(✿゚▽゚)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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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리뷰툰 -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 1
키두니스트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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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전들을 이렇게 만화로 소개받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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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천재들 - 전 세계 1억 명의 마니아를 탄생시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공 비결
스즈키 도시오 지음, 이선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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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북스 지원 도서입니다

지브리 애니와 함께 소년기를 보낸 어른이들이라면 기필코 읽어야 할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지브리의 천재들>, 제목부터가 호기심 팍팍 생기지 않나요? 지브리의 두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가장 가까이에서 서포터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이사 겸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의 인터뷰를 편집한 책이에요. 세 사람이 어떻게 만나 어떤 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어떤 이유로 지브리를 창업했으며 계속해 숱한 명작들을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뒷 이야기가 아주 잔뜩 실려있는데요. 스즈키 도시오가 상당히 가식없이 옛 추억들을 들려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천재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벌였던 각종의 노력들, 고생담이 많은데 원망은 없다지만 두 감독을 귀엽게 모두 까는 내용이 많거든요 ㅋㅋ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건 알지만 두 사람이 떠난 후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p45) 천재들과 함께 하는 대작의 기회를 누가 발로 찰까 싶었는데 모두가 찹니다. 함께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스태프와 회사는 엉망이 된다, 우리 회사로써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을 맡을 수 없다는 계속된 거절에 스즈키씨의 입에선 연거푸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라는 제 호기심은 다음 장에서 곧장 채워졌는데요. 어안이 벙벙해서 잠깐 책 읽는 걸 멈췄을 정도에요. 작품이 완성되는 6개월 동안 한 달에 하루만 휴식;;;;;;; 직원들의 정확한 근무시간은 나와있지 않지만 미야 감독 본인이 아침 9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일하는 일중독자였다는데 직원들이 과연 그 전에 퇴근할 수 있었을까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본인 책상에서 도시락을 이등분해 아침 저녁으로 나눠먹는다는 상사, 어후 저는 읽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 당시 나디아 감독도 직원으로 있었는데 스튜디오에서 6개월 동안 숙식하며 노동했대요ㅠㅠ)

게다가 미야 감독, 상당히 편집증적이고 독재적인 타입의 리더였던가 봐요. 오죽하면 같이 차 타고 가려는 직원이 없었을 정도;; 미야 감독이 보조석에 앉으면 이 루트로 가라 마라, 방향 지시등을 켜라 마라,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니 안밟니 하는 식으로 일일이 간섭하고 명령하고 잔소리를 하는데요. 이게 일에서도 아주 똑같았거든요. 바짝 붙어 하나하나 건건이 지적하는 감독 밑에서 멘탈 약한 직원들은 노이로제에 걸려 쓰러지기 일보직전. 이건 한참 후의 일이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는 작화감독이 스트레스로 원형탈모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머리가 됐다니까요. 대머리로 죽는 사람은 없다지만 모르긴 몰라도 진짜 딱 죽고 싶을만큼 그 감독님 힘들었을 거에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완성하고 나서 톱 크래프트 스튜디오의 스태프들이 일제히 사표를 썼다는 게 저는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더라구요. 중간에 잠수 안탄 것만으로도 인간적 도의를 다한 걸 넘어 다들 보살님들인 겁니다. (+ 붉은 돼지에서 포르코가 피오한테 밤샘 하지 말라고 성격 나빠진다 그랬는데 인제보니 본인 경험담이었어요. 췟!)

한편!! 제게는 빨강머리 앤과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로 더 친숙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님은 게으름뱅이 중의 게으름뱅이로 이름이 높았다고 해요. 마감일을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을 정도구요. 개봉 연기도 일상. 오죽 했으면 반딧불이의 묘는 미완성작으로 극장 상영을 해야만 했을 정도라니까요. 보통 제작 기간이 일년이다 하면 파쿠씨(다카하타의 별명)는 삼년 정도 늘어난다고 보면 되구요. 티비 애니메이션이 한창 방영 중인 날에도 귀찮다고 출근을 안해서 미야 감독이 파쿠 감독을 깨우러 집으로 달려가곤 했답니다. "파쿠 씨를 돌보는 게 지긋지긋하다" 말하면서도 어쨌든 두 사람 30년 넘게 함께 한 걸 보면 애정인지 애증인지가 어마어마한 거 같죠? 파쿠 씨의 작품들 속엔 이런 게으름뱅이 일화가 많아서 웃기도 많이 웃었어요. 게으른데 완역주의에 반항적인 성격이라니, 읽는 저는 대책이 안서는데 그래도 스즈키씨 어떻게든 일을 떠안기고 완성하게끔 푸쉬 넣는 거 보고 대단하다 싶었어요.

전혀 다른 두 감독 사이에 끼여서 프로듀서인 스즈키씨 어떻게 살았나 싶은데요. 읽다 보면 이 양반이 본좌인 걸 깨닫게 됩니다. 원래는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주의 편집자였다가 다카하타와 미야 감독에게 감화되어 그들의 프로듀셔를 자처하게 됐는데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말은 미야 감독보다 스즈키씨한테 더 써줘야 할 것 같은 말이더라구요. 아침 9시에서 밤 12시까지는 지브리에서 감독들 서포터, 자정 넘어서는 출판사로 출근해 다음 날 아침까지 잡지 제작 참여, 약 60명의 잡지사 직원과 알바생들이 스즈키씨를 기다리며 야근;;;;;;;;; 초과근무가 일상이었던 70년대 출판계와 만화계의 단면을 제대로 목격한 기분이었습니다, 우욱;;;;;;;;; 이런 삶인데도 스즈키씨는 피곤한 줄을 몰랐대요. 재미있어서요. 즐거워서요. 애니가 그리고 두 천재감독이 정말정말 좋아서요. 열악한 노동환경에 경악하면서도 애니메이션에 가진 두 감독, 한 프로듀셔의 뜨거운 애정에 감화되어 또 몰랐던 사연들이 하나 같이 흥미진진해서 읽는 내내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브리 애니 속 예술 노동자들의 피땀눈물을 알게 해줘서 고마운 책이었어요. 두 거장에게 쥐어짜여진 스텝분들의 이름은 다 모르지만요. 그때 그 시절 아름다운 작품을 보게 해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른채로 좋아했어서 미안합니다!! 세상 모든 근로자들이 인간적인 노동환경에서 근무하기를 오늘도 바라 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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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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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돈키호테의 식탁이라고?? 책을 읽기 전엔 의아했습니다. 두 번째 돈키호테 완독을 목전에 두고 있는 독자이지만 (현재도 읽고 있는 중) 책 한 권을 엮을만큼 돈키호테에 무슨 음식이 그렇게 많이 나왔었는지 모르겠는 거에요. 허구헌 날 입맛이 없는 방랑기사 돈키호테와 이베리아 돼지처럼 도토리 한 알도 야무지게 씹어먹는 종자 산초 판사의 여행길에 인상적인 식사 장면이라고는, 제 기억엔 딱 한 장면 뿐이었거든요. 산초가 삶은 닭 두 마리를 얻어 먹는 카마초와 키테리아의 결혼식 날 잔칫상 말이에요. 산더미처럼 끓고 있는 고깃국에 좀체 관심이 없었던 돈키호테는 사랑에 눈 먼 키테리아와 그녀의 진정한 연인 바실리오를 따라가기로 합니다. 덕분에 산초는 카마초가 잔뜩 차린 꿀빵도 소와 돼지 통구이도 맛보지 못했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지는 않았었던가.... 억지 걸음으로 돈키호테를 따라가던 산초를 떠올리며 그밖에 또 어떤 음식이 있었는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책을 펼쳤구요. 그리고는 깜짝 놀랐죠. 이보시오 작가 양반! 돈키호테와 산초가 뭘 먹는 장면이 왜 이렇게 많은 겁니까?? 저는 눈 뜬 장님 같은 독자였던 건가요?? 나란 독자 책을 도대체 어떻게 읽었던 거냣!!!!!!! OTL

"좀 미친 짓이었다. 돈키호테와 같았다.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닌 내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나선다는 것."(p6) 돈키호테를 읽고 키하나 영감님과 산초 판사에게 완전히 반해버린 작가님은 무려 400년도 전에 돈키호테와 산초가 먹었던 음식들에 도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돼지 삼겹살, 염장 대구, 도토리, 둘세, 염장 청어, 레케손 치즈, 와인, 파에야, 가지, 무화과, 막대 과자, 모과 잼, 마늘, 치즈, 하몽 뼈다귀, 소 발톱, 빵과 양파, 빵 부스러기... 이 많은 목록이 모두 다 돈키호테가 먹고 작가님이 찾아서 맛본 음식들입니다. 허허헛, 무슨 음식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뻐억! 빠악! 아야앗!! 말할 수 없이 부끄럽게도 천운영 작가님이 첫장에서 곧장 짚고 가는 음식 구절은 돈키호테의 시작, 제일 첫 문장에 존재했습니다!!!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읽자마자 생각이 났어요. '맞아 돈키호테에 이런 구절이 있었지. 다시 읽어보자!' 열린책들의 돈키호테 1권을 곧장 펼쳤습니다.

"그는 보통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넣은 요리와 소금을 넣어 잘게 다진 고기 요리를 저녁으로 먹고 토요일에는 베이컨이나 햄 조각을 넣은 달걀 요리를, 금요일에는 납작한 콩 요리를 , 일요일이면 새끼 비둘기 요리를 곁들여 먹느라 재산의 4분의 3을 지출했다." (돈키호테, 열린책들, p65)

제가 아무 의미 없는 줄 알고 눈으로 훑고 지나갔던 이 시작의 구절을 보고 천운영 작가님은 생각합니다. '시골 양반 이달고의 일주일치 밥상을 이렇게 상세하게 나열하다니 세르반테스는 음식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나보지? 금요일에 앞서 "노고와 탄식"이라 불리었던 토요일의 돼지고기를 이야기하다니 이 시골 양반, 어쩌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는지도 몰라. ' 그렇군요, 이 구절을 읽으며 이런 추측을 할 수도 있는 거였군요. 저란 독자 진짜 아무 생각없는 독자였어요. 이후로도 쭈욱 이런 식으로 놀람의 독서가 계속됩니다. 잘 불리지도 않고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대구 한 접시와 빵 한 덩이를 먹는 돈키호테에게 제가 느낀 건 웃음과 연민 뿐이었는데 작가님은 남루한 음식마저 성주가 차린 맛있는 만찬으로 바꿔버리는 돈키호테의 마법 같은 상상력에 감탄하구요. 꿀을 입힌 도토리 열매를 보며 쏟아내는 돈키호테의 일장연설 속 황금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비추어 '처자와 미망인과 아이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려는 돈키호테의 존재가 여전히 필요한 오늘날을 안타까워해요. 설탕 같이 달달한 둘시네아 아씨의 이름, 이름과는 달리 정말이지 씩씩하고 튼튼한 이 아씨의 직업 속의 음식도 알려주고요. 양치기에게 두들겨 맞고 뻗어버린 돈키호테가 바라마지 않았던 '염장 청어 대가리 두 개'에 담긴 돈키호테 영혼의 맛도 가르쳐줍니다.

"인생 별 거 있소? 살거나 죽거나지."(p184)/ "계속 먹으면서 내 인생을 끌고 가겠다 이겁니다."(p241)/"어차피 때 되면 죽을 인생, 살아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먹으라."(p248)/"진정 살아 있다는 건 무언가에 미쳐 있다는 것"(p260) / "나는 그분을 내 심장만큼 좋아해요."(p112)

숲의 기사의 종자에게 제 기사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고백하는 산초 판사. 그리고 돈키호테와 산초에 대한 애정을 절절이 드러내며 그들의 맛과 이야기, 기억을 찾아나선 천운영. 인생책이라고 말하면서도 전 아직 심장만큼 돈키호테를 좋아하지도 작가님처럼 돈키호테에 순정하게 미쳐버리지도 못했었음을 실감합니다. 돈키호테를 더 잘 알고 싶어서, 더 새롭게 반하고 싶어서, 나날이 더 좋아하고 싶어서 지금 읽고 있는 2권 완독에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대신에 빨리 읽는 일에는 더는 중점을 두지 않겠습니다. 돈키호테, 산초, 그리고 천운영 작가님이 들려준 뒷 얘기들과 오래오래 함께 구르며 저의 좁은 시야와 저의 좁은 세계, 좁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넓어질 수 있도록 그들의 세계 속에 오래오래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천운영 작가님이 초대하는 돈키호테의 식탁, 맛은 다 몰라도 따뜻하고 정갈하고 개운합니다. 지금과는 다른 독서를 하고 싶다는 깨달음까지 안겨준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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