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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천재들 - 전 세계 1억 명의 마니아를 탄생시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공 비결
스즈키 도시오 지음, 이선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3월
평점 :
포레스트북스 지원 도서입니다
지브리 애니와 함께 소년기를 보낸 어른이들이라면 기필코 읽어야 할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지브리의 천재들>, 제목부터가 호기심 팍팍 생기지 않나요? 지브리의 두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가장 가까이에서 서포터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이사 겸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의 인터뷰를 편집한 책이에요. 세 사람이 어떻게 만나 어떤 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어떤 이유로 지브리를 창업했으며 계속해 숱한 명작들을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뒷 이야기가 아주 잔뜩 실려있는데요. 스즈키 도시오가 상당히 가식없이 옛 추억들을 들려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천재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벌였던 각종의 노력들, 고생담이 많은데 원망은 없다지만 두 감독을 귀엽게 모두 까는 내용이 많거든요 ㅋㅋ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건 알지만 두 사람이 떠난 후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p45) 천재들과 함께 하는 대작의 기회를 누가 발로 찰까 싶었는데 모두가 찹니다. 함께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스태프와 회사는 엉망이 된다, 우리 회사로써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을 맡을 수 없다는 계속된 거절에 스즈키씨의 입에선 연거푸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라는 제 호기심은 다음 장에서 곧장 채워졌는데요. 어안이 벙벙해서 잠깐 책 읽는 걸 멈췄을 정도에요. 작품이 완성되는 6개월 동안 한 달에 하루만 휴식;;;;;;; 직원들의 정확한 근무시간은 나와있지 않지만 미야 감독 본인이 아침 9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일하는 일중독자였다는데 직원들이 과연 그 전에 퇴근할 수 있었을까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본인 책상에서 도시락을 이등분해 아침 저녁으로 나눠먹는다는 상사, 어후 저는 읽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 당시 나디아 감독도 직원으로 있었는데 스튜디오에서 6개월 동안 숙식하며 노동했대요ㅠㅠ)
게다가 미야 감독, 상당히 편집증적이고 독재적인 타입의 리더였던가 봐요. 오죽하면 같이 차 타고 가려는 직원이 없었을 정도;; 미야 감독이 보조석에 앉으면 이 루트로 가라 마라, 방향 지시등을 켜라 마라,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니 안밟니 하는 식으로 일일이 간섭하고 명령하고 잔소리를 하는데요. 이게 일에서도 아주 똑같았거든요. 바짝 붙어 하나하나 건건이 지적하는 감독 밑에서 멘탈 약한 직원들은 노이로제에 걸려 쓰러지기 일보직전. 이건 한참 후의 일이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는 작화감독이 스트레스로 원형탈모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머리가 됐다니까요. 대머리로 죽는 사람은 없다지만 모르긴 몰라도 진짜 딱 죽고 싶을만큼 그 감독님 힘들었을 거에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완성하고 나서 톱 크래프트 스튜디오의 스태프들이 일제히 사표를 썼다는 게 저는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더라구요. 중간에 잠수 안탄 것만으로도 인간적 도의를 다한 걸 넘어 다들 보살님들인 겁니다. (+ 붉은 돼지에서 포르코가 피오한테 밤샘 하지 말라고 성격 나빠진다 그랬는데 인제보니 본인 경험담이었어요. 췟!)
한편!! 제게는 빨강머리 앤과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로 더 친숙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님은 게으름뱅이 중의 게으름뱅이로 이름이 높았다고 해요. 마감일을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을 정도구요. 개봉 연기도 일상. 오죽 했으면 반딧불이의 묘는 미완성작으로 극장 상영을 해야만 했을 정도라니까요. 보통 제작 기간이 일년이다 하면 파쿠씨(다카하타의 별명)는 삼년 정도 늘어난다고 보면 되구요. 티비 애니메이션이 한창 방영 중인 날에도 귀찮다고 출근을 안해서 미야 감독이 파쿠 감독을 깨우러 집으로 달려가곤 했답니다. "파쿠 씨를 돌보는 게 지긋지긋하다" 말하면서도 어쨌든 두 사람 30년 넘게 함께 한 걸 보면 애정인지 애증인지가 어마어마한 거 같죠? 파쿠 씨의 작품들 속엔 이런 게으름뱅이 일화가 많아서 웃기도 많이 웃었어요. 게으른데 완역주의에 반항적인 성격이라니, 읽는 저는 대책이 안서는데 그래도 스즈키씨 어떻게든 일을 떠안기고 완성하게끔 푸쉬 넣는 거 보고 대단하다 싶었어요.
전혀 다른 두 감독 사이에 끼여서 프로듀서인 스즈키씨 어떻게 살았나 싶은데요. 읽다 보면 이 양반이 본좌인 걸 깨닫게 됩니다. 원래는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주의 편집자였다가 다카하타와 미야 감독에게 감화되어 그들의 프로듀셔를 자처하게 됐는데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말은 미야 감독보다 스즈키씨한테 더 써줘야 할 것 같은 말이더라구요. 아침 9시에서 밤 12시까지는 지브리에서 감독들 서포터, 자정 넘어서는 출판사로 출근해 다음 날 아침까지 잡지 제작 참여, 약 60명의 잡지사 직원과 알바생들이 스즈키씨를 기다리며 야근;;;;;;;;; 초과근무가 일상이었던 70년대 출판계와 만화계의 단면을 제대로 목격한 기분이었습니다, 우욱;;;;;;;;; 이런 삶인데도 스즈키씨는 피곤한 줄을 몰랐대요. 재미있어서요. 즐거워서요. 애니가 그리고 두 천재감독이 정말정말 좋아서요. 열악한 노동환경에 경악하면서도 애니메이션에 가진 두 감독, 한 프로듀셔의 뜨거운 애정에 감화되어 또 몰랐던 사연들이 하나 같이 흥미진진해서 읽는 내내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브리 애니 속 예술 노동자들의 피땀눈물을 알게 해줘서 고마운 책이었어요. 두 거장에게 쥐어짜여진 스텝분들의 이름은 다 모르지만요. 그때 그 시절 아름다운 작품을 보게 해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른채로 좋아했어서 미안합니다!! 세상 모든 근로자들이 인간적인 노동환경에서 근무하기를 오늘도 바라 마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