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죽음을 잊고
영원한 존재인 신들과 하나가 되는 현장(p18)
"불멸의 신을 기리면서 삶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임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역설의 순간"(p18)
신화의 땅 고대 그리스.
그 땅에 살던 신이 많아서일까요?
알고 보면 축제가 참 많았습니다.
전쟁조차 막을 수 없는 올림피아 제전이 4년에 한 번씩,
코린토스의 이스트미아 제전이 2년에 한 번 봄마다,
이스트미아 제전과 같은 해에 네메이아 제전이 또 가을에,
태양이 작열하는 7. 8월엔 아프로디시아 제전이 열렸구요.
추석의 보름달이 뜨면 8일간의 엘레우시스 제전도 개최됐어요.
퓌티아 제전이나 이 책에 소개되지 못한 축제들까지 감안하면
고대 그리스 알고 보면 365일 축제가 열렸던 건 아닐까요?
<일리아스>에는 축제가 시민들에게 주는 흥분의 정도를 짐작케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화장한 후 곧장 운동경기를 개최하는데요.
장례식이니 축제와는 결이 다르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장례 후의 모습이 후덜덜해요.
달리기, 권투, 레슬링, 원반던지기, 활쏘기, 전차 대회, 창 던지기, 결투 등
올림픽으로 익숙한 종목들이 전우를 잃은 병사들을 위로하고 피 끓는 호승심을 깨우거든요.
상품도 어마어마해서 여인과 세발솥, 황금과 무기, 포도주가 우승자에게 내려졌어요.
헥토르와의 전투, 장례식을 빼면 아무 존재감 없던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애도가 이 정도인데
영웅과 신들께 올리는 제사와 이후의 경기, 경연은 얼마나 남달랐을지 가늠이 되고도 남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그리스의 여러 비극 또한 퓌티아 제전의 유산들입니다.
그런 축제들의 뒤를 쫓아 그리스로 달려간 김헌 작가님은
벌거벗은 세계사, 차이나는 클라스, 요즘 책방에서는지성을 뽐내시더니요.
이번 책에서는 그리스 하늘의 아름다움과 바다의 눈부심을 자랑하고
이제는 참가할 수 없거나 남았어도 형태는 다른 그리스의 축제들을 소개합니다.
축제 또한 고대 그리스 역사의 큰 축이었음을, 그 속에 담긴
신화와 종교, 문화의 이야기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더불어 너무 부럽고 배 아픈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가을장마에 울적한 마음이 그리스 새파란 하늘에 일렁일렁했어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찾아 하데스로 내려갔다는 엘레우시스에 가고 싶어요.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아라호바에서 맥주도 마시고 싶구요.
여행 총알 장전해서 언제가는 꼭 레스토랑 이타키에서 사르니코스만의 석양을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