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위크
강지영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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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국의 내노라하는 장르 작가들이 뭉쳤다. <밤의 이야기꾼>, <소용돌이>의 전건우, <미스 손탁>의 정명섭, <지금 죽으러 갑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의 정해연, <짐승>의 신원섭 등. SF, 호러 등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도 있었지만 출간된 작품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국 장르 소설에 대한 나의 관심이 편협해서일 뿐. 어떤 이유로 이들이 뭉쳤는지는 모르겠다. 편집자이자 미스터리 서점의 주인이었던 오토 펜즐러가 우리 서점을 등장시킨 소설을 써주시오!! 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장르 출판사로 톡톡히 자리매김 중인 캐비넷 사장님의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원섭 작가의 후기에 등장하는 조민욱 팀장이 기획하고 전 작가에게 연락을 했을지도. 어쨌든 8명이나 되는 작가를 총동원한 장르 잔치다. 출판사의 소개글대로라면 입맛대로 골라 보는 장르 편의점 오픈이랄까??

중국집 배달원 중식은 재수없는 밤 오토바이로 술취한 형사를 칠 뻔한다.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한 자리에 남아있던 한 자루의 권총!! 고등학교 졸업 후 인생이 영 풀리지 않는 고시생 현우와 닭갈비집에서 알바를 뛰는 태영, 여자친구도 없이 불철주야 철가방을 들고 달리는 중식은 농협을 털어 인생 2막을 열겠다는 단꿈에 빠져든다. 복면, 끈, 백팩. 훔치고 달아나고 숨기고 몰래 빼쓴다는 놀라우리만치 간단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기어이 총까지 맞은 채 허름한 편의점 어위크로 달아나는 삼총사다. 싱글싱글 긴장감 없는 매끈한 얼굴로 매를 버는 편의점 알바생을 인질로 잡고 편의점을 포위한 경찰들과의 대치를 시작한다. 불사항쟁! 투항은 없다!! 그러나 인질로서의 자각이 1도 없는 알바생은 뜬금 내 얘기 좀 하겠다며 여기가 아라비안 나이트인 줄 아는건지 장르도 시대도 제각각인 7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리원 검사 이준이 구한말 불타버린 황궁의 음모를 파헤치는 "대화재의 비밀", 층간소음으로 아비규환에 빠진 아파트로 살인청부를 나서는 "옆집에 킬러가 산다", 타임머신 + 복제인간 + 블랙홀 독자의 역량 부족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가 미안했던 "당신의 여덟번째 삶", 너는 남편 죽여 좋고 나는 1억 벌어 좋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미스터리 로맨스였던 "박 과장 죽이기", 게임 캐릭터가 죽으면 현실의 사람도 죽는다는 신박한 게임 소설 "러닝패밀리", 음주운전에 대한 가혹한 경고를 날리는 귀신들의 이야기 "아비", 가맹점 갑질 및 성추행으로 불매여론에 부딪힌 편의점 어위크를 살리기 위한 연맹운동 "씨우세클럽", 편의점 어위크에 마법 같은 힘을 부여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작가 나름 장르 나름의 매력으로 독자에게 어필하는 다양함이 있다. 출판사의 홍보처럼 취향껏 골라봐도 좋겠고 일요일부터 차례차례 진행되는 이야기이니 편수를 따라가도 편하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소개를 보고 기대했던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활용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거. 가깝고 편리하고 익숙한 장소 편의점이 주는 매력이 이야기들과 잘 매칭이 되었으면 했는데 편의점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 마치 뚜껑없는 왕뚜껑을 먹은 느낌?? 그러나 체포라는 절망적인 결말 말고는 다른 끝은 없을 것만 같았던 삼총사에게 내려온 동아줄이 좋아서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느낌으로 만족한 것도 사실! 한국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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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톡 1 - 고대 세계의 탄생 세계사톡 1
무적핑크.핑크잼 지음, 와이랩(YLAB) 기획, 모지현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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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읽는 순수한(?) 세계사책인지 모르겠어요. 재미나다는 소문은 무성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소문 그 이상! 세계사 책인데 1권을 하루만에 완독했습니다!! 세계사는 쥐약, 국사 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머리 아파, 교복 떼고 세계사도 같이 손뗀 사람인데도 술술 읽혀서 신기했어요. 아마 술 한 잔 마시고 읽었어도 수리술술 읽혔을 것 같아요. 그림도 많고 사진도 많고 메신저 창으로 핵심 딱딱 집어주고. 교과서도 이렇게 나왔으면 맨날 백점 맞았겠다 싶은데 제가 더는 학생이 아니고 공부하는 느낌 1도 없이 읽어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치만 평생 읽어본 세계사 책 중에서 제일 재미난 건 확실해요!! 근데 세계사책이니까요. 시대와 내용이 너무 방대해 요약이 불가능입니다. 거시적으로 내용을 정리하기에는 능력이 딸려서 기억하고 싶고 호기심이 일고 흥미로웠던 부분만 체크체크!!!

1. 헤파이스토스가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이유

그리스 신화에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에서 읽었는데요. 여기 세계사톡 속에서도 헤파이스토스가 다시 한번 등장을 하더라구요. 신화 속에서는 헤라가 헤파이스토스를 낳고 애기가 너무 못생긴데다 징글징글 울어대니까 올림포스 꼭대기에서 던져버렸다고 나오거든요. 바다에 떨어지며 다리를 절게 됐다고도요. 지금와 보니 헤라가 산후우울증이었나 싶은데;; 세계사톡에서는 전혀 다른 해석이 실려있더라고요. 그 시절 청동 제품을 만드는 대장장이들은 구리를 제련할 때 섞는 비소 때문에 곱사등이가 되거나 손발에 장애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해요. 이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그리스에서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숭상하는 신화가 만들어진 거라구요. 헤라와 제우스가 아니었더라도 헤파이스토스는 반드시 장애를 가져야만 하는 운명이었구나, 아폴론처럼 아름다운 미모와 찬란한 체격을 갖췄다면 함께 사는 시대 속 사람들에게 공감받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맥주의 여신 닌카시

효모의 존재를 몰라 맥주를 담는 용기에 맥주의 여신 닌카시의 축복이 내려졌다고 믿었던 수메르인. 수메르인들이 맥주의 여신을 찬양하기 위한 노래를 남겼는데 알고 보니 이것이 맥주 제조법이였더라 하는 역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크아, 맥주에 역사를 담아 시원하게 한 잔 마시고 싶네요. 추석 끝나서 다이어트 중, 조금만 참자!!

3. 세계 최초의 법전은 우르남무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은 철저한 보복주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분여하에 따라 차등처벌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는데서 1차로 놀람. 제 기억에 교과서에서 최초의 법전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아니라고, 우르남무 법전이 최초라고 해서 2차로 놀람. 그럼 요즘 친구들 교과서엔 최초의 법전은 우르남무 법전이라고 되어 있나요? 함부라비 법전은 그럼 뭐라고 나오나요?? 두번째 법전???

4. 옷깃만 스쳐도 팔다리 절단 불가촉천민 달리트

브라샤,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 세계사 시간에 달달달달 외운 기억이 난다고 반가워했는데 불가촉천민의 삶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달리트 계급은 외출할 때 빗자루가 필수였대요. 더러운 발자국을 지구상에 남길 수 없어서 일일이 빗자루질을 하면서 걷고요. 그러다 귀족이랑 옷깃이라도 스치면 팔다리가 잘렸다고요. 전생에 죄가 많아 하급 신분으로 태어난 거라고들 했다는데 인도의 계급제는 정말 소름끼칠 정도였구나 새삼 놀랍니다.

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은 명상록이고 후계는 후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로 있었던 로마 시대에는 황제와 원로원이 합의해 후계자를 임명했습니다. 황제의 직계자손이 아니라도, 로마 본토가 아닌 속국의 귀족이어도 능력이 인정되면 후계가 되는 대단히 합리적인 시대였어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고아였지만 고모부에게 입양된 후 능력을 인정받아 황제로 즉위했는데 그 배경에는 모두 이런 로마의 힘이 담겨있었던 거죠. 전쟁터에서까지 철학 일기를 썼던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로마의 일인자이지만 내적인 평화와 만족, 조용한 죽음을 기다리는 삶을 추구하며 후대인들에게 존경과 흠모를 받는 그가 4대째 이어온 민주적 후계방식을 폐기한 채 독단적이고 파괴적인 성격을 가진 친아들 콤모두스를 황제로 앉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로마 제국 역사상 유례없는 세습제의 도입이라 거친 반발에 부딪혔구요. 아우렐리우스 때 산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혼란에 잔뜩 부채질 했다네요. 로마 제국 최악의 황제 중의 1인으로 손꼽히며 포학제라고도 불렸다는데 그토록 성숙한 사람도 핏줄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건지 아니면 세계사톡에 나오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후세의 사람들이 뭐라고 입방아를 찧던 나랑 무슨 상관? 현재에 충실하자 이런 이야기를 명상록에서 했다는데 설마 그때부터 이미??

6. 베트남의 쯩짝, 쯩니 자매

중국에 1000년 동안 지배를 받는 북속 시대를 거치면서도 중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10세기에 결국 독립 국가를 이룩했던 베트남!! 북속 시대의 대표적 저항 쯩 자매의 반란이 충격적이었어요. 언니인 쯩짝의 남편이 중국 관리에게 해를 입었는데 이를 계기로 동생 쯩니와 반란을 일으켰고 베트남 전역을 넘어 중국의 광동, 광서까지 반란이 확산되어 기어이 쯩짝이 왕위에 올랐다고 하네요. 3년도 안되어 후한에 쓰러졌던 비운의 왕조이지만 여성들이 군사를 이끌고 대국의 지배에 항거한 역사상 첫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멋지죠?

세계사의 유명 인물들의 라이브 방송을 보는 듯한 생생함! 친구와 톡하듯 어우러지는 친근함! 거대한 시간의 흐름도 한 눈에 파악하게 만드는 간결함! 장점은 많고 단점은 찾기 힘들었던 세계사톡 1권을 넘어 오늘은 2권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어떤 역사들을 마주할지 두근두근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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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 - 1996 보스턴 글로브 혼북 대상 수상작 상상놀이터 8
애비 지음, 원유미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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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 지기는 내가 만난 최고의 생쥐야. 그렇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 자기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남자친구 래그위드의 말이 파피의 가슴을 푸욱 찔렀습니다. 딤우드 숲의 겁 많은 생쥐 파피는 딸랑이는 방울 귀걸이처럼 명쾌하고 단순하게 삶을 바라보는 래그위드의 말에 숨어있던 나무껍질에서 나와 두어 발자국을 내딛었지요. 그 순간 날랜 날개짓으로 딤우드 숲의 지배자, 수리부엉이, 미스터 오칵스가 돌진해 래그위드를 채갔습니다. 삼키지 못한 방울을 빼고는 한 입에 꿀꺽.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다시금 날아오른 그의 발톱이 자신의 코를 스쳐간 절체절명의 순간을 파피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에요. 겁 많은 자신은 살아남고 용감무쌍했던 래그위드는 목숨을 잃은 아이러니까지도요.

딤우드 숲의 생쥐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미스터 오칵스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나돌아다니지 말 것! 파피의 아빠 렁워트는 무시무시한 괴물 고슴도치로부터 생쥐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주거의 자유, 이동의 자유를 미스터 오칵스에게 양도했습니다. 숲 속의 생쥐들은 누구나가 규칙을 지켰고 단 한번 마주한 적도 없는 고슴도치 괴물의 존재를 믿었는데 이제와 파피는 그와 같은 사실이 의심스럽습니다. 황금 생쥐 래그위드가 파피의 가슴에 심어놓은 씨앗이 발아하기라도 한걸까요? 충분한 식량없이는 겨울을 날 수 없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파피 때문에 뉴 하우스로의 이동을 허락할 수 없다는 오칵스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까요? 파피는 파격적인 용기를 내어 직접 뉴 하우스에 가보기로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프로포즈를 받고서도 래그위드와 춤추지 못했던 파피가 탁 트인 숲,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벽을 가로지르는 순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도 둥근 달처럼 떠올랐습니다.

저는 햄스터도 두 손으로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지만요. 커다란 귀에 방울 귀걸이를 달고서 젖은 나무 밑에 숨어 잠들고, 까칠한 고슴도치에 겁먹어 바들바들 떨고, 돌다리를 깡총깡총 건너고, 옥수수 밭을 달리고, 자기 키보다 큰 가시를 칼처럼 휘두르는 흰 발 생쥐를 봤다면 너무 기특해 쓰다듬어 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숲 속 동물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사랑스러운 풍경, 파피의 용맹함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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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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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게 알고 있는 건 딱 소인국 이야기까지. 그림동화로 읽은 걸리버 여행기엔 릴리펏 여행기 밖엔 나오지 않았다. 걸리버의 거대한 몸에 칭칭 감겨있는 밧줄과 머리카락 군대군대 박혀있는 말뚝, 그 곁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병정들, 그의 도움으로 적대국의 배를 나포하고 릴리펏을 승자로 이끄는 걸리버의 모험은 마냥 유쾌하고 재미난 것이었는데 완역본으로 다시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 시절 동화 같은 느낌은 간데없이 어리둥절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황당하고 더불어 어렵다. 걸리버 여행기를 펼치며 상상했던 것과는 정말정말 다르다는 거!!

선상 의사인 걸리버는 조난을 당하거나 버림을 받는 등으로 항해길에 여러 번 혼자가 되어 새로운 나라와 마주치게 된다. 너무도 유명한 소인국 릴리펏뿐만 아니라 거인국 브롭딩낵,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와 발니바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췟!!), 말의 나라 후이늠국까지. 재주넘기로 지위를 정한다는 설정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여러 많은 축제와 인형 같은 깜찍한 외양의 소인들 때문에 깔깔 웃음이 나던 릴리펏은 알고 보니 별 다를 것 없는 인세였다. 왕비는 불이 난 왕궁에 오줌을 싸갈긴 걸리버가 용서가 안되고 해군함장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걸리버를 어떻게든 무너뜨리고 싶다. 기왕지사 생긴 대형무기로 식민지 좀 건설하고팠던 왕은 명령을 거부한 걸리버가 괘씸하다. 친구라고 믿었던 고위관리는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두 눈을 썰어버리자 한다. 많이 먹고 많이 싸서 정 떨어지긴 해도 그로 인해 넘긴 위험이 크게는 두 개나 되는데 괘씸한 것들! 나라면 손바닥만한 왕궁들을 탕탕 때려부시며 횡포를 부렸을 것 같은데 한 때의 선의를 잊지 않은 걸리버가 곱게 짐 싸 달아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인국 브롭딩낵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되어 난쟁이 보다 더 작은 난쟁이로 나라 안을 돌며 구경거리가 된다. 스트레스가 너무 커 조기사망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왕비에게 팔려 인형의 집에서 편안한 생활을 한다. 사람의 인체에 비례해 모든 것이 커다란 브롭딩낵에서는 벌, 고양이, 원숭이, 솔개, 기타 모든 것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됐고 벌레 같은 자신의 처지에 약간의 우울증도 왔던 듯 하다. 다행히(?) 독수리가 거북이로 착각해 인형의 집을 물고 바다를 가로지른 덕분에 브롭딩낵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3, 4부는 활동적인 모험의 맛이 군데군데 묻어났던 1, 2부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이 되는데 라퓨타에서의 걸리버는 철저히 관찰자로 존재하며 구경하고 대화 조금 하는 이 외에는 어떠한 일도 하지를 않는다.(=지루하다) 그야 라퓨타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공상적이라 누가 옆에서 회초리를 쳐주지 않으면 현재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 탓이 크기도 하지만 걸리버가 라퓨타에 대한 호감이 없어 뭐든 하고 싶어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하여튼 그랬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암시한 린달리노의 폭동 때 걸리버가 움직이며 커다란 사건사고가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걸리버는 금방 라퓨타를 떠나버린다. 라가도의 대학술원에서 쓸모도 없고 비위 상하고 비위생적인 각종 실험을 참관한다. 걸리버가 가장 마지막으로 여행한 나라는 지혜롭고 성숙한 말(우히힝~ 우는 그 말들 맞다)들의 나라 후이늠국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랍비, 요기, 기타 수행자들처럼 보이는 말들과 타락하고 비천한 인간 야후들이 사는 나라에 떨어진 걸리버는 후이늠들을 사랑하게 된 만큼 야후와 기타 인간들에 대한 혐오증이 커진다. 혐오가 병이 되어 구해주려는 선원들을 피해 숨기도 하고 귀국거부 농성을 벌이며 바다에 빠지려고도 한다. 영국으로 귀국했을 때 아내가 끌어안고 키스하자 한 시간 가까이 기절했을 정도;;; 자식들 냄새도 맡기 싫어서 피할 정도에 식구들 중 누구도 걸리버의 음식이나 물건에 손댈 수 없다. 인간 냄새 밸까봐;;;;;; 말 두 마리를 사서 그들과 네 시간씩 얘기하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하며 외로움을 달랜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난 누구? 여긴 어디?? 대체 내가 뭘 읽은건가 싶었다. 동화가 아니라 풍자소설이라는 사실을 완전하고도 확실하게 깨닫게 하는 결말부라니. 보통은 인간혐오증이 있던 주인공도 끝에 가서는 훈훈하게 동료를 사랑하며 끝이 나는데 뭔 소설이 끝에 가서 폐륜이람 ㅋㅋㅋ

조지 오웰이 이 책을 두고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다고 말했다는데 지금의 어리둥절함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읽어서는 내용 파악이 잘 안될달까? 시대상을 반영한 암시들이 많은데 그 시절 영국과 유럽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파악하며 읽는 맛이 쏠쏠할 것 같았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서 우선은 보이는대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왜 이 책이 릴리펏의 이야기만 똑 뗀 동화로 오랜시간 소비되어 왔는지, 많은 이야기가 삭제되고 잘리는 고역을 겪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책을 이해하는데 이종인 역자님의 작품해석을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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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 -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신화의 재해석
박홍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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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시포스 ㅡ 쳇바퀴 인생의 희망은 어디서 오나요?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여 장수를 누렸던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 무거운 바위를 꾸역꾸역 밀어올려 산 꼭대기에 놓으면 무정한 바위는 또르르 산 아래로 떨어지고 형벌은 뼈가 삭아 녹아내리도록 계속된다. 노동이라는 신이 내린 형벌에 족쇄를 채인 건 다문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매일 같은 일에 종사하는데, 그 운명도 역시 부조리다. 그러나 그들이 의식적이 되는 드문 순간에만 비극적이다. 신들의 노동자인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시포스는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p30) 카뮈의 글을 읽으며 이제는 비극이 비극인 줄을 너무도 잘 아는 현대인들을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노동윤리에 갇힌 시시포스들은 노동에 절망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소비를 위해, 생을 다람쥐 쳇바퀴 같은 노동에 허비한다. 노동으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일 뿐 대부분은 노동으로 자존감을 잃는 것 같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되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도 생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ㅠㅠ 저승을 거부한 시시포스의 꾀가 부럽다. 하데스와 제우스를 따돌릴 완벽할 방법을 시시포스가 찾아냈다면. 그리하여 우리에게 비극을 벗어날 지혜를 남겨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시포스의 신화를 달리 읽는 계기가 됐다.



2. 가이아와 크로노스 ㅡ 지배 질서가 아니면 무질서이고 악인가요?

단군신화를 재미난 옛날 얘기인 줄만 알았다가 곰을 숭배한 토착세력이 호랑이를 숭배한 이주민 집단을 이겼다는 사실을 비유한 것이라는 걸 알고 놀란 기억이 난다. 단군신화와 같이 티탄 거인들과 그리스 신들의 10년 싸움에도 숨은 비유가 있었다. 번개와 화염, 삼지창, 헤파이스토스의 발갛게 단 쇳덩이, 철로 만든 창과 칼, 화살촉과 투구 등을 등장시켰던 제우스의 일족은 청동기와 철기를 상징한다.반면에 티탄족들이 사용한 것은 몽둥이와 거대한 바위 등 원시적인 공동체의 일상적인 무기였다. 그들의 저항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보잘 것 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원천적인 이유가 존재했달까. 그리스라는 고대 국가의 새로운 권력에 반대하며 봉기를 일으켰을 부족 중심의 공동체 사회의 역사적인 시도가 신화 곳곳에 묻어난다는 사실을 여태껏 눈치 채지 못한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국가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혼란과 악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폭력이 일성적이고 구조화된다는 해석, 국가 질서로 인해 악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작가의 해석도 흥미로웠다.



3. 제우스와 헤라 ㅡ 누가, 어떻게 여성을 지배해 왔나요?


바람둥이 제우스, 질투하는 헤라. 헤라의 눈치를 보면서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는 지상 최고의 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눈치에 진심으로 헤라를 두려워하는 마음 따윈 1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남편을 잡지 않고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들만을 두들겨 팼던 헤라를 비천하게 보았던 때도 있다. 깊이 생각해보면 헤라에게는 제우스를 벌할 힘이 없었다는 것을, 헤라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의 영역이 제우스의 발 아래에 있었을 뿐이라는 걸 또한 알게 된다. 제우스의 사랑이란 것은 대게가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여성을 강제로 범하거나 납치하는 범죄였는데 여성들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과 달리 제우스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남성의 공격적 성 충동과 행위를 자연스럽고, 나아가서는 긍정적인 작용으로 이해하는 경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사고방식"(p282)이라고 하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그 가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아무런 비판없이 "재미있다"는 가벼운 느낌으로 받아들였구나 싶어 참담했다. 헤라에게 가해지는 제우스의 신체적 폭력을 예상케 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기분이 울적했다. 이와 같은 문장을 읽은 것이 정말로 처음이었을까? 어쩌면 눈으로 읽으면서도 어마무시한 폭력임을 깨닫지 못하고 통쾌하다고까지 생각하며 넘기지는 않았을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다음 문장들을 보자. 제우스가 헤라에게, 헤파이스토스가 헤라에게, 다시 제우스가 헤라에게 던지는 말이다. "가만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내가 그대를 향해 이 무적의 팔을 휘두르는 날에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다 덤벼들어도 그대를 돕지 못할 것이오" / "아버지께서 우리를 자리에서 내던지려 하신다면 어쩌시렵니까? 어머니가 내 면전에서 얻어맞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마음이 괴로워도 어머니를 도와드리지 못합니다. 아버지에게는 대항하기 어려우니까요" / "이제는 나도 모르겠소. 채찍으로 실컷 얻어맞더라도 말이오. 그대의 발에 큰 돌을 매달고 손에는 아무도 못끊을 황금 사슬을 채워 높은 하늘과 구름 사이에 매달았던 일을 벌써 잊었단 말이오." 신이면서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아내라는 위치. 그리스 신화 속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여신의 위상이 이 정도다. 나머지 여신들의 위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작해야 목동에게서 미모를 테스트 받는 세 여신들이라니. 아름다움을 선택한 왕자에게 주어진 것이 또한 결혼하여 남편이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며 어찌보면 피해자인 그 여성이 시대를 넘어 회자되는 악녀가 되었다는 것이 우습다. 외모와 성적인 상징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로 여신을 소비하는 신화의 덫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스 신화를 여과 없이 교훈이나 진리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지 말 것, 신화 속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알아채는 눈을 키울 것. 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를 읽으며 작가에게 받은 두 가지 숙제를 무겁게 마음에 담는다.


#인문학으로보는그리스신화

#박홍순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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