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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패시지 1~2 - 전2권 ㅣ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평점 :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이 불러온 또 하나의 재앙이 지구에 내려앉았다. 시작은 네 명의 암 환자로 구성된 생태탐사단이었다. 남미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탐사대원들에게 신의 축복 같은 일이 벌어졌다. 뇌종양, 급성림프백혈병, 난소암. 죽기 전 마지막 소원으로 정글을 탐험하려던 이들은 암세포도 종양도 깨끗히 사라진 기적의 치유을 맛본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각, 청각, 후각, 피부, 폐활량, 근력, 지구력이 십대와 같이 회복되었다. 죽은 성기능이 살아났고 대머리 환자는 라푼젤을 찍어도 될만큼 머리카락이 돋았다. 한타바이러스일거라 판단했던 의사도, 미국의 질병관리국도 이와 같은 사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곳 볼리비아 정글에 환자들의 면역체계를 되살리는 일종의 바이러스 같은 것이 있다는 것. 슈퍼맨 같은 이 바이러스를 찾아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넓게는 인류의 영원한 번영을, 좁게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것. 프로젝트의 이름은 노아로 결정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방주로써의 의미가 아니라 950세까지 살아남은 노아와도 같은 인류로 신체를 재구성하겠다는 의미로써. 사이크스 대령으로부터 이와 같은 설명을 들은 FBI 요원 울가스트는 군부의 프로젝트에 몸을 담기로 결심한다. 신생아였던 딸 에바를 병으로 잃은 경험이 있는 그로서는 애초에 깊이 고민할 사안조차 못됐다.
울가스트가 대령의 명령을 받아 실험실로 전달한 피실험체들은 모두 범죄자였다. 1급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들. 차례대로 "뱁콕, 모리슨, 차베스, 배프스, 터럴, 윈스턴, 소서, 에콜스, 램브라이트, 마르티네스, 라인하르트, 카터"다. 바이러스 균을 맞은 이들은 괴생명체로 진화한다. 형광물질을 바른 듯 빛이 났고 하루에 6개씩 이가 빠지고 새로 났는데 칵테일 픽처럼 길쭉하고 날카로웠다.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잠들었으며 생식을 했다. 토끼 한 마리쯤은 2초만에 배를 가르고 뼈를 바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더는 인간으로 보기 어려웠다. 이후 트웰브라 불린 이들의 탄생이었다. 세계가 멸망하기 전 군부의 마지막 재물이 된 것은 에이미였다. 여섯 살, 살인을 저지른 창부의 딸, 바이러스 주사를 맞기 전부터 동물들과 교감하는 신비로운 능력을 갖췄던 어린애, 어쩌면 신이 내린 인류의 안배. 뒤늦게 죄책감에 빠진 울가스트가 에이미를 빼돌리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군부의 지하실을 청소하던 그레이가 프로젝트 제로의 암시에 걸려 지하의 문을 전면 개방한 것이다. 쏟아져 나온 트웰브의 공격 속에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가고 영문을 모르는 미국인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은 자 "바이럴"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피를 빨아먹는다. 뱀파이어와 다름없다. 미국은 멸망했다. 어쩌면 인류도. 미국 밖으로 향하는 시선이 없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틀림없이. 에이미를 안고 군부를 탈출한 울가스트의 머리 위로 핵폭발의 잔해가 흰눈처럼 떨어져내린다. "저 산등성이가 보이지,에이미? 만약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저 산등성이를 따라가렴. 절대 멈추지 말고, 온 힘들 다해 달리고 또 달려가라."(p368-369)
그리하여 다시 백년 후. 살아남은 최후의 자들로 이루어진 도시 퍼스트 콜로니, 캘리포니아 공화국 샌저신토산맥, '귀환의 날'을 기다리며 '최초의 밤'의 불을 밝혔던 콜로니의 사람들로 이야기가 옮겨간다. "한 세계가 죽고 다른 세계가 태어날 때까지 걸린 시간, 단 32분." 하나님도 일주일만에 만든 세상을 32분만에 뚝딱 지어올릴 수는 없었으므로 새로운 세계는 미숙하고 조악하며 위험하며 파렴치했다. 바이럴들은 끊임없이 인간을 공격했고 살아있는 모든 짐승의 피를 빨았다. 트웰브가 생존을 위해 인간을 사육해야 할 지경까지 내몰린 세계에서 퍼스트 콜리니의 사람들은 오늘에 처절하게 대항하지만 희망이 없다. 조명도 전기도 이제는 막바지. 길어야 3년이면 불은 꺼질테고 조명 말고는 바이럴에 대항할 길이 없는 콜로니의 사람들도 전멸을 맞을 터다. 내일이 없는 것만 같이 암울하던 밤, 장벽으로 접근하는 소녀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콜로니의 외톨이 케일럽이었다. 바이럴들이 뒤를 쫓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성문을 열었다. 소녀를 알아보지 못한 파수꾼이 소녀의 어깨에 활을 쏘았다. 쓰러진 소녀를 구하기 위해 또다른 파수꾼 알리시아가 장벽을 넘는다. 에이미, 산맥을 달리고 달려 어딘가로 사라졌던 소녀의 귀환이었다.
대박!! 각 권 500이 넘는 쪽수에 깨 뿌려놨나 싶게 작은 글자 앞에서 후들후들 떨었는데 잠도 못자고 읽을만큼 재미나서 3부 중 겨우 1부만이 번역됐다는 사실에 하마터면 울 뻔 했다. 세계가 멸망하기까지의 과정도 물론 재미나지만 원정대를 꾸려 콜로니를 탈출한 피터, 알리시아, 케일럽, 마이클, 사라, 홀리스, 모사미, 무엇보다 에이미가 함께 하는 여정이 이 책의 백미나 다름없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부족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이전 문명의 그립고 놀라운 흔적들을 발견하는 일, 숨겨진 식량을 습득하거나 물자사냥에 나서는 일, 바이럴과 대항하며 협력하고 우정을 쌓는 일, 사랑을 깨닫고 확인하는 일, 에이미의 몸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는 일, 무엇보다 패시지 1부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만한 피터가 소극적이고 수줍음 많고 꾹꾹 눌러 숨기고 있던 열등감에서 벗어나 그룹의 용맹한 대장으로 성장하는 모습 앞에서 너무 좋아 침이 꼴깍, 카타르시스 뿜뿜으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세계의 질서를 되찾으려면 뱁콕을 비롯한 트웰브를 소멸시켜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원정대. 노아 프로젝트는 백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드디어 제 이름을 되찾게 된다. 대홍수의 침몰에서도 살아남은 노아처럼 트웰브라는 홍수 속에서도 인류는 그들의 씨를 말리고 살아남게 되리라. 에미미를 방주로 한 피터와 친구들의 다음 여정이 얼른 돌아왔으면 좋겠다.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아름다운 날을 하루 빨리 만났으면!!
**참고로 패시지 2부 트웰브는 2020년에 발간된다고 한다. 영어를 잘해서 원작을 읽을 줄 알면 좋았을텐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