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얀 드로스트 지음, 유동익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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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가치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없는 사람들이며 세상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 하지만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집을 지을 수 있으며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 안식처를 짓고 노여움 가득한 이 땅에 우호적인 소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 그리하여 그는 빵과 물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라는 말을 했는가 봅니다. 우리는 대게 에피쿠로스를 배부른 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는 극단적인 욕망을 삶에서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족과 평정심이 아주 평화로운 집을 짓는 가장 중요한 뼈대였지요. 에피쿠로스를 알고 난 후 작은 기쁨에 눈을 뜨려 애쓰고 있어요. 쌩쌩 찬바람 부는 문 밖이 아니라 포근한 내 집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구요. 배부르게 먹고 즐거운 가르침을 주는 책을 읽고 월급을 주는 직장에 무사히 출근할 내일에 만족하게 되요.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로 오늘 하루를 되새기고 내일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단단한 벽돌집 한 채를 벌써 절반은 올린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에픽테토스와 세네카가 중심이 된 스토아 학파는 안분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 조선의 선비님들 같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자연스러운 쾌락 추구(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쾌락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에서 한층 나아가 이미 얻은 것 안에서 원하라거나 남에게 속하는 모든 것은 타인의 소유이며 우리가 보는 것만 소유하라거나 하여튼 좀 철절한 금욕주의를 주장하니까요. 에픽테토스는 여러 인상적인 인생 규칙을 남겼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철학적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을 책망할 것이다."(p108)라는 거에요. 지식이란 혼자 서 있지 못한대요. 고립되어 떠돌수도 없구요. 때문에 모든 철학이 윤리학이며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잘 어울려 지내려는 소망과 연결되어 있다는군요. 철학이 나 혼자 잘 살거나 나 혼자 건강하거나 나 혼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로 더불어 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세네카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죠. "내일의 내가 하겠지!"와는 정반대되는 주장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친우 루킬리우스에게 모든 순간을 두 손으로 잡으라고 충고합니다. "네가 그렇게 현재를 붙잡고 있으면 결과는 네가 내일이라는 날에 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인생은 미뤄놓는 동안에 이미 휙 지나가버리는 것이다."(p126) 그간 내일의 나에게 죄책감 드는 하루들이 많았는데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대로 조금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밖으로도 여러 철학자들이 등장해 우리 삶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 의지한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인간이 무엇으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를 궁리해요. 피천득 시인과는 달리 "인생은 멋진 소풍이 아니다."(p237)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언제나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라"(p357)고 말한 스피노자의 직업은 안경유리공이었는데요. 그는 잘 보인다고 생각할 때까지 그의 생각하는 안경을 갈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을 보고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요. '살아지고 있다'는 자유로운 필연에 대해서는 좀 더 궁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을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존재로 본 사르트르도 있습니다. 사르트르를 알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한 감정적인 학대를 확실히 덜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되도록 우리 스스로를 완벽하게 정의하려고 애쓰지 맙시다. 사르트르를 생각하면 작가가 저절로 떠올리는 노랫말이 하나 있는데 아마 많이들 공감할 것 같아 소개해요. "인생을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자책하지 말아요.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사람들도 22살 때 그들이 뭘 하면서 살고 싶었는지 몰랐어요.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어떤 40대들은 아직도 몰라요."(p487) 멋진 40대도 그렇다니 좀 위로가 되는데요?

철학책을 읽는 행위를 여태 지식을 쌓는 일로 보고 접근했는데요.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를 읽는 순간엔 지식이 아니라 마음 근육을 키우는 일의 한 가지로 느꼈습니다. 보고 느끼고 실행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생각하기에 닿아있는데 그 생각의 빈 구멍들이 너무 많죠. 대체로의 우리는 그리 깊게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고 폭넓게 사유하는 사람도 아니라 혼자 들여다보면 그 구멍이 뭔지 잘 파악이 안되요. 이 생각의 빈구멍들을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자들이 보여주고 찾아주고 조금씩 메워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힘들거나 외롭거나 우울하거나 무책임하고 싶거나 무기력하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 왜 나만? 이라는 자기 중심적 사고로 구멍을 파고 들어가 잠수하기 보다 철학책 한 권 끼고 앉아 철학 속에서 자맥질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운동하듯 어푸어푸, 머리를 굴리고 말씀을 듣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개운해질 거에요.

아참, 작가 얀 드로스트는 <망설임>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좌우명이 될 문장을 발견해요. "여기가 어디든 여기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환상적이다."(p352)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에 맞춰 다시금 풀이해 저의 좌우명으로 삼기로 합니다. "이 책이 무슨 책이든 지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세네카의 말도 있어요. 저는 그의 사상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 말만큼은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수 많은 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때, 비록 전부를 읽을 수는 없어도 되도록 많이 읽으려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p126) 오늘도 많이 읽은 하루, 마음이 충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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