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 전8권 - 깊이에의 강요 + 로시니 + 비둘기 + 사랑 + 승부 + 좀머 씨 이야기 + 콘트라바스 + 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외 지음, 장자크 상페 그림, 김인순 외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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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좀머씨 이야기를 책방에서 빌려읽고 대학생 땐 향수를 도서관에서 읽었어요.
까마득해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넘넘 잼났던 그 느낌은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새 시리즈로 다시 읽으며 추억도 되새기고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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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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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서평단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저는 제가 못생기고 못된 것 같아요. 그런데도 사랑받고 싶어요.

_어른들의 거짓된 삶, p274

이 책의 주인공인 어린 조반나. 12살 때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사춘기 문제가 아니야. 조반나가 빅토리아를 닮아가."(p12) 빅토리아는 아버지의 동생이자 조반나의 고모이다. 태어난 이후 조반나가 고모를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버지와 고모가 절연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못생기고 무식하고 자격지심 쩌는데다 오빠와 올케언니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사람. 부모님께 들은 고모에 대한 정보가 이와 같은데 조반나가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조반나의 나이 당시 겨우 열두 살이었는데 말이다. 조반나는 빅토리아를 만나기를 열망한다. 빅토리아를 직접 보고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절망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조반나는 확신에 빠진다.

처음엔 엄마에게, 다시 아버지에게 간청하여 빅토리아와 대면한 시간. 조반나는 충격에 빠진다. "네 부모님을 잘 봐. 제대로 봐. 네 아빠엄마에게 속지 마."(p120) 부모님께는 고모와의 만남이 불쾌하다고 말했지만 실은 거짓말이다. 조반나는 양친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빅토리아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 기이한 에너지에 빠져든다. 그런 조반나에게 네 부모님을 잘 지켜보라고, 부모님의 잘못된 점을 내게 알려달라고, 그것만이 네가 살길이라고 자꾸만 충동질하는 빅토리아. 빅토리아의 말 때문이었을까. 조반나의 눈에 점점 작은 사치로 일상의 숨구멍을 트는 엄마가 보인다. 작은 돈에도 벌벌 떨며 엄마를 구속하고 집안일은 온통 엄마에게 등떠민 아버지도 보인다.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가정의 균열이, 아슬아슬한 위기를 피부로 느끼던 어느날 조반나는 목격한다. 식탁 아래로 엄마의 다리를 감고 있는 아버지의 친구 마리아노 아저씨와 조반나 할머니의 보석팔찌를 차고 있는 마리아노 아저씨의 부인 코스탄차 아줌마를 말이다. 고모가 조반나가 태어났을 적에 줬다는 팔찌가, 엄마조차 모르는 집안의 유물이, 어째서 코스탄차 아줌마의 손에 있는 것인가. 팔찌의 미스터리를 쫓으며 조반나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빅토리아와 그의 영원한 사랑인 줄로만 알았던 엔초 아저씨의 비밀까지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욕망에 분노하면서도 그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이 자기 안에서로 차오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못난 어른들 밑에서 네가 고생이 많다. 사춘기가 막 시작한 즈음부터 사춘기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조반나가 보고 듣고 겪은 어른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책이다. 동시에 조반나와 조반나의 친구(들)의 성장을 얘기하는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때도 그랬지만 난 사실 폭풍 같은 사춘기 시절을 잘 공감하지 못한다. 특히나 그 관심이 외모적, 이성적, 육체적으로 흐를 때엔 더더욱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사춘기에 날뛰는 호르몬을 제대로 못느끼며 성장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발육이 부진했던 탓도 있겠고 당시 집안 환경이 지나치게 가혹해서 남들이 여드름 걱정할 때 문제집 값 걱정하면서 컸던 탓도 같고. 어쩌면 단순히 이해 부족이나 취향 문제일 수도 있고;; 어쨌든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경멸했던 조반나도 성장하며 조금씩 그 거짓된 삶에 한발자국씩 다가간다. "어른이 되면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거야."(p274) 한 때의 나처럼 조반나도 이 말을 싫어했고 차라리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도 한다. 어른이 되고 보니 싫었던 그 말이 이해가 되다못해 그렇게 경멸했던 어른들을 연민하는 내가 있다. 조반나 너는 어떠니? 줄리아나를 의식하면서도 로베르토의 집으로 홀로 찾아갔던 더. 그러나 마지막 걸음에서 멈춰섰던 너라면 나와는 조금 다른 어른이 됐을까? 소설은 끝이 났는데 나는 자꾸만 어른이 된 조반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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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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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서평단으로 당첨되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아니 이런, 프랑켄슈타인!"(p70) 앙리 클레르발이 타고 있던 스위스 역마차의 문을 열어 다급히 친구의 이름을 부릅니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프랑켄슈타인은 누덕누덕 기워진 괴물이 아니라 그를 만든 박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거든요. 새로운 종을 창조하겠다는 기괴한 열망에 빠진 프랑켄슈타인은 납골당과 해부실, 도살장에서 아름다운 육체들, 이를 테면 화려한 이목구비와 240 센티라는 키에 딱 맞춰진 팔과 다리, 근육과 동맥을 알맞게 덮은 피부, 윤기 있는 검은 머리카락, 하얀 진주 같은 이로 한 인간을 성형합니다. 피조물에게 생명이 깃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외양은 그렇게까지 혐오스럽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이제 괴물은 깨어났고 칙칙한 눈구멍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쳐다보며 미소 엇비슷한 것을 짓고 있습니다. 축축한 노란 눈동자, 쭈글쭈글한 얼굴, 일직선의 새카만 입술, 발작하듯 꿈틀거리는 팔라디 앞에 프랑켄슈타인은 공포를 느낍니다. 창조주로서의 기쁨은 간데없이 혐오로 가득찬 마음은 그를 통제불가능의 상태에 이르게 하고 끝내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죠. 클레르발이 프랑켄슈타인을 목격한 것은 이 즈음으로 박사는 친구를 마주하며 꿈 같았던 지난 밤의 악몽을 잊고 현실에 발을 붙이며 약간의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클레르발을 데리고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 피조물이 있을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진 않았겠죠. 또렷한 대책도 없으면서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실행에 옮기는 프랑켄슈타인의 무책임함은 소설의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아간 집에는 감사하게도 더는 그 괴물같은 피조물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프랑켄슈타인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피조물을 연구하며 보낸 시간, 피조물의 존재 자체를 인생의 페이지에서 단호하게 찢어버리고 다시금 행복해지고픈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을 평화롭게 놓아둘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고향의 동생 윌리엄이 누군가의 손에 목졸려 죽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형제처럼 자란 저스틴의 옷가지에서 윌리엄이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가 발견되며 그녀 또한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사형 당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벌인 짓이었죠. 그는 차근차근, 하나하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복수를 이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당신게 간청했습니까, 창조주여.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당신께 애원했습니까, 저를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실낙원> 아담은 기억할만한 낙원에서의 한순간이라도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숨 쉬기 무섭게 창조주에게 버려졌습니다. 그가 해도 달도 모르던 때였습니다. 갓 태어난 눈이 제대로 작동조차 않아 제 눈 앞에서 날개짓 하던 새의 형상조차 파악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배가 고팠고 추위를 느꼈으나 입을 열어 도움을 구할 말이 없었고 뭣보다 괴물 같이 추한 생김새로 마주치는 모든 인간들의 적대감을 받았습니다. 만 0세의 갓난쟁이가 겪을만한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이 피조물이 선량한 존재로 태어났다 한들 그가 증오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요. 프랑켄슈타인은 거듭거듭 피조물에게 소리칩니다. "이 가증스러운 괴물! 버러지 같은 놈! 네놈은 악마다!" 그러나 제 눈에는 회피와 도피로 안주하며 자기 중심적이고 분별력 없고 책임감 제로에 손쉽게 책임 전가까지 시켜버리는 프랑켄슈타인이 더욱 혐오스러웠습니다. 자신 때문에 살인 누명을 쓰고 내일 사형 당할 저스틴을 바라보며 "절망! 누가 감히 그럴 논한단 말인가요? 내일이면 생사의 음울한 경계를 넘어갈 저 가련한 희생자도 나만큼 깊고 쓰라린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p108) 생각하는데서야 코웃음만 나올 뿐. 아니 물론 이건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롯이 내 아픔만이 중요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전형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가요 작가님?

"그는 이따금 슬픈 거인처럼 거대한 얼굴을 자신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유리 너머의 방문객들 쪽으로 돌린다. 쓸쓸함과 인내심과 지겨움이 가득한 느린 시선이며,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도 아닌 형태의 세상에서 유일한 개체로 그렇게 지내는 것에 대한 완전한 체념, 특이한 형상을 지니고 다녀야 하는 모든 노고, 그렇게 거추장스럽고 눈에 띄는 존재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고뇌를 표현하는 시선이다." <팔로마르> 프랑켄슈타인을 읽는데 문득 떠오른 것은 이탈로 칼비노 작가의 작품 팔로마르 속에 등장했던 알비뇨 고릴라 눈송이였습니다. 동물원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암컷과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마저 특별한 현상으로 간주되며 이질감과 고립을 느끼는 듯 했던 눈송이. 눈송이가 처한 상황에서 적대적 + 폭력적 거부가 일어난 상황이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겪은 현실입니다. 눈송이에게 인간이 만든 타이어라는 물질적 출구가 있었던 것처럼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에게도 증오를 표출할 다른 방향성이 제시되어야 했습니다. 피조물은 스스로 답을 찾아내요. 자신을 혐오하지 않을 이성. 인간이 없는 벌판에서 함께 운명을 헤쳐갈 배우자.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여성 피조물을 제 손으로 파괴합니다. 괴물 같은 생김새라 하여 똑같이 괴물 같은 생김새의 이성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냐고 그는 처음으로 그럴 듯한 답을 도출했던 것입니다. 피조물이 냇가에 비친 제 얼굴에 괴로워하듯 이런 창조는 괴로움에 허덕이는 또하나의 희생자를 늘릴 뿐이라는 걸 그는 마지막 순간에 깨닫지만 피조물을 더욱 화나게 만든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북극까지 이르는 그들의 쫓고 쫓기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은 꼭 완역본으로 읽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모든 문학작품들이 다 그렇지만요. 축약본으로는 피조물의 이 묵직한 회한을 다 목격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 속 진정한 괴물은 누구일까요? 작품의 제목에 괴물의 이름을 넣겠다는게 작가 메리 셸리의 취지였다면 이보다 더 적합한 제목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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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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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서평단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네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예진, 도원, 호계, 재인. 이들의 엇갈린 사랑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왜 이리도 아깝던지.책을 읽다가 정말 좋은데 그 좋음이 지나쳐서 책을 덮은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최대한 늦추고 늦춰서 읽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하루에 한쪽씩만. 아니다 참. 그냥 한 문단씩만. 몰아치듯 페이지를 넘기는 그런 독서 말고 마침표 하나에까지 잠기듯이 그렇게 읽고팠다.

가장 먼저 눈길을 주었던 건 예진이었다. 예진은 도원을 완전히 오해한다. "적당한 것들이 모이고 섞일수록 퇴색한 결과물을 낸다. 색깔을 더할수록 탁하고 어두운 색이 되는 것처럼. 그런데 도원의 적당함은 모여서 상쾌함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가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p15) 예진은 도원의 지난밤 행적을 모른다. 연인과 정이 똑 떨어지는 싸늘한 이별을 한 줄은 그 멀쩡한 얼굴로는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테다. 애시당초 애인이 있었단 사실도 몰랐다. 빌딩 숲 사이 외져서 호젓한 빈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며가며 얼굴을 익힌 것이 다인 사이인 것이다. 아는 얼굴이 되면서 아는 사람이 된 듯한 착각 속에 안녕, 좋은 하루 보내요 인사하는 것으로 친근함을 착각하는. 게다가 예진은 원체도 쉽게 반하는 타입이기도 했다. 앞선 사랑과의 이별의 시간이 너무너무 괴로워서 어떻게든 새 남자친구를 빨리빨리 사귀어버리는 스타일? 사랑을 시작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인 것이다. 예진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함께 식사를 하며 차츰 썸을 타게 되고 한발짝 더 나아갈 생각으로 두 사람은 함께 연극도 보게 된다. 친구를 데려와도 된단 말에 예진은 호계를 부른다.

예진이 밤잠 이루지 못하는 올빼미 같은 청년들의 모임에서 만난 호계. 냉정한 얼굴, 얄미울만큼 싸늘한 태도의 첫인상으로 비호감을 찍었던 호계가 예진의 분실한 다이어리를 찾아춘 것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친구가 된다. 호계는 다시 자신이 근무 중인 빵집 이스트 플라워 베이커리 (이름이 이게 뭐냐며 ㅋㅋㅋ)의 사장을 파트너로 해서 (누나-동생 같은 사이이니 오해하지 말 것) 연극을 보러 가게 된다. 막이 내린 후 불 켜진 자리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선 네 사람. 기류가 이상하다. 알고 보니 도원과 재인은 한 때 연인으로 발전할 뻔 했던, 마음만큼은 분명 호감 이상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소식이 끊어지고 멀어지며 각자의 길에서 잊혀진 친구 사이였던거다. 예진은 닭 쫓던 개 같은 기분으로 재인과 도원의 주변을 맴돌고 그런 예진에게 호계는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며 당황한다. 세상에 사랑이란 없다고 믿었고 뭣보다 스스로가 사이코패스라 믿고 있었으니 이 첫사랑이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나. 매번 제 마음을 부정하면서도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른다.

한편 도원은 완벽하게만 느껴지는 재인과의 재회에 과도하다 싶을만큼 최선을 다한다. 자기 감정을 못이겨 사랑을 나눈 후 울어버리는 장면에서 읽는 내가 당황스러 앜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재인이 너무도 어른스럽게 도원을 토닥여서 깜짝 놀랐다. 재인은 재인대로 고충이 있다. 재인은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전남편과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잇고 있다.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이상한 상태로 잠자리를 가지는 그들. 재인의 그런 선택을 남편 또한 이해하지 못해 이런 관계 정말로 괜찮냐고 물을 정도이니 주위 누구에게도 이해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동생처럼 아끼는 호계와 대화를 나누다 은연 중에 자신의 사생활 일부를 노출하기는 했다. 이런 소소한 비밀들이 언젠가 전부 알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누구에게 알려질지 누구에게 속을 빤히 내보이게 될지 미처 상상조차 못했던 지난 여름의 예감이 습한 추위와 함께 재인을 덮친다. 호계로 인해 하필이면 예진이 재인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타인의 사랑에 빌런으로 등장하고 싶은 마음은 쥐뿔 없지만 좋은 사람인 도원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예진은 찾기도 어려웠을 공중전화에서 도원을 번호를 누른다. 사랑이 하나둘 엇나가기 시작한다.

2020년에 출간된 손원평 작가님의 신간이다. 소설이 처음 연재될 당시와는 달리 작금의 코로나가 터지며 작가님을 고심케 했단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스크를 우회적으로라도 작품에 씌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심 끝에 마스크를 씌우지 않기로 한 결정이 마스크로 답답한 세상 속에서도 우스웠다. 코로나에 주인공들이 야외에서 커피를 어떻게 마셨을 것이며, 연극은 당연히 불발되며 표를 환불했을 것이고, 조그만 제과점이 경영난을 겪어 알바생을 쓸 수도 없었을 것 같다는, 뭣보다 마스크 너머의 얼굴들에 한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의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수 있었겠냐는 회의 앞에 한편으론 숙연하면서 또 한편으론 킬킬 웃음이 샜다. 소설 속의 사랑들이 실패이냐 성공이냐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다. 읽는 내내 사랑하고 싶어서 다 읽은 후에도 어딘가의 사랑을 포착하고 싶어서 그것이 꼭 내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사랑을 응원하고파서 나는 안달이 났다. 바람이 싸늘한데 어디선가 날아온 사랑이 내 발밑에 똑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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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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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읽고 싶었다. 넘 빨리 읽혀서 아쉬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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